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는 왜 야누스처럼 두 얼굴을 가진 모순적 상황에 놓이게 되었을까? 텍스트와 현실의 차이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예의 근본정신을 늘 되묻는 탐구와 특정한 상황에서 실행하기를 요구하는 문헌의 규정과 현실에서 사람들이 규정을 해석해서 실행하는 언행 사이에는 커다란 거리가 있다. 사람들은 규정과 실제 언행을 비교해서 어느 것이 더 타당한지 따져보지 않고 주로 후자를 보고 들으며 예에 대한 이미지를 갖는다.
설 추석의 명절에 제사를 지낼 때 시간을 들여서 장을 보고 전을 굽고 나물을 무치고서 시간에 맞춰 제사상을 차리고 차례를 지낸다. 이때 왜 제사를 지내느냐는 이유보다는 제사를 준비하고 지내는 일이 우리에게 더 가깝게 느껴진다. 가깝게 느껴지는 것이 힘들고 따분하면 예 자체가 그런 것으로 여겨지게 된다.
공자 당시에도 우리가 겪는 괴리 현상이 있었던 같다. 그의 제자 임방이 “예의 본바탕이 무엇인지?” 물었다. 공자는 다음처럼 대답했다. “예는 호화니 사치를 부리기보다는 차라리 꾸밈없이 수수한 것이 낫다. 상사는 매끈하게 진행하기보다는 차라리 참으로 슬퍼하는 것이 낫다.” 01공자의 말처럼 예의 근본으로 돌아가서 실생활의 예를 새로 살펴보자.
• 예의 기원과 확장
예(禮) 자는 원래 귀신을 나타내는 시(示) 부분이 없이 풍(豐) 부분으로 쓰였다. 풍(豐)은 사람이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과정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다. 두(豆)는 제물을 올려놓는 제상을, 감(凵)은 제물을 담는 그릇을, 봉(丰)은 산적을 연상시키듯 요리를 한 제물을, 곤(丨)은 제물을 일정한 격식에 따라 제상위에 늘어놓는 것을 가리킨다.‘풍’(豐) 자만으로 사람이 제상을 마련해서 그 위에 제기에 제물을 담아서 신에게 제사를 지낸다는 의미를 완벽하게 전달하고 있다. 예는 처음에 사람이 신 또는 죽은 조상신에게 다가서는 절차를 나타냈던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기 쉽지 않다. 특히 남몰래 사랑을 키운 사람이라면 상대에게 말을 건네기가 더더욱 어렵다. 자칫 말을 잘못했다가 오히려 사이가 틀어질까봐 걱정하고, 어렵사리 다가가서는 긴장해서 말 한 마디도 건네지 못한다. 고대에 신은 인간의 삶과 역사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는 존재였다. 사람이 그 신에게 잘못 다가갔다가 불벼락이라도 맞거나 개인과 종족에 불행한 일이 생기면 큰일이었다. 예는 처음에 사람이 신에게 부작용 없이 다가가서 자신의 이야기를 건네고 신의 가호를 받는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의식이 진지하고 또 유쾌했을지 상상하기가 그렇게 어렵지 않다.
예가 사람과 신 사이를 원활하게 하는 소통의 절차로 자리 잡게 되자 그 적용 범위가 빨리 늘어나기 시작했다. 예는 1차적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적용되었다. 이 사람 사이도 자연적 사회적 역할에 따라 다양한 관계로 분화되듯이 그만큼의 예가 생겨났다. 어버이와 자식 사이라면 부자지례가, 군주(지도자)와 관료(전문가) 사이라면 군신지례가 생겨났다. 또 삶의 영역에 따라 병사의 운용과 관련해서 군대의 예가, 죽은 이에 대해 장례가, 혼인과 관련해서 혼례가, 성인과 관련해서 성인식이 생겨났다.
예의 범위가 널리 확장하게 되자 사람은 예가 없으면 살 수 없게 되었다. 마치 어류가 물을 벗어나면 살 수 없듯이 사람도 예를 벗어나면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되었다. 이를 공자는 재미있는 형식으로 표현한 적이 있다. “예가 아니면 보지를 말며, 예가 아니면 듣지를 말며,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며, 예가 아니면 짝해서 움직이지 마라.”02 훗날 『예기』에서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말했다. “도덕과 인의도 예가 아니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교훈과 시속 교정도 예가 아니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는다. 분쟁과 소송의 분별도 예가 아니면 판가름 나지 않는다. 군신과 상하, 부자와 형제의 차례도 예가 아니면 확정되지 않는다.”03
『논어』의 “비례물(非禮勿)X”와 『예기』의 “비례불(非禮不)X”의 문형은 인간사회의 질서 원칙으로서 예의 절대성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예가 없다면 세상이 갑자기 멈추고 사람들이 어리둥절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되는 사태가 일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예가 규범의 최상위에 도달하게 되었던 것이다. 『예기』에서는 예의 이러한 특성을 다음처럼 말하고 있다. “예는 사람 사이의 친소를 정하고, 혐의를 가리고 동이를 나누고 시비를 분명하게 하는 바탕이다.”04예나 지금이나 -강도의 차이는 있지만- ‘무례한 사람’은 단순히 예의범절에서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이 아니라 인격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이는 사람으로서 갖추어야 할 인격에 대한 부정이라고 할 수 있다.
• 예의 문헌
오늘날 전해지는 고대의 경전 중에 역사와 예 관련 문헌이 많다. 역사는 인간이 의미 있게 살아온 자취를 기록하고 예는 인간이 의미 있게 살아갈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한다. 이 점에서 둘은 상당히 많이 닮았다. 실제로 『춘추』를 보면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기록하고서 “예에 맞다” 또는 “예에 맞지 않다”는 평가어를 많이 쓰고 있다.
예의 문헌으로 ‘삼례’(三禮)라 불리는 『주례(周禮)』와 『의례(儀禮)』 그리고 『예기(禮記)』가 있다. 『주례』는 글자 그대로 주나라의 예를 가리킨다. 오늘날 용어로 하면 정부 조직법을 다루고 있다. 행정 관직을 천지(天地)와 춘하추동(春夏秋冬)의 6부류로 나누고 각각에 속하는 관직의 책임자와 인원, 직무와 직무수행의 원칙 등을 다루고 있다. 전근대에 왕조가 새로 등장하게 되면 건국 집단들은 『주례』를 참조해서 궁성을 축조하고 정부 조직을 구성하곤 했다. 『의례』는 사대부의 관혼상제 규정과 절차 그리고 그 의미를 세세하게 규정하고 있다. 경우에 따라 『의례』를 예경(禮經)으로 보고 『예기』를 『의례』를 해설하는 전(傳)으로 취급하기도 한다.
『예기』는 예제 풍속만이 아니라 역사학술 등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예의 근본정신을 탐구하는 문헌으로서 많은 주목을 받아왔다. ‘예기’는 예의 기록이란 뜻으로 이름 자체로는 비중이 경보다 한 단계가 떨어지지만 실제로‘예경’의 대접을 받아왔다.
『논어』 「향당」을 보면 공자는 조정과 일상생활에서 지켜야 할 다양한 예절을 기록하고 있다. 공자는 제자들과 함께 다양한 갈래와 종족의 예를 수집하여 비교 분류하고 또 의미 부여를 했다. 그의 작업이 한나라에 200여 편 규모의『예기』 형태로 전해졌다. 이 중에서 대덕(戴德)이 85편을 골라서 ‘대대례기’(大戴禮記)라고 했고, 그의 조카 대성(戴聖)이 앞의 것보다 36편이 적은 49편을 골라서 ‘소대례기’라고 했다. 오늘날 ‘대대례기’는 40여 편만이 전해지고 있고『예기』라고 하면 ‘소대례기’의 49편본을 가리킨다.
『예기』는 오늘날 학문 분류로 보면 하나의 책으로 묶일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분야를 포괄하고 있다. 차라리 예와 관련된 모든 분야를 모아놓은 백과사전이라고 할 만하다. 한의 정현(鄭玄)은 이러한 『예기』를 통론(通論) 제도(制度) 제사(祭祀) 상복(喪服) 길사(吉事) 등 8가지 종류로 나누었다. 근대의 량치차오(梁啓超)는 예의와 학술을 일반적으로 논의하는 부분,『의례』를 해설하는 부분, 공자의 언행 및 공자제자와 당시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기록한 부분, 고대의 제도와 예절을 기록하는 부분, 격언과 잠언 등의 성격을 지니는 부분 등 다섯 부류로 나누었다.
『예기』는 선진시대에서 한 제국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천인(天人) 관계 등 미처 정리(종합화)되지 못한 채 고대 문화의 다양한 갈래를 전하고 있는 중요한 문헌이라고 할 수 있다.
• 둑의 이미지와 차이의 세계
예는 개별적인 분야에 적용되는 규범이 아니라 사회의 질서 원리로서 포괄적 규범의 특성을 갖는다. 부분이 아니라 전체의 특성을 갖는 만큼 예의 특성이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예기』 속의 다수의 지은이들이 다양한 비유와 풍부한 설명을 통해서 예의 전체상을 그리고 있다. 그중에서 강물이 물길을 넘어서지 않도록 막아주는 둑이 예의 전체상을 가장 잘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화를 참지 못해 험한 말을 하거나 무심코 건넨 말 한마디로 주위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곤 한다. 대부분 지나고 나서는 자신이 왜 그랬는지 후회를 하고 다음에 되풀이하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한다. 『예기』에서는 가난과 부유를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가난과 부유 자체가 부도덕한 것도 아니고 범죄는 더더욱 아니다. 가난이 자기 변신을 위한 자양분이 될 수 있고 부유가 과거의 노력으로 얻은 결과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난을 벗어나려는 노력보다 가난한 상태를 저주하고 부유를 더 키우기 위해서 새로운 일에 도전하기보다 부유한 상태를 남에게 과시하고 남을 무시할 수 있다. 가난하다고 지지리 궁상떨고 그러다가 남의 물건에 손대게 된다. 부유하다고 잘난 척 시건방 떨고 그러다가 기성의 질서를 허물어뜨린다. 가난과 부유가 주위 사람에게 상처주고 사회에 고통을 주며 사회악이 되는 것이다.
사람으로 하여금 가난하더라도 그 속에 즐거움을 찾고 부유하더라도 상식과질서를 존중하게 할 수 없을까? 『예기』에서는 사람이 예에 따르면 자신의 상태에 도취해서 막무가내로 행동하거나 제 감정만을 앞세우지 않게 된다고 본다. 이를 『예기』에서는 “예는 사람의 정감을 잘 이끌어서 마름질하여 사람이끓어 넘치는 것을 막는 둑과 같다.”05고 말하고 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듯이 예는 자신과 남을 함부로 하지 못하게 한다. 예를 갖춘 사람은 비행을 막는 든든한 둑을 가진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예기』에서는 예를 악(樂)과 짝지어서 이야기를 풀어가면서 둘이 같고도 다른 점을 밝히고 있다. 예는 전근대 신분사회의 차등적 질서를 뒷받침했으므로 늘 차이를 강조한다. 악은 함께 들어서 서로 한마음 한뜻이 되게 한다. 각종 기념식에서 음악이 빠지지 않는데, 서로의 역할은 다르지만 함께 신나게 음악을 불러서 동심(同心)을 갖게 된다. 『예기』의 지은이는 예만 강조되면 위계질서가 분명할지 모르나 사람 사이가 경직되고 소통이 되지 않는다. 악이 예에 의해서 경화된 사회의 관계를 부드럽게 할 수 있다. 악만 강조되면 사람 사이가 가까워질 수는 있지만 역할 구분이 흐물흐물해져서 질서가 잡히지 않게 된다. 예는 악에 의해서 흐트러진 사회의 기강을 바로잡을 수 있다.06 예와 악은 다르지만 둘이 협력할 때 사회에 따뜻한 질서와 부드러운 리더십이 자리할 수 있다.
• 상호 존중
예를 비판할 때, 과거에 예가 신분사회의 차등적 질서를 지탱하는 버팀목이었다는 점을 빠뜨리지 않고 이야기한다.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라는 지적으로 예를 도매금처럼 재단할 수는 없다. 예에는 차등적 질서를 뒷받침하는 측면이 있지만 사람 사이를 힘의 우열에 따라 폭력적인 상황으로 치닫지 않도록하는 측면이 있다. 전자를 버릴 구례(舊禮)라고 한다면 후자를 살릴 신례(新禮)라고 할 수 있다.
신분 사회였지만 예가 강조되는 것은 사람 사이가 권력의 유무, 소유의 다소에 의해서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나타낸다. 군주가 자신의 절대적 권력만을 내세운다면, 신하와 백성에게 절대적인 복종을 요구할 뿐 언어와 행실을 품위 있게 가다듬느라 신경 쓸 필요가 없을 것이다. 공자가 군주에게 예에 따라 신하와 관계를 맺으라고 강하게 요구했다.07 군주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권력에 도취해서 그것의 절대권을 휘두르지 않고 오히려 예에 의해서 권력의 야만성을 억제해야 했던 것이다. 이로써 예가 권력보다 더 상위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신분사회에서 예는 신분의 차이를 자연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게 했지만 동시에 그것에 도취해서 차이가 벌거벗은 폭력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막는 브레이크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사람 사이에 예가 있다는 것은 사람이 차이를 넘어서 상호 존중해야 할 존재로 거듭나게 하는 것이다. 예가 없는 무례한 사람은 자신이 가진 것에 푹 빠져서 그것 이외의 가치에 눈을 뜨지 못하는 청맹과니이다. 예를 가진 유례한 사람은 자신이 가진 것을 벗어나서 모두가 가져야할 것을 받아들이는 지혜로운 사람이다. 이 사람은 오늘날 필요로 하는 성숙한 시민 또는 개방적인 세계시민과 통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예기』의 첫 구절은 사람 사이가 상호 존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로 시작되고 좀 뒤에서 예는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높이면서 서로 같은 방식으로 주고받는다는 측면을 역설하고 있다.08 예가 있는 만큼 우리의 삶이 힘에 취한 폭력이 밀려나고 자신을 돌아보게 하여 사람에게 사람다운 무늬[人文]를 아로새기게 하는[印紋] 공간으로 자리하게 되는 것이다.
필자소개*
서울대학교에서 서양철학과 동양철학을 배웠고 대학원에서 동양철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유학·동양학부의 교수로 있다. 한국철학회 등 여러 학회의 편집과 연구 분야의 위원과 위원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사람다움이란 무엇인가』 『공자씨의 유쾌한 논어』 『제자백가의 다양한 철학흐름』 『동중서 중화주의 개막』 『동양철학의 유혹』 『사람다움의 발견』 『논어의 숲, 공자의 그늘』 『중용: 극단의 시대를 넘어 균형의 시대로』 『어느 철학자의 행복한 고생학』 『한비자』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백호통의』 『유학, 우리 삶의 철학』 『세상을 삼킨 천자문』『공자신화』 『춘추』 『동아시아 미학』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