대순진리회 회보
대순진리회 - 『나누고 싶은 이야기』
벼리맘1
2024. 12. 20. 13:45
나의 길
글 - 대순진리회 여주본부도장 수도인 中
사람의 운명이란 정해져 있는 걸까? 정해져 있다면 그 운명대로 살아야 하는 걸까? 연극이나 드라마처럼 즉흥적 대사를 이용해 더 재미 있고 맛깔나게 바꿀 수는 없는 것일까?
이 생각들은 내가 고3 때 친구들과 한참 나누던 이야기 소재 중의 하나였다. “설령 정해져 있다고 해도, 내가 그 대본을 바꿔서 살아가면 되지.’ 하고 생각했는데, 도에 들어와 보니 그 또한 정해져 있는 일이라니….
누나하고 방면회관에 처음으로 간 것은 1999년 8월 17일경이었다. ‘대순진리회’,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고 귀에서 맴도는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 당시만 해도 내 성격이 조금 까칠해서 한번 아니라고 하면 쳐다도 안 보았던 때라 누나도 조심스러워 많이 망설였던 것 같았다.
회관을 둘러보고 며칠 뒤 입도치성을 모셨다. 상제님 진영이 모셔진 곳과 성화(聖畵)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도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지금에서야 죄송해서 고개를 못 들 상황이지만, 그 당시 내가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까! 하루는 방면 선감께서 “김 외수는 아침 수의에 참석해도 된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포덕사업 일선에 있는 일꾼들 틈에서 뭔지는 모르겠지만 참석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다음 날 아침부터 회관으로 출근하게 되었다. 모든 환경이 낯설었지만 특히 앉아있는 것이 보통 힘든 게 아니었다. 몸이 힘드니 무슨 말인들 귀에 쏙 들어올 리 만무한 일이었다. 또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선무에게 “도는 나중에 닦고 우선 돈을 좀 벌어야겠습니다. 기반을 좀 잡고 다시 올 테니 그때까지는 회관에 나오지 못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씀을 드렸더니, 선무의 표정이 조금 굳어지는 것 같았다. 상제님 전에 정말 포덕사업할 수 있는 외수 일꾼 하나 포덕이 되게 해 달라고 심고에 심고를 드려서 입도한 사람이 나였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하던 분에게 떠난다는 말을 했으니,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심정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한참 말이 없던 선무는 그럼 며칠만 회관에 더 나오라고 하였다. 조금 망설이다 “예!”라는 대답과 함께 회관을 나섰다. 여느 때와 같이 아침 수의에 참석했는데, 영월5 방면 이 선감께서 교화를 해주셨다. 한참 말씀을 하시는데 들어봤던 이야기를 하시는 것이 아닌가! 어제 오후에 선무가 방면 회의실에서 말해주었던 내용을 녹음이라도 한 듯 그대로 말씀해주시는 것이었다. 그 내용은 현 세상에서 물질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지금은 도 사업에 더 매진해야 할 때라는 내용이었다. 수의가 끝나고도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선무에게 달려가서 “혹시 김 외수가 도 사업할 수 있도록 교화해 달라고 선감께 말씀드렸습니까?”라고 물어보았다. 선무는 아니라고 하면서 역시나 놀라는 표정이었다.
그래서 이 선감께 확인을 해보니 원래 교화하려고 했던 내용은 다른 것이었는데, 이상하게도 내용이 그렇게 흘러가게 되었다고 하셨다. 그제야 자초지종을 말씀드렸더니, 선감께서 “김 외수의 조상 선령신께서 공덕이 많으신가 봅니다. 이렇게라도 김 외수를 도문에 있게 하려니 말입니다.”라고 말씀해주셨다.
뭔지 모르는 기운이 온몸을 감싸는 것 같았고,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하루였다. 지금은 선사가 되셨지만 그 당시 선무가 얼마나 애간장을 태웠을까 하는 생각에 죄송한 마음이 든다. 들은 이야기가 있어서 백일기도를 드려야겠다고 말씀드렸더니 “김 외수, 백 일 정성도 좋지만, 처음부터 무리하면 힘이 드니 우선 일주일 동안 새벽 1시 기도를 해봅시다. 새벽 1시라 쉽지 않겠지만 한번 해봅시다.”라고 하셨다. 다음 날부터 밤 수련과 새벽 1시 기도를 시작하여 일주일간 별다른 무리 없이 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 수련과 기도가 편하게 다가와 몸에 쫙 달라붙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면서 낮에도 자연스레 회관에 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