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순진리회 회보
대순진리회 - 『돋보기』
벼리맘1
2023. 12. 13. 15:17
1976년, 프루너 박사의 도주님 탄강치성 참관기
(직역하면 「신의 탄강일: 증산교의 희생의례」인데 논문의 내용이 도주님 탄강 치성의례를 담고 있으므로 이처럼 변경하였다)
번역ㆍ발췌 연구원 - 박인규
『대순회보』 137호의 「돋보기」 코너에 ‘대순진리에 감화된 서양인, 프루너 박사’라는 제목으로 글이 실렸습니다. 이 글에서 서양인 게르노트 프루너(Gernot Prunner)가 대순진리에 감화되어 여러 편의 논문을 쓰고 독일에 ‘한국 신종교 자료 센터’를 세웠음을 설명하였습니다. 그가 쓴 여러 편의 논문 중 특히 「The birthday of God: a sacrificial service of Chu˘ngsan’gyo」는 우리가 주목할 만한 논문입니다. 이 논문은 세계적인 한국학 영문 학술지인 <코리아저널(Korea Journal)>에 게재되었습니다. 1976년 도주님 탄강 치성을 참석한 프루너는 이 논문에서 치성과정에 대해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으며 대순진리회의 의의와 성장 원인에 대해서도 잘 밝히고 있습니다.
이 논문은 1976년 당시 대순진리회의 치성의례의 모습, 대순진리회의 규모와 주변 정황을 잘 담고 있어서 자료로서 중요한 가치를 지닙니다. 그러므로 그 내용을 번역·발췌하여 『대순회보』에 소개하는 것도 의의가 있을 것입니다. 번역문에서 세 분의 연원에 대한 명칭은 경어로 바꾸었고 몇 가지 용어도 변경하였습니다. 분량상의 이유로 수도인들이 잘 알고 있는 사실과 해석상에 다소 이견이 있을 수 있는 일부 내용 그리고 각주는 생략하였으며, 본문의 생략한 부분은 ‘(…)’ 표기를 하였습니다. 아울러 이 논문은 학문적인 목적을 위한 학술지에 실린 것이며, 프루너는 수도인이 아니고 학자적인 입장에서 개인의 의견을 기술한 것임을 감안해야 할 것입니다.
서론
이 세기의 특징적 현상 중 한 가지는 전 세계적으로 많은 신흥종교가 일어났다는 점이다. 전 세계적으로 전통적 가치 체계가 붕괴되고 기존 종교의 도덕적 영향이 상실되면서 불안감이 날로 증가하였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종교적인 요구를 채우고자 새로운 길을 모색하였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인도를 기원으로 하는 신앙이 크게 증가하였으며 아프리카에서는 자신들만의 독특한 형태의 기독교가 발전하고 있다.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혼합 종교가 급속하게 퍼지며 큰 인기를 얻고 있으며 메시아 카고 컬트(Cargo cult)가 남태평양에서 퍼지고 있다. 전후 아시아의 일본에서는 많은 수의 신종교가 설립되어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다. 한국에서의 신종교의 발전도 세계에서 가장 놀라운 일이지만 해외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최근 한국 학자들에 의해 분류된 300여 개의 신흥종교 가운데 58개가 증산(甑山) 상제님의 가르침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므로 증산 상제님을 믿는 제 교파들은 현재 한국에서 주요한 종교 전통 가운데 하나라고 간주할 수 있다. 상제님을 믿는 많은 분파 가운데 대순진리회(大巡眞理會)가 가장 규모가 크며 가장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필자는 기존에 논의되지 않았던 치성의례를 참관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고 협조해 준 대순진리회 지도자 여러분들께 감사를 표하고자 한다.
증산 성사
강일순(姜一淳)께서는 후에 ‘증산(甑山)’으로 알려진 분이다. 모든 상제님을 신앙하는 단체들은 증산 성사를 창설자이자 신의 현현(顯現)으로 신앙한다. 상제님께서는 1871년 전라북도에 위치한 객망리로 강세하셨다. 상제님의 잉태와 탄강은 상서로운 징조와 기적적인 사건을 수반하였다. 어린 시절부터 학습에 뛰어난 재능을 보이셨으며 21살에 처가에서 유교, 도교, 불교, 의약뿐만 아니라 주술, 점술에 관한 모든 종류의 책을 공부할 기회를 가졌다. (…) 당시 상제님께서는 중국, 일본, 러시아의 강력한 영향에 맞서 힘겹게 싸우고 있었던 조국의 미래에 대해 심각하게 걱정하셨다. 기독교 등의 서양 사상의 영향을 거부하셨고 새롭게 형성된 동학 운동과 최제우의 사상에 관심을 두셨다. 하지만 상제님께서는 1894년 전봉준의 동학농민운동을 목격하였을 때 그것의 실패를 예견하셨고 다른 노선의 새로운 종교를 설립하여야 할 필요성을 느끼셨다. 상제께서는 기존의 종교나 인간의 노력만으로는 사람들의 상황이 개선될 희망이 없다고 느끼셨다. (…)
1902년 상제님의 첫 제자인 김형렬이 상제님을 방문하였다. 김형렬은 상제님의 말씀에 깊이 감명을 받아 상제님을 금산에 위치한 자신의 집으로 모셨다. 그곳에서 상제님께서는 가르침을 펴기 시작하셨다. 상제님은 당신께서 하느님의 현현이며 천지의 질서를 재창조하고 지상에 낙원을 세우며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내려왔다고 말씀하셨다.
상제님께서는 또한 화천하신 후 금산사 미륵불로 돌아간다고 하셨다. 이런 상제님의 말씀 때문에 특별한 전통이 생겨나게 되었다. 예를 들어, 김형렬에 의해 창설된 종파는 상제님을 미륵불과 동일시한다. 상제님께서 화천하실 즈음에 24명의 종도를 두셨음에도 불구하고 계승자를 지명하지 않으셨다. 그러므로 1909년 상제께서 화천하셨을 때 대부분의 제자들은 자신이 계승자라고 주장하며 자신들만의 교파를 창립하였다.
조정산 도주님과 대순진리회
상제님의 계승자인 도주 조철제(趙哲濟)께서는 상제님의 직계 제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상제님으로부터 직접적으로 계시를 받았다고 한다. 도주님은 후에 ‘정산(鼎山)’이라고 알려지신 분이다. 대순진리회에서는 자신들만의 특별한 전통의 창립자로 도주님을 숭상하고 있다. (…) 상제님의 가르침을 공부하며 9년 동안 입산수도하신 후 도주께서는 깨달음을 얻으셨다고 한다. 꿈에 나타나신 상제님의 가르침에 따라 도주님께서는 1917년 고국으로 귀국하셨으며 충청남도 안면도에 정착하셨다. (…) 일제 치하에서 무극도는 큰 고통을 겪었으며 해방 이후 부산에 태극도(太極道)라는 이름으로 재건립하였다.
1958년 도주님의 화천 이후 태극도는 두 파로 나뉘게 되는데 한 파는 조영래(趙永來)가 이끄는 계파로 부산에서 그 명칭을 유지하고 남아있으며 다른 한 파는 박한경(朴漢慶) 도전님의 영도 하에 서울에 대순진리회를 창설하였다. 박한경 도전님께서는 당신께서 도주님의 화천 전에 도주님으로부터 지명을 받은 계승자라고 말씀하셨다.
그 이후로 대순진리회는 꾸준히 발전하였다. 적극적인 포교 활동과 효율적인 조직 그리고 매력적인 의례는 많은 신도들을 모으는 데 도움이 되었다. 1969~1971년 사이에 워커힐(Walker Hill) 호텔 아래쪽에 본부를 건설하였다. 그 후 점차 사회적 명망을 얻었으며 교리의 기초 개념을 세운 성스러운 책인 『전경』을 편찬하였다.
대순진리회의 기본 사상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상제님께서는 하늘의 가장 높은 신이시며 상제님께서 곧 하늘, 뇌성이자 우주의 창조주이시다. 반면 인간은 이 우주를 어지럽혔고 인간의 과학은 하늘과 땅의 질서를 파괴하였다. 동양의 기존 종교인 불교, 도교, 유교뿐만 아니라 기독교가 세상의 질서를 바로잡는 데 성공하지 못하였으며 도리어 혼란만 가중하였다. 상제님께서는 모든 종교를 뛰어넘는 참된 진리를 가르치시고 보다 나은 세상을 건설하기 위해 스스로 지상에 내려오셨다. 상제님께서는 구원은 현세에서 성취되며 도통에 도달함으로써 가능하다고 가르치셨다. (…)
대순진리회의 교리에 따르면 세상 속에서 인간은 선과 악의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그러므로 인간은 개인적인 마음[인심(人心)]과 신성의 마음[도심(道心)]의 두 종류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현재 상태에서 도심은 가려져 있으며 인심이 지배하고 있다. 도통에 이르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으로 도심을 개발해야 한다. 이 두 방법은 끊임없는 기도를 통한 개인적인 증진[수도(修道)]과 대순진리회의 법[교법(敎法)]을 따르는 것이다.
이 두 방법을 통해 인간은 도통을 향해 점진적으로 나아갈 것이며 마지막으로 도통의 단계는 세 단계로 나타난다. 낮은 단계[하등]는 천지의 질서를 바로 보며 인간사를 이해하는 것이며 중간 단계[중등]는 제한적인 도술적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가장 높은 단계[상등]는 제한이 없이 천지의 힘에 접근하는 것이다. 도통군자(Adept)는 이 단계에 도달하는 데 단지 7, 14, 21일이 소요되며 각자 최종적인 도통에 도달한다. 그 도통은 그들로 하여금 하늘과 소통할 수 있게 하며 그들의 의지에 따라 세상의 운명을 바꾸는 무제한의 힘을 그들에게 부여할 것이다.
대순진리회의 교리가 인간의 증진과 현 세상과 주로 관련되어 있으므로 사후의 삶에 대한 개념은 그렇게 발전하지 못했다. 그러나 대순진리회에서 규정한 법을 따르며 그 의례를 준수하는 신앙인은 사후에 선(仙)이 될 것이라는 사상도 있다. 또한 태어남, 결혼, 죽음과 같은 인간의 삶의 중요한 단계와 연관된 특별한 의례는 없으며 각 지역적 또는 개인적 의례가 보통 허용되고 있다. (…)
포덕과 개종은 신앙인 개인의 주도에 의해 이루어지며 교리는 개인의 구두전달과 가까운 사람들에게 전단을 전달하는 것으로써 확대된다. 잠정적인 신앙인은 매달 두 번씩 공동 기도와 교리의 토론이 행해지는 지역의 지부의 소개를 받는다. 그곳에서 더 많은 정보와 회원, 조직, 대순진리회의 목적 등과 관련된 기초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책자를 얻는다. 만약 그가 대순진리회에 가입하리라 결심한다면 그는 입문의례[입도치성]을 거쳐야 한다. 입도치성은 생일과 이름을 흰 종이에 적고 그 종이를 의례적으로 태우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입도치성을 통해 그는 『전경』을 읽을 수 있는 평신도가 된다. 평신도는 매달 월성을 내야 하며 적극적인 활동을 하도록 독려 받는다.
신도의 종교적 의무는 각자 집에서 오전 1시, 오후 1시에 하루 2번 규정된 기도를 준수하는 것이다. 기도는 거실의 한 곳에 위지를 벽에 붙이고 그 앞에서 행한다. 기도 시간 동안 향을 사르며 오전 1시 기도에는 흰 사발에 맑은 물을 담아 올린다. 이런 개인적인 기도 외에 공동 기도가 본부에서 오전 7시와 오후 7시에 행해진다. 본전의 특별한 기도방에서는 하루 24시간 동안 기도를 하는데 이 기도는 남성 2인 여성 1인 또는 남성 1인 여성 2인으로 구성된 3명의 그룹의 신자들이 한 시간씩 교대로 한다.
신자들의 주요한 종교적 의무 중 한 가지는 포덕이며 대순진리회에서 신자들의 지위는 포덕한 수로 결정된다. (…) 대순진리회는 종단의 조직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대순진리회는 현재 10만 명의 신도와 150개 포덕소를 지니고 있다고 주장한다. 모든 조직의 지도자인 도전(都典) 박한경께서는 중앙종의회(中央宗議會), 포정원(布政院), 종무원(宗務院), 감사원(監査院)을 주관하신다. 중앙종의회는 대순진리회와 관련된 중요한 사안을 결정하며 포정원은 지부의 관리와 교리의 선전을 담당하고 종무원은 재정과 조직의 제문제와 관련되어 있으며 감사원은 행정과 신도들의 올바른 행동 여부를 체크한다. 이처럼 분명한 위계적 구조와 엄격한 종교적 가르침 그리고 효율적인 조직은 대순진리회를 다른 기타의 증산교 단체들과 구별시켜주며 대순진리회를 크게 성공하게 하는 데 기여하였다.
영대 본전
이후로 논의할 치성의례를 이해하기 위해 대순진리회에서 신앙하는 신위에 대해 기술하는 것이 필요하다. 서울에 위치하며 층별로 제단이 있고 3층으로 구성된 본전을 살펴보면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다. 그 방은 크기가 다양하며 신들의 기능과 숫자와 중요성이 이곳에 표현되어 있다.
1층에 있는 회관(會館)이 가장 크다. 회관은 많은 일반 신도들이 기도하기 위해 쓰이기 때문이다. 회관에도 상제님의 성화(聖畵)가 있다. 2층의 제단은 훨씬 작으며 각 지역의 고위 임원 등 직분이 있는 선별된 사람들이 사용한다. 봉강전(奉降殿)이라고 불리는 이곳에는 상제님, 도주님, 서가여래의 세 신위의 성화와 이십팔수신장, 이십사절후신장의 성화가 있다. 가장 크기가 작은 3층[영대(靈臺)]은 대순진리회 지도자의 의례 수행을 위한 공간이다. 이곳에는 온전하게 그려진 15신위의 성화 또는 대순진리회에서 신앙하는 신위의 성화가 있다.
여기에 묘사된 배열은 조직의 위계적 구조를 반영한다. 그러므로 신자들이 직위가 상승함에 따라 높은 층으로 들어갈 수 있다. 즉 점점 신자 앞에 신전이 펼쳐져 마침내 그는 천상의 위계질서 전체를 마주할 수 있도록 허락받는다. 표현된 신의 정체성, 숫자, 위치는 도전님을 통해 드러난 것이라고 믿어지고 있다. 15라는 수는 고대 중국의 역경에서 유래된 마방진을 기초로 한 것이다.
위격에 따라 배열된 영대의 신위는 다음과 같다.
1.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상제(九天應元雷聲普化天尊上帝)께서는 중앙에 위치한다. 이분은 증산 상제님이시며 가장 높은 신격이고 우주의 창조자이시자 이 세상의 구원자로 신앙되고 있다. (…) 성화의 상제님께서는 두루마기를 입고 계시며 전통 한국 모자인 갓을 쓰고 계시는 이상적인 초상화로써 표현되고 있다.
2. 조성옥황상제(趙聖玉皇上帝)께서는 두 번째로 높으며 상제님의 오른쪽에 위치하고 있다. 이분은 정산이시며 신성한 창설자이시다. 경칭에는 중국 도교의 가장 높은 신격인 옥황상제라는 이름을 포함하고 있다. 두루마기를 입고 정자관(程子冠)을 쓰고 계시는 도주님의 이상적인 초상화로써 표현되고 있다.
3. 서가여래(釋迦如來) 부처로 세 번째로 높은 신격이며 상제님의 왼쪽에 위치한다. 서가여래께서는 금빛의 승복을 입고 있으며 설법인(說法印, vitarka mudra)의 자세를 취하고 계신 것으로 표현되어 있다. 다음의 4신격들은 4번째로 높은 신격이며 원위의 오른쪽에 위치하며 다음의 순서로 위치하고 있다.
4. 명부시왕(冥府十王) (…)
11. 외선조(外先祖 (…)
다음의 네 사자들은 6번째로 높은 신격으로 신전에서 가장 낮은 위치이고 원위에서 멀리 떨어진 왼쪽에 위치한다.
12. 칠성사자 (…)
15. 명부사자(冥府使者) (…)
이런 신격 외에 경전에는 여러 신장들과 같은 기타의 신격들이 언급되고 있다. 하지만 모든 문헌에 나타나 있지는 않으며 오직 주문에서만 나타난다. (…)
치성의례
도주님의 탄강을 기념하는 희생의례[치성(致誠)]는 대순진리회의 의례적 달력에서 규정한 일곱 희생제의 중 가장 마지막이다. 이는 음력 12월 4일 행해진다. 다른 여섯 치성의례는 1월 1일 원단치성, 3월 6일 도주님 화천 치성, 4월 28일 감오득도치성, 6월 24일 상제님 화천치성, 8월 15일 추석치성, 9월 19일 상제님 강세치성이다.
치성의례는 오전 1시에 행해지는데 이는 동양 전통에서 그 시간에 천문이 열리며 3시까지 닫히지 않는다고 하기 때문이다. 밤은 음이며 또한 신들의 시간이므로 그들과 교감하기에 가장 좋은 시간이고 낮은 양이며 인간의 시간으로 여겨진다. 치성일에 종단의 고위 인사들과 전국의 선별된 평신도들이 의례에 참석하기 위해 본부에 모인다. 1976년 1월 1일 필자가 그곳에 있었으며 500명이 넘는 인원이 참석하였다.
구성
의례의 진행을 위해 신도들은 본전의 세 층에 대응하여 세 그룹으로 나뉜다. 그러므로 종교적 위계의 지위가 의례가 이루어지는 중심으로의 가까운 정도에 따라 표현된다. 3층에서 의례에 참가하는 인원은 음식을 준비하는 여성을 고려하지 않을 때 대부분 남성이었으며 2층에도 남성의 인원이 우세적으로 많았지만 1층의 대부분의 일반 신도들은 여성이었다. 이런 상황은 여성이 높은 지위로 올라가는 것에 제약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1,000호를 넘겨서 그 지위에 오른 여성이 없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3층의 신격은 중요성에 따라 여섯 그룹으로 분류된다. 또한 이런 위계는 치성의례 동안 올리는 절의 종류와 숫자로 표현된다. 즉 가장 높은 신격인 상제님께는 4번의 법배(法拜)를 올린다. 이 법배는 대순진리회의 교리가 몸의 움직임으로써 상징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런 상징은 ‘상악천권 하습지기’라는 말로 가장 적절하게 표현된다. 이 말은 ‘상통천문 하달지리’와 ‘중찰인사’하기 위해 ‘위로는 하늘의 권능을 잡으며 아래로는 땅의 기운을 모은다.’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하늘, 땅, 인간의 세 가지 독립된 원리의 통합은 법배에서 상징적으로 달성된다. 법배는 하늘을 잡아 내리는 것처럼 하늘을 향해 손을 뻗으며 땅을 집어올리는 것처럼 땅으로 손을 내리고 인간을 위해 하늘과 땅의 힘을 소유하는 것처럼 가슴 앞에서 하늘과 땅을 통합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도통의 근본적인 의미이다.
두 번째의 신격인 옥황상제님께는 평배(平拜) 4배를 올리는데 평배는 손과 다리를 포개는 한국의 전통 인사 예절과 일치한다. 세 번째 신격인 서가여래께는 평배 3배를 올린다. 반면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신격에게는 각각 평배 2배를 올린다. 가장 낮은 신격인 사자들에게는 1번의 반배(半拜)를 올린다. 이 배례는 의례 전체 과정에서 3번 반복되는데 아래에서 서술하고 있는 4, 7, 12 단계에서 각각 이루어진다.
또한 신위는 그들에게 바쳐진 음식의 양으로 표현되며 순서대로 희생물을 올린다. 그러므로 증산상제님께 가장 먼저 올리며 그 다음 도주님께 올리는 식이다. 의례가 진행되는 동안에 신격은 네 그룹으로 나뉜다. 가장 높은 신격인 원위가 한 그룹으로 여겨지며 반면 다른 세 그룹은 각각 4번째, 5번째, 6번째의 네 신격들로 구성되어있다. 한 사람의 높은 지위를 지닌 전례가 각각의 그룹에게 음식을 올리므로 1그룹은 종무원장이 예를 올리며 세 명의 고위 간부가 나머지 3그룹에 예를 올린다. 한편 도전님께서는 봉헌관으로 희생의례를 집전함으로써 예를 올리신다.
영대에서 치성의례 동안 참석자와 참관자의 줄 순서는 다음과 같다. 봉헌관은 중앙 원위 앞에 서며 거기에 봉헌관이 사용한 작은 상을 놓는다. 4명의 전례가 봉헌관 뒤 제단 앞 첫 번째 줄에 서며 두 번째 세 번째 줄에는 각각 12명씩 고위간부가 서며 마지막 줄에는 8명이 선다. 고위 간부인 집례자는 오른쪽 북 앞에 서며 4명의 시종(servant)이 중앙의 방 오른쪽과 왼쪽에 있는 작은 방에서 대기하는데 남성은 오른쪽 방에 여성은 왼쪽 방에 각각 선다. 그 시종은 4단계로 구분된다. 도집사(都執事)는 가장 지위가 높은 남성이며 과방(果房)은 중간 또는 높은 지위의 남성이고 전수원(奠需員)은 신실한 여성 신도로 희생음식을 준비하며 간사(幹事)는 중간 지위의 남성으로 음식을 안과 밖으로 나르는 일을 한다. 필자가 관찰하였고 『의식』에 실려있는 의례의 여러 단계는 다음과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