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순진리회 회보
대순진리회 - 『나누고 싶은 이야기』
벼리맘1
2025. 2. 13. 15:19
하늘에 맡기는 포덕
글 - 대순진리회 여주본부도장 수도인 中
“함지사지이후(陷之死地而後)에 생(生)하고 치지망지이후(置之亡地而後)에 존(存)한다”는 옛사람들의 말이 있음과 같이 복(福)은 곧 복마(伏魔)로 풀이함은 화복(禍福)이란 말과 대등할 것이다.
저는 입도 전에 사업을 하면서 양산에 있는 ‘통도사’라는 절에 다녔습니다. 불교에 심취해 극락세계를 갈망하였지요. 1990년 설날 친정에 온 여동생이 저에게 입도를 하라고 권유했습니다. 혼자 수도생활을 하면서 힘이 들었던 차에 아버지께서 신호를 주셨다며 제가 조상께 정성을 드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8남매의 맏이인 제가 도를 함께 닦는다면 동생도 힘이 나고 좋을 것 같다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서 6개월이 지났습니다.
그해 7월 저는 당시 운영하던 사업의 세금 신고를 위해 세무서를 가고 있었습니다.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공사 중이던 장소에서 저는 깜빡 졸아 중앙선을 침범했습니다. 그리고 마주 오던 컨테이너 트럭과 부딪혀 제 차가 트럭 밑에 완전히 끼이는 대형 사고를 당했습니다. 그 뒤로 저는 정신을 잃었고 사고가 난 후 20일 만에 깨어나게 되었습니다.
당시 사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죽어야 극락에 간다.’는 생각에 무의식적으로 운전대를 놓았던 것 같습니다. 두 달간 병원생활을 하면서 전도인인 동생이 병간호를 해주었습니다. 추석이 지나고 5일 뒤는 돌아가신 아버지 제사입니다. 하지만 제가 사고를 당하여 몸이 아팠던 이유로 아버지께 제사도 제대로 못 드린 것이 너무 속상하여 매일 밤 울며 잠들었습니다.
도문(道門)에 들어오다
그날 어떤 꿈을 꿨는데 수많은 군중이 크고 화려한 깃발을 들고 저에게 오면서 “네가 나를 살려주어야 한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얼굴을 한 명 한 명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목소리는 또렷하게 들렸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저도 지금 다 죽어가는 처지라 못 살립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잠에서 깼습니다. 동생에게 꿈 이야기를 해주니 “언니, 지금은 앉지도 서지도 못하지만, 이제부터 서서 걸어 다닐 수 있게 해 줄게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뒤 저는 집에서 입도치성을 모셨습니다. 몸이 아직 성치 않아 부득이하게 누운 상태로 입도치성을 모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엉덩이뼈가 전부 으스러져서 누워있기만 했던 저는 입도 후 9일이 지난 뒤 비로소 앉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머리가 맑아지면서 신기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때마침 동생이 전화로 안부를 물어왔습니다. 오늘 아침에 앉을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해주니 앉을 수 있다면 기도도 모실 수 있겠다면서 전화상으로 태을주(太乙呪)를 알려주었습니다. 그 뒤로 저는 앉아서 계속 태을주만 외웠습니다. 주문을 계속 외우니 눈이 밝아지면서 머리도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열흘이 지난 뒤에는 비로소 걸을 수도 있게 되었고 그때는 동생이 도통주(道通呪)도 알려주었습니다. 도통주를 외울 때는 너무 신이 나고 입에 자꾸 붙어서 계속해서 외우는 저를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그즈음 방면 선무가 도장에 치성 모시러 가자며 저를 데리러 왔습니다. 그 치성은 구천상제님 강세치성이었는데 저에게는 도장 첫 참배이자 첫 치성이었습니다. 당시 몸이 많이 회복되어 걸을 수도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죽다 살아났기 때문에 두말하지 않고 치성 차에 올랐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저의 몸 상태를 알고 제가 치성 모시다가 쓰러지기라도 하면 다시는 못 일어난다고 걱정을 했습니다. 저도 염려되는 마음을 안고 여주본부도장에 도착하였습니다. 청계탑에 서서 심우도가 새겨진 부분을 바라보고 있는데 불현듯 안개가 차분히 내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안개 속에 선녀 한 명이 서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저인 것처럼 느껴짐과 동시에 참 외로워 보였습니다.
이후 치성을 모시러 영대로 들어갔습니다. 영대 안의 그림들이 저의 눈에 확 들어오면서 순간 ‘여기가 보통 절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치성을 모시기 전에는 주위 사람들이 걱정을 많이 했는데 영대에 서 있는 동안 머리가 매우 맑았을뿐더러 피곤하지도 않았습니다. 영대배례까지 다 모시고 나서도 몸이 너무 가벼워서 집에 가는 길에는 잠이 하나도 오질 않았습니다.
두 번째로 도장에 참배를 갔을 때는 식당에서 나온 국수를 7그릇이나 먹었습니다. 옆에서 남편이 그만 먹으라고 말리는 바람에 더 먹지 않고 나왔지만 이렇게나 많이 먹는 저의 모습을 보고 저도 너무 놀람과 동시에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내 몸이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포덕을 시작하다
첫 치성을 모시고 돌아가는 차 안에서 창밖의 가을 들판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들판의 나락을 보면서 ‘나도 다시 태어났나 보다.’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마음속으로 간직하고 있다가 방면 선감에게 가서 “저도 여기서 할 일이 있지요?”라고 물었습니다. 뒤이어, “저는 이제껏 장사밖에 한 것이 없는데 무엇을 하면 됩니까?”라고 물으니 선감께서 ‘포덕’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포덕이 무엇이냐고 묻자 옆에 있던 동생이 “포덕은 상대방을 살려주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포덕을 하면 몸도 낫고 자유롭게 살 수 있다고도 했습니다.
바로 다음 날 첫 포덕을 나갔습니다. 선감께서 ‘포덕은 많이 해야 한다.’는 말씀을 하셔서 먼저 철학관을 운영하던 친한 친구에게 갔습니다. 친구는 이미 도통도 알고 미륵불도 알고 있었습니다. 친구가 입도를 한다면 제 몸이 낫는다는 말을 하니 두말하지 않고 입도했지만, 대순진리회에 가면 큰일이 난다고 걱정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다녔던 절의 주지 스님을 찾아갔습니다. 정말 대순진리회가 가선 안 될 곳인지 여쭤보기 위함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대순진리회의 배례법에 대해 알려드리니 스님께서는 저의 법명을 다정히 불러주시면서 대순진리회를 열심히 믿고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주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그리고 첫 치성 때 심우도(尋牛圖)와 선녀를 본 것이 저에게는 너무 신기한 경험이었기 때문에 그 뒤로 수도하는 데 전혀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