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순진리회의 종지는 음양합덕, 신인조화, 해원상생, 도통진경이다. 이중 해원상생은 수도인들의 윤리적인 실천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대순지침』에서도 신앙체계의 정립을 ‘대순진리의 바른 이해’와 ‘진리에 의한 포덕·교화의 강화’ 이후 ‘해원상생과 보은상생의 윤리 실천’이라는 순서로 설명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해원상생을 실천하는 것은 신앙체계의 정립에 있어서 중요한 축을 이룬다. 도전님께서는 이 해원상생 대도의 윤리와 관련하여 “양편이 척이 풀려 해원이 되고 해원이 되어야 상생이 된다.”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처럼 상생을 이루기 위해서는 해원이 선결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이 해원은 어떤 의미인 것인가? 도전님께서는 “해원은 척을 푸는 일이며”라고 하시며 해원의 한 의미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셨지만 『전경』에는 다양한 용례에서 ‘해원’이라는 말씀이 사용되었음을 볼 수 있다. 『전경』에는 먼저 ‘해원시대’라는 말씀이 자주 보인다. 관련 내용을 보면, 이제는 해원시대이므로 남녀의 분별을 틔워 제각기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풀어놓았으나 이후로는 건곤의 위치를 바로잡아 예법을 다시 세운다고 하셨으며(공사 1장 32절), 해원시대를 당하였으니 천한 사람에게 먼저 교를 전한다고 하셨고(교운 1장 32절), 지금이 해원시대이며 양반의 인습을 버리고 천인을 우대하여야 척이 풀려 빨리 좋은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씀하셨다(교법 1장 9절). 그리고 해원시대를 맞이하여 명색이 없던 사람이 기세를 얻고 땅도 버림 받던 땅에 기운이 돌아온다고 하셨으며(교법 1장 67절), 선령신들이 해원시대를 맞이하여 선자 선손을 척신의 손에서 빼내어 내세운다고 말씀하셨다(교법 2장 14절). 또 해원시대이므로 덕을 닦고 사람을 올바르게 대우하라고 하셨으며(교법 2장 20절), 해원시대를 당하여 악을 선으로 갚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교법 3장 15절). 이 말씀에서 해원시대는 인간 사물이 모두 상극에 지배되어 세상에 원한이 쌓이고 맺혔던 선천시대와는 대비되는 시대이다. 선천시대가 포원(抱冤)과 결원(結冤)의 시대였다면 상제님의 천지공사에 의한 해원시대는 이런 원한을 푸는 시대이며 지상낙원의 후천 상생의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상극지리에 의한 선천시대에 소외와 차별 그리고 배제를 당했던 무당, 여성, 천인(賤人) 등의 사회계층은 해원시대를 맞이하여 속박에서 벗어나 기세를 얻게 된다는 말씀이다. 그렇다고 그것이 얻은 기세로 거리낌이 없이 마음대로 행한다든가 설움과 차별에 대한 복수 심리로 남의 위에 군림한다는 부정적 의미를 말한 것은 아니다. 즉 제각기 하고 싶은 대로 풀어놓았으나 예법이 다시 세워지며, 악을 선으로 갚아야 하고, 사람을 올바르게 대우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또 다른 ‘해원’의 용례를 살펴보면 ‘OO의 해원’ 또는 ‘OO를 해원한다’는 말씀을 찾아볼 수 있다. 즉 전명숙과 최수운(공사 3장 2절) 그리고 단주를 해원하셨으며(공사 3장 6절), 진시황의 해원도수를 보셨고(공사 3장 17절), 중국의 해원공사를 행하셨다(공사 3장 18절). 그리고 왕후장상의 해원(공사 2장 19절)과, 신인의 해원에 대해 언급하셨고(교운 1장 17절), 만고 역신을 해원하여 성수에 붙여 보내셨으며(교법 3장 6절), 진묵을 해원시키셨다(권지 2장 37절). 여기서의 해원의 의미는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먼저 그 해원의 대상이 상제님의 천지공사에 쓰인 전명숙, 진묵, 최수운인 경우다. 전명숙은 동학농민운동을 일으킬 때 상놈을 양반으로 만들고 천인(賤人)을 귀하게 만들어 주려는 마음을 두었으며, 진묵은 천상에 올라가서 온갖 묘법을 배워 내려 인세에 그것을 베풀고자 하였고, 최수운도 상제님의 천명과 신교를 받아 대도를 펴고자 하였다. 즉 이들은 모두 인류의 지선(至善)을 지향하였고 남을 잘 되게 하는 상생을 실현하고자 하였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들의 원은 개인적인 사사로운 원한이 아닌 대의를 실현하는 것이었으며 상생의 후천선경을 여시려는 상제님의 뜻과 통하였다. 그러므로 상제님께서 말씀하신 이들의 해원은 지상낙원의 후천선경을 여는 천지공사에 그들을 앞장 세우셔서 진력을 다하게끔 하신 것이다. 반면, 진시황, 왕후장상, 만고 역신 등의 해원은 전자의 경우와는 그 의미가 다르다. 이 경우의 원은 불로장생, 권력욕, 부귀영화 등의 사사로운 인간의 욕망을 충족하지 못하여 생긴 집착과 원통함이다. 따라서 해원도 왕후장상의 해원에서처럼 그 욕망을 일시적으로 이루어 해소하게 한다는 일차적인 의미와 함께 “인간의 의욕 발동을 반성하고 조정하여 수심연성(修心煉性)으로 허영과 야망을 경계하고 분수에 합당케 하여 후회 없이 하는 것이 해원(解冤)의 묘사(妙事)”(『포덕교화기본원리2』)라는 말씀처럼 수심연성한 욕망의 승화라는 내면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더 나아가 마음이 무욕청정이 되어 도통진경에 이르고 지상낙원의 후천선경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 궁극적 의미의 ‘해원’이다. 이 외에도 ‘해원을 구하다’(행록 2장 15절, 행록 4장 54절), ‘해원도수’(공사 2장 3절), ‘해원공사’(공사 3장 4절)라는 표현을 볼 수 있으며 여기서 한 가지 더 부가할 수 있는 해원의 의미는 상호간에 맺힌 척을 푸는 의미다. 관련 구절은 공사 1장 25절로 촌 양반과 읍내 아전 간의 반목과 갈등을 푸는 해원을 말씀하셨다. 이렇듯 『전경』에 나타난 ‘해원’의 의미는 다층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전경』 외에 『대순진리회요람』의 취지에는 “해원을 위주로 하여 천지공사를 보은으로 종결하시니 해원 보은 양원리인 도리로 만고에 쌓였던 모든 원울이 풀리고 세계가 상극이 없는 도화낙원으로 이루어지리니”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해원’은 천지 안에 모든 원울을 풀고 상생이 되게 하는 것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일은 오직 무변의 덕화와 위대한 권능의 소유주이신 상제님만이 계획하시고 성사하실 수 있다. 즉 해원의 주체가 바로 상제님이시고 그 대상은 단주, 진시황과 같은 역사적 인물, 각색의 새와 각종의 짐승, 신과 신명, 국가 등 천지 안의 모든 존재와 무리를 망라하고 있다. 상제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지금은 해원시대다. 그리고 해원시대이므로 남녀의 분별을 틔워 제각기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풀어놓았다고 하셨으며 난법을 세우고 그 후에 진법을 내리나니 모든 일을 풀어 각자의 자유의사에 맡긴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진정한 해원은 자신의 욕망대로 마음껏 하는 것이 아니다. 상제님을 진실로 믿고 성경신을 다하여 수도하며 척을 풀고 남을 잘 되게 하여 도통진경에 이르는 것이 진정한 해원이라 할 수 있다. 즉 상제님께서 열어 놓으신 후천선경에 이르도록 힘써 수도하며, 또한 많은 창생들에게 그 길을 알려주어 함께 가는 것이 바로 수도인들의 해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