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은 인간 본성에 대한 자각과 사회적인 인간관계 속에서 그 이상을 실현하고자 하기 때문에 유학의 핵심사상을 수기(修己)와 치인(治人)이라 요약할 수 있다. 이러한 유학의 핵심 사상과 실천 강령을 가장 체계적으로 밝힌 경전이자 훌륭한 유교의 입문서로 평가되어온 것이 『대학』이다.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대학』만큼 밀도 있고 체계적이며 총체적인 세계관을 불과 1,753개의 글자 속에 녹여놓은 경전도 없을 것이다.01 또한 『전경』에도 상제님께서 『대학』과 관련하여 언급하신 구절이 여러 번 나온다. 이 구절들에서 상제님께서 가르치고자 하셨던 뜻을 헤아리고 종단의 기본사업을 이해하는 데에도 『대학』에 대한 이해는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그것은 대순진리회의 기본사업이 포덕·교화·수도 공부인데, 남에게 덕을 베풀고 인도한다는 측면에서 포덕·교화는 치인과 자신을 닦는다는 의미에서 수도는 수기와 상통하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사마광(司馬光, 1019~1086)은 『예기(禮記)』의 한 편이었던 「대학」02을 분리해 그 단행본에 주석을 단 최초의 인물이다. 그리고 주자(朱子, 1130~1200)가 『대학장구』를 만든 이후 『대학』에 대한 해석은 매우 다양하게 진행되었다. 유학의 경서(經書)로서 『대학』만큼 학자들의 저작물에 많이 인용되고, 또 많은 논쟁의 씨앗을 후대에 남긴 서물도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중국에서는 왕양명(王陽明, 1472~1529), 왕부지(王夫之, 1619~1692), 당군의(唐君毅, 1909~1978) 등을 비롯하여 여러 학자가 『대학』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내놓았고, 우리나라에서도 윤휴(尹鑴, 1617~1680), 박세당(朴世堂, 1629~1703), 이익(李瀷, 1681~1763), 정약용(丁若鏞, 1762~1836) 등을 비롯하여 각각 나름의 설을 남긴 학자가 300명이 훨씬 넘는다.
이처럼 학자들의 다양한 설이 있지만 여러 개정본들 중의 하나인 『대학장구』가 중국과 주자학의 나라였던 우리나라에서 700년 이상 주류의 지위를 유지하며 정본(正本)으로 채택되어 왔다. 따라서 현재 일상에서 볼 수 있는 ‘대학’이라는 제목의 경전은 거의 모두가 『대학장구』를 대본(大本)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이 글에서는 『대학』에 대한 이해를 위해 『대학장구』 탄생의 배경을 비롯한 『대학』의 개략적인 역사와 주자의 해석을 알아보고자 한다. 그리고 나아가 이 책의 핵심 내용이 녹아있고 다양한 논의의 중심이었던 경1장의 내용을 대순사상의 관점에서 이해해 보고자 한다. 이로써 상제님께서 『대학』과 관련한 말씀을 통해 가르치고자 하셨던 뜻에 좀 더 나아가고 종단의 기본사업을 조금 더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Ⅱ. 『대학』의 역사
1. 『대학』의 발견
전한(前漢) 중기 예학(禮學)의 대가였던 대덕(戴德)과 대성(戴聖)이 있었는데, 숙부인 대덕이 분서갱유 이후 흩어진 선진(先秦)이래의 예에 관한 자료들을 수집하여 예경(禮經)을 복원하였다. 이것을 대성이 다시 정리하여 편찬한 것이 『소대례기(小戴禮記)』인데 이것을 『예기』라고 부른다. 『대학』은 원래 『예기』의 한 편(총 49편 중 제42편)으로 예에 관한 대표적 경전인 삼례(三禮), 즉 『예기』·『의례(儀禮)』·『주례(周禮)』에 능통한 학자가 아니면 그 존재를 모를 수 있을 정도로 일반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서물이었다.
이 서물을 유교논리의 근거를 제공하는 중요한 문헌으로서 그 존재가치를 발견하고 알린 사람은 중당(中唐)의 한유(韓愈, 768~824)였다. 당시는 도교와 불교가 크게 중흥했던 시기로 당대의 많은 지식인이 도불(道佛)의 초윤리적이고 탈세간적인 허구에 빠져 있었다. 여기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이러한 허구에서 벗어나 유교의 본래 윤리성인 인의(仁義)를 회복하고자 했다. 이러한 의도로 그는 「원도(原道)」라는 철학논문 속에서 요-순-우-탕-문왕-무왕-주공-공자-맹자로 이어지는 유교의 도통(道統)을 말했다. 또한 『대학』의 팔조목(八條目)에 해당하는 일부분을 인용하여 수신(修身)이 제가·치국·평천하로 이어지는 사회적 맥락을 강조하며 배불(排佛)의 근거를 제시하였다. 이로써 거의 900여 년 동안 꼭꼭 숨어있던 서물이 그에 의해 비로소 일반에게 알려지게 된 것이다.
2. 『대학』의 성립시기와 변천
먼저 『대학』의 성립시기를 알아보자. 몇몇 청의 유학자들과 일본의 타케우찌 요시오(武內義雄, 1886~1966) 등은 한(漢) 무제(武帝)가 대학이라는 교육기관을 만들었을 때 그 교육이념을 천명한 책이라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대학이라는 교육기관이 성립되어가는 과정에서 논의된 사상가들의 논설일 수도 있고, 『대학』과 같은 이념서 때문에 후대에 대학이 만들어졌다고도 얼마든지 논증할 수 있기 때문에 현재는 세계의 중국철학계에서 그 설을 수용하지 않고 있다.03
그리고 교육기관으로서의 ‘대학’이라는 명칭이 순자(荀子, 기원전 298?~238?)의 후학들이 기록하여 편집한 『순자』「대략(大略)」편에 처음 나오며,04 『여씨춘추』의 「존사(尊師)」편이 천자와 대학(교육기관)과의 관계를 명기한 최초의 문헌이다. 따라서 『대학』은 순자계열의 사상가가 전국시대의 다양한 사상을 집대성하여 새로 탄생하는 황제권력의 제약과 방향설정에 목적을 두고 강령화 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대학』의 집필시기를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하기 직전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다.05 통일의 기운이 무르익을 무렵, 전국시대의 혼란을 종식하고자 했던 당대 지식인들의 바람은 왕도의 구현이었을 것이다. 그 바람이 반영되어 천하를 통치하려는 자(천자)는 반드시 ‘수신’의 덕목을 갖춰야 한다는 도덕적 견제를 『대학』이 핵심내용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가정하면 가장 타당성이 있는 설인 것 같다.06
『대학』을 발견해낸 한유의 문제의식을 이어 그의 벗이자 제자이기도 한 이고(李翶, ?~844)는 『대학』을 비롯한 유교 경전들에서 철학적 측면을 찾아 이것을 유기적으로 연관 지어 총체적 담론을 형성하였다. 이로써 당대 불교적 세계관에 젖은 지식인들에게 형이상학적인 가치를 만족하게 하면서 유교 경전의 새로운 가능성에 눈을 뜨게 만들었다. 오대(五代)의 난을 평정하고 중국을 회복한 송(宋)왕조는 유학 존중의 풍조를 일으켰지만, 여전히 지식인들은 도불에 심취해 있었다. 이러한 시대상황에서 사마광은 군주의 내면적 덕성의 함양을 강조하는 사상적 경향을 띠었다. 이 같은 맥락에서 그는 황제가 물욕이나 간신들의 부당한 유혹을 잘 막는[한어(扞禦)] 것이 ‘격물’이라고 해석하였으며, 『대학』 단행본에 주석을 단 『대학광의(大學廣義)』를 편찬하였지만 전하지 않는다.
그리고 정명도(程明道, 1032~1085)와 정이천(程伊川, 1033~1107) 형제는 『대학』이 혼란스럽다고 판단하여 나름대로 그 배열을 바로잡는 『개정대학(改定大學)』이라는 새로운 서물을 각각 제시했다. 이 책에서 정명도는 최초로 경전(經傳)체제07로써 배열하였다. 북송시대에는 이미 자유로운 학문풍토가 보편화하여 경전을 재배열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주자는 이정(二程: 정명도·정이천)이 일구어 놓은 성과를 종합하고 보완하여 『대학』을 이정의 배열과는 다르게 재배열하였다. 이로써 경전체제를 갖춘 『대학장구』를 완성하였는데, 여기서 장구란 먼저 장(章)을 나누고 그 한 장을 다시 구(句)로 나누어 주석을 달았다는 의미이다.
이 『대학장구』는 송 대 이래로 사회 운용에 책임의식을 가진 신진 사대부 계층이 도덕 주체이자 정치 주체로서 활약하는 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게다가 실천 강령의 서술이 분명하지만, 그 철학적 근거가 열려 있어 새로운 유학을 재건하려는 왕양명을 비롯한 후대의 유학자들에게 매우 사랑받는 경전이 되었다. 또한, 원나라 이후 중국과 조선시대에는 『사서집주(四書集註)』가 과거시험의 표준과목으로 채택되어 『대학』은 과거를 준비하는 선비들의 필수 과목으로 자리 잡는 등 동아시아의 학술계에서 수백 년 동안 영광을 누린 서물이었다.
3. 『대학장구(大學章句)』 탄생의 배경
형이상학적 이론 배경을 갖고 있는 불교가 기원 전후 시기에 전래하여 수·당 대에는 도불이 중흥하였다. 송 대에도 이러한 영향이 남아 당시의 지식인들이 도불에 심취하여 초윤리적이고 탈세간적인 허구에 빠져있었다. 이에 대한 철학상의 비판적 극복이 과제 상황이었다. 그래서 이정과 주자를 비롯한 성리학자들은 당시 지식인들의 관심을 대체할 만한 형이상학적인 이론이 필요하였다. 그리고 주자는 정강지변(靖康之變)08 이후 굴욕적으로 여진족의 금과 대치하던 남송 당대의 문제의식 속에서 씨름하고 산 사람이었다. 이러한 망국의 굴욕 속에서 도불에 빠져 현실을 등한시하는 지식인들을 각성케 하고자 했다.
또한, 당시 권력의 핵심은 황제와 사(士)일 뿐이었다. 당대의 사대부는 이미 식읍을 소유한 경대부(卿大夫)가 아니며, 단순히 과거를 통해 권력의 자리를 부여받은 특별한 존재인 행정관료였다. 이들은 주로 서민 출신의 신흥계층으로 어려서부터 도덕기반이나 소양을 체질적으로 확보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부패할 가능성이 있었다. 주자는 이들 신흥관료를 어떻게 도덕화시킬 수 있느냐 하는 문제에 전념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시대적 요청을 충족시킬 가장 적절한 서물이 바로 『대학』이었다. 앞에서 기술한 바와 같이 한유로부터 이정에 이르러 대학은 이미 형이상학적인 이론체계가 충분히 쌓여 있었고, 도덕적인 실천 강령을 체계적으로 보여주는 훌륭한 서물이었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대학장구』, 곧 새로운 체제의 『대학』이 탄생한 것이다. 이 『대학』을 중심으로 주자는 『사자서(四子書)』09를 만들어 한·당 대까지 너무 난해하여 일반인들의 접근이 어려웠던 오경(五經) 중심의 학문풍토를 사서 위주로 바꾸었다. 이것은 도불에 익숙한 당시 지식인들의 학풍을 다시 유학으로 바꾸는 일대 패러다임의 대전환이었다. 이로써 유학이 다시 부흥하게 되었고, 이러한 이유로 주자를 ‘신유학의 완성자’라고 하며 그 중심에 『대학』이 있었던 것이다. 주자는 39세에 『대학장구』의 저술에 들어가 45세에 그 초고(草稿)와 『대학혹문(大學或問)』10의 초고를 지었으며, 이후 그것을 계속 검토하고 수정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주자의 『대학』 연구는 60세에 「대학장구서(大學章句序)」를 쓰면서 일단락되었지만, 71세로 세상을 뜨기 사흘 전까지 다듬었고 그것이 절필(絶筆)이었다고 하니 평생의 정력이 『대학장구』에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Ⅲ. 『대학』의 구성 및 내용11
주자는 『대학혹문』의 서두에서 ‘대학’은 어린아이의 학문에 대칭(對小子之學)하여 말한 것으로 어린아이가 『소학』을 배우고 나서 장성하여(오늘날로 보면 고등학생이나 대학생 정도) 마땅히 배워야 하는 어른의 학문(大人之學)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대학』은 경1장(또는 ‘상장’이라고도 부름, 205자)과 전10장(1,548자)으로 구성되어 있고, 경과 전의 구절마다 주자의 주석이 가해져 있다. 주자는 경1장의 끝에 ‘右經一章 蓋孔子之言而曾子述之 其傳十章 則曾子之意而門人記之也 舊本 頗有錯簡 今因程子所定而更考經文 別爲序次如左’12라 언급하며, 경문과 전문으로 나누고 다시 그 전문의 차례를 정한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경전체제 외에도 『대학』 원문과 다른 점은 원문을 크게 이동시켜 배열하였고 세 글자를 고쳐 읽었으며 네 글자를 삭제한 것으로13 이것은 모두 정이천을 따른 것이다. 또한, 전5장에 궐문(闕文: 빠진 문장)이 있다며 격물치지(格物致知)의 내용을 작성하여 삽입하였는데, 모두 134글자로 된 문장이며 일명 보망장(補亡章)이라 한다. 그리고 『대학』의 전체 구조를 삼강령(三綱領) 팔조목으로 파악한 점, 친민이 아닌 신민설(新民說)을 확정 지어 공표한 점, 격물을 즉물궁리(卽物窮理)로 해석한 점 등등의 특색을 보여준다. 이것들은 대부분 이정의 견해를 발전시켜 확정 지은 것들이지만, 체계를 세우고 근거를 확실하게 제시한 점으로 볼 때 그 공헌이 대단하다 할 것이다.14
1. 경1장(상장)[經一章(上章)]
이 장에서는 먼저 삼강령을 선언적으로 제시하고, 이어서 강령을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이 삼강령을 현실적인 개념으로 구체화해서 팔조목으로 나열하여 그 실현과정을 말하고 있다.15 『대학혹문』에서 “대저 대학의 뜻은 종합하여 말하면 여덟 가지 일(八事: 팔조목)에서 벗어나지 않고, 여덟 가지의 요점은 종합하여 말하면 또한 이 세 가지(三者: 삼강령)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것이 나는 단연코 대학의 강령이라고 생각하기에 의심치 않는다.”라고 밝힌 바와 같이 이 장에 『대학』의 뜻이 종합되어 있는 것이다.
①에서 ③까지는 삼강령에 대한 구절이다. 먼저 ‘명덕’은 인간이 하늘로부터 얻은 것으로 텅 비어있지만 신령하고 어둡지 않아서(虛靈不昧) 모든 이치를 갖추고(具衆理) 모든 일에 응하는(應萬事) 것이다. 그러나 이 명덕이 기품(氣稟)에 구애되고 인욕(人欲)에 의해 어두워지게 되므로 배우는 자는 마땅히 그 명덕을 밝혀서 처음의 본성을 회복하는 것이 곧 ‘명명덕’이라 하였다. ‘신민’은 스스로 그 명덕을 밝혔으면 마땅히 남에게까지 미쳐서 그로 하여금 또한 옛날에 물들었던 더러운 것을 제거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곧, 명명덕을 타인에게 확대해 나가는 대중에 대한 교화를 뜻한다. 마지막으로 ‘지선’은 사리(事理)의 당연한 극치(極致: 표준)이니 ‘지어지선’은 명명덕과 신민을 마땅히 지선(至善)의 경지에 그쳐서 옮기지 않음을 의미한다 하였다.16
②의 구절은 명덕과 신민이 지선에 그침을 얻어가는 유래를 말한 것으로, 그쳐야 할 지극한 선을 안 뒤에 정(定)·정(靜)·안(安)·려(慮)의 과정을 통해 능히 지선에 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정’(定)은 정한 방향이고, ‘정’(靜)은 마음이 고요한 것이며, ‘안’(安)은 몸이 편안한 것이요, ‘려’(慮)는 꼼꼼히 생각한다는 뜻이다. ②의 과정이 하나의 이론적인 틀이라면 이것을 실천으로 옮겨야 그 결과를 얻을 수 있는데, ③의 구절은 그 실천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요령에 대한 설명이다. 상황에 따라 그 본말(本末)과 종시(終始)를 잘 파악하여 먼저 할 일과 나중에 할 일을 잘 안배하는 것이 곧 최선의 방법(道)에 가깝다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사의 모든 사물17에 다 통용되는 중요한 이치인데, 여기서 ‘명덕’은 본(本)이 되고 ‘신민’은 말(末)이 되며 ‘지지’는 시(始)가 그리고 ‘능득’은 종(終)이 된다.
④와 ⑤는 대학(大人之學)의 차례를 상세하게 밝힌 것으로 삼강령의 조목이라 하였다.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여 앎을 지극히 한다는 격물과 치지를 비롯하여 성의·정심·수신은 ‘명명덕’이며, 제가·치국·평천하는 ‘신민’의 일이다. ‘명명덕어천하’란 스스로 자신의 명덕을 밝히고 이를 미루어 백성을 새롭게 하여 천하의 모든 사람에게까지 제각기 명덕을 밝히게 하는 것이다. 사람마다 모두 명덕을 밝히면 각기 그 뜻을 참되게 하고(誠), 그 마음을 바르게 하고, 그 몸을 닦고, 그 부모에게 효도하고, 어른을 공경하여 천하가 태평하게 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격물치지성의정심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순차적으로 해석하여 수신이 완전하게 이루어진 이후에 제가가 되고, 제가가 다 이루어져야 치국이 가능하다는 뜻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격(格)·치(致)·성(誠)·수(修)·제(濟)·치(治)·평(平)의 행위는 항상 동시적으로 이뤄나가야 하며, 인간이 영원히 노력해서 마땅히 이뤄가야 할 것이다. ‘고지욕명명덕어천하자’와 ‘천하평’은 같은 내용이지만 차원은 다르다. 전자는 천하에 명덕을 밝히려 하는 목적의식과 출발점을 말하는 것이라면, 후자의 천하평은 천하가 이미 화평한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목적의식의 실현 및 완성을 의미한다고 하겠다.18
⑥의 절은 ④와 ⑤ 두 절의 뜻을 끝맺은 문장이다. 몸을 천하·나라·가정과 상대하여 말하면 몸은 근본(本)이 되고, 천하·나라·가정은 말단(末)이 된다. 또 가정을 천하·나라와 상대하여 말하면 가정은 근본이 되고 천하·나라는 말단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후(厚)하게 해야 할 것과 박(薄)하게 해야 할 것으로 나뉘고 또한 차등이 없을 수 없게 된다. 이 때문에 격물치지와 성의·정심으로 몸을 닦지 않으면 근본이 어지러워짐으로써 말단적인 것이 다스려질 수 없게 된다. 따라서 후해야 할 것(本)을 박하게 하고 박해야 할 것(末)을 후하게 하여 성공하는 사람은 일찍이 있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2. 전10장(傳十章)
1장: 명명덕, 2장: 신민, 3장: 지어지선, 4장: 본말, 5장: 격물치지,
6장: 성의, 7장: 정심수신, 8장: 수신제가, 9장: 제가치국, 10장: 치국평천하
1장부터 4장까지는 삼강령에 대한 해석을, 5장부터 10장까지는 팔조목에 대한 해석을 순서대로 배치하였다. 이 순서는 경문의 논리전개를 따른 것이다. 주자가 전문의 서두에서 밝힌 것처럼 모든 전문은 경과 전을 섞어 인용하여19 통기[統紀: 조리(條理)]가 없는 듯하다. 하지만 문리(文理)가 이어지고 혈맥이 관통하는 것처럼 지극히 정밀하게 구성되어 있다. 전문의 끝에서 주자는 5장은 바로 선(善)을 밝히는 요체이고, 6장은 몸을 성실히 하는 근본이니 초학자(初學者)가 마땅히 힘써야 할 급선무라며 격물치지와 성의를 특히 강조하였다.
이와 같은 구성으로 『대학장구』를 개편한 것이 착간이나 연문 등 문헌학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주자는 말했다. 하지만 이것은 표면적인 이유이고 그 본질은 사상사적인 문제가 있는 것이다. 『대학』 원문의 표현과 구성이 완벽하지는 않지만, 자체 논리가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고대 유가(儒家)들이 지향하던 이상적인 통치자상을 충분히 헤아려 볼 수 있다. 그들이 말한 ‘명덕’은 주자가 말한 것처럼 허령불매하며 구중리하여 인간을 도덕 주체가 되게 하는 그 어떤 것이 아니라, 단순히 실천을 전제로 한 윤리적인 덕목으로서의 개념이었다. 2장의 『시경』 「강고」와 「문왕」편에서의 ‘신(新)’도 천명(天命)의 교체를 의미하는 문자이지 백성의 도덕성을 회복시키라는 말이 아니다. 대체로 원시유가는 지도자가 도덕성을 갖출 것을 요구하고 나아가 백성을 가까이하여(親民) 백성이 지도자의 덕에 감화되기를 요구하였다. 주자가 해설한 명명덕 → 신민은 결국 도덕적 이상사회를 이루고자 했던 성리학의 이념을 바탕으로 해석한 것이다.20
또한, 『대학』 원문과 『대학장구』의 핵심적인 차별성은 ‘성의’와 ‘격물’에서 드러난다. 『대학』원문이 성의를 통한 수신을 근본으로 삼고 있는 반면, 『대학장구』는 ‘격물치지전’을 보완하여 ‘격물’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주자의 ‘격물치지’는 외부세계에 대한 투철한 인식을 통하여 지식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그런데 성리학자들이 태극과 이기(理氣)를 가지고 우주론과 세계관을 정비할 수 있었던 것도 주지(主知)에 바탕을 둔 투철한 세계 인식의 결과였다. 주자가 격물을 강조한 것도 이러한 성리학의 주지적인 경향이 잘 드러난 것이다. 따라서 『대학장구』는 『대학』원문을 송 대 성리학적 논리로 재구성한 결과물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21
Ⅳ. 대순사상 관점에서의 이해
상제님께서 재세 시에 『대학』 만큼 그 제목이나 구절들을 수차례 거론하신 서물도 없다. 그만큼 중요하게 여기신 것 같다. 먼저 아우 영학에게 『대학』과 관련하여 말씀하신 구절이 세 번 나오는데, 영학은 평소에 도술 배우기를 원해 상제님께도 간청한 일이 있었다. 이에 상제님께서 그의 소원을 들어주고자 행하신 내용과 관련된 구절이 권지 1장 15절이다. 이 일이 있은 후에도 영학이 술서(術書)를 공부하는 등 도술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자 상제님께서 『대학』을 읽을 것을 명(命)하셨는데, 영학이 그 명을 어기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내용이 나머지 두 구절에 나온다.
상제께서 아우 영학(永學)에게 부채 한 개에 학을 그려 주시고 “집에 가서 부치되 너는 칠성경(七星經)의 무곡(武曲) 파군(破軍)까지 읽고 또 대학(大學)을 읽으라. 그러면 도에 통하리라”고 이르셨도다. 영학이 돌아가는 길에 정 남기의 집에 들르니 그 아들도 있었는데 아들이 부채를 탐내어 빼앗고 주지 않으니라. 영학이 그 부채의 내용 이야기를 말하니 아들은 더욱 호기심을 일으켜 주지 않으니 하는 수 없이 영학은 빼앗기고 집에 돌아왔도다. 아들은 부채를 부치고 대학의 몇 편을 읽지도 않는데 신력이 통하여 물을 뿌려 비를 내리게 하며 신명을 부리게 되는지라. … .(권지 1장 15절)
상제께서 갑진년 二월에 굴치(屈峙)에 계실 때 영학에게 대학을 읽으라 명하셨으되 이를 듣지 않고 그는 황주 죽루기(黃州竹樓記)와 엄자릉 묘기(嚴子陵廟記)를 읽으니라. 상제께서 “대(竹)는 죽을 때 바꾸어 가는 말이요 … .(권지 1장28절)
처음부터 영학(永學)은 도술을 배우기를 원했으나 상제께서는 그것을 원치 말고 대학을 읽으라 하셨는데도 명을 어기고 술서를 공부하기에 시(詩)를 보내어 깨닫게 했으나 상제의 말씀을 듣지 않더니 기어코 영학이 죽게 되었느니라. … .(권지 1장 29절)
위 15절에서 『대학』의 용도는 28·29절에서와는 다름을 알 수 있다. 15절의 ‘도에 통하리라’는 말씀 속의 ‘도’22는 ‘신력이 통하여’, ‘신명을 부리게 되는지라’ 등과 아울러 전반적인 내용을 고려하면 ‘도술’을 의미하는 것 같다. 곧, 도술을 통하게 하는 용도로써 『대학』에 기운을 붙여 쓰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28·29절에서의 『대학』은 도술을 배우는 것과는 상대적인 의미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도술과 관련하여서는 상제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상제께서 이르시기를 “너희들이 항상 도술을 배우기를 원하나 지금 가르쳐 주어도 그것은 바위에 물주기와 같아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밖으로 흘러가니라. 필요할 때가 되면 열어주리니 마음을 부지런히 하여 힘쓸지니라” 하셨도다.(교법 2장 12절)
여기서 당시에 많은 종도가 도술 배우기를 소원했음과 그런 종도들에게 도술을 배우기에 앞서 마음을 부지런히 하여 힘써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셨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무엇에 힘써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지 않다. 상제님께서 말씀하신 “호생의 덕을 쌓아야 하느니라”,23 “마음을 바로 하고 덕을 닦기에 힘쓰라.”24라는 등의 구절과 수도의 본질을 생각하면 도술을 배우기에 앞서 마음을 바로 하고 덕을 닦는 것이 근본임을 밝히신 것으로 해석된다. 따라서 마음을 바로 하고 덕을 닦는 요령을 체득케 하고자 하신 뜻에서 수기와 치인이라는 유학의 핵심사상을 체계적으로 밝힌 『대학』을 중요하게 여기신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이 책의 핵심내용이 담긴 경1장을 살펴보도록 하자.
1. 경1장
『전경』에서 경1장을 특히 중요하게 여기셨음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 다음의 두 구절이다.
… 상제께서 종도들의 지혜를 깊게 하는 일에 골몰하시더니 어느 날 종도들에게 “대학(大學) 우경일장(右經一章)을 많이 외우라. 거기에 대운이 있나니라”고 말씀하셨도다.(교운 1장 55절)
상제께서 항상 말씀하시기를 “서전 서문(書傳序文)을 많이 읽으면 도에 통하고 대학 상장(大學上章)을 되풀이 읽으면 활연 관통한다” 하셨느니라. 상제의 부친께서는 말씀하신 대로 많이 읽지는 못하였으나 끊임없이 읽었으므로 지혜가 밝아져서 마을 사람들의 화난을 덜어 준 일이 많았도다.(교법 2장 26절)
이 두 구절에서 경1장을 많이 외우는 가운데 대운(大運)이 있고, 되풀이 읽음으로써 활연관통(豁然貫通)할 수 있음을 시사하셨다. 사람은 일상에서 끊임없이 선택의 순간을 맞이하게 되는데, 이때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운명을 결정짓게 된다. 여기서 그 사람의 가치관이나 생각 그리고 마음의 끌림 등이 어우러져 판단의 기준으로 작용한다. 얼마나 최선의 판단 기준을 갖추었느냐가 지혜의 정도를 가늠하는 척도일 것이다. 그러므로 지혜가 밝을수록 대운을 열어나갈 수 있는데, 그 요령이 경1장에 잘 나타나 있다는 뜻으로 이해해 볼 수 있다.
활연관통이란 주자가 사용한 말로 『대학장구』의 보망장에 나온다.25 이 말은 ‘인간의 삶의 현실을 지배하는 여러 가지 이치나 법칙에 관한 객관적인 탐구를 해나가다 보면, 하루하루 지식이 쌓여가는 가운데 어느샌가 확 트여 드넓은 세상이 한 줄로 꿰어져 이해된다.’는 상식적인 차원에서의 의미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돈오(頓悟)와 비슷한 말이기도 하지만, 주자 후대에 다소 과장되고 신비적으로 해석되어 마치 대오(大悟)나 득도(得道)의 경지로 이해되었다.
‘도에 통한다’는 의미도 상제님의 부친께서 끊임없이 읽어 지혜가 밝아졌다는 내용을 고려하면 ‘인간 삶의 현실을 지배하는 여러 가지 이치나 법칙에 통한다’는 정도로 보아야 할 것이다. 만약 『대순진리회요람』에서 말하는 도통의 개념26으로 이해하면, 서전 서문만을 읽어도 도통이 가능하다는 뜻이 된다. 따라서 상제님께서 정하신 천지도수와 가르침에 따라 도주님께서 짜놓으신 도법을 통한 수도 없이 도통은 불가능한 것이니 상충(相衝)하는 해석이 된다. 그러므로 도통을 좁은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결론적으로 이 두 구절을 통해 경1장은 종도들의 지혜를 밝히고 나아가 사물의 이치에 활연관통하게 하는 용도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전경』에는 경1장이 병자를 제생케 하는 데에도 쓰였음을 알 수 있는 내용이 있다.
동곡 김 갑진(金甲辰)은 문둥병으로 얼굴이 붓고 눈섭이 빠지므로 어느 날 상제를 찾고 치병을 청원하였도다. 상제께서 갑진을 문 바깥에서 방쪽을 향하여 서게 하고 형렬과 그 외 몇 사람에게 대학 우경일장을 읽게 하시니라. 十여 분 지나서 갑진을 돌려보내셨도다. 이때부터 몸이 상쾌하여 지더니 얼마 후에 부기가 내리고 병이 멎었도다.(제생 14절)
… 상제께서 그 집 주인을 보시더니 “저 사람이 창증으로 몹시 고생하고 있으니 저 병을 보아주라”고 종도들에게 이르시고 “대학지도 재명명덕 재신민 재지어지선(大學之道在明明德 在新民在止於至善)”을 읽히시니라. 집 주인은 물을 아래로 쏟더니 부기가 빠지는도다. ….(제생 32절)
이 구절들과 유사하게 시천주와 한시(漢詩)를 읽게 하여 병에서 제생하게 하시는 구절이 있는데,27 모두 상제님의 권능으로 그 글에 기운을 붙여 쓰신 것으로 이해된다. 여기서 시천주의 뜻이나 한시와 『대학』 경1장의 문장 내용이 병자의 제생과 관련이 있는지는 구체적으로 알기 어려운 부분이다.28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대학』 경1장은 대인의 학문 내용을 체계적으로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한 경문(經文)으로서 도인들의 지혜를 밝혀 사물의 이치에 활연관통케 하고 병자를 제생케 하는 등의 일에서 중요하게 쓰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이러한 경문의 핵심인 삼강령과 팔조목을 대순사상의 관점에서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2. 삼강령
주자는 명덕(明德)을 인간이 하늘로부터 얻은 신령하고 밝은 것인데, 품부(稟賦) 받은 기질(氣質)의 차이와 인욕(人欲)에 의해 그 밝음이 가려져서 어둡게 된다고 한다. 따라서 그 본래의 밝음을 회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명명덕(明明德)의 과정이다. 곧, 인간의 선하고 밝은 본성을 온전히 실현하기 위한 작업이라는 의미인데, 팔조목에서 격물·치지·성의·정심·수신이 이 과정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그러면 대순사상의 관점에서는 명명덕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 양심(良心)은 천성(天性) 그대로의 본심(本心)이요, 사심(私心)은 물욕(物慾)에 의하여 발동하는 욕심이다. 원래 인성의 본질은 양심인데 사심에 사로잡혀 도리에 어긋나는 언동을 감행하게 됨이니 사심을 버리고 양심인 천성을 되찾기에 전념하라. 인간의 모든 죄악의 근원은 마음을 속이는 데서 비롯하여 일어나는 것인즉 인성의 본질인 정직과 진실로써 일체의 죄악을 근절하라.
위 글은 『대순진리회요람』에서 훈회(訓誨)의 첫 번째인 ‘마음을 속이지 말라’를 설명한 내용이다. 여기서 물욕에 의하여 발동하는 사심을 버리고 인성의 본질인 양심, 곧 천성(하늘로부터 부여받은 본래의 성품)을 되찾기에 전념하라 하였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체의 사심을 버리고 천성을 되찾기에 전념할 때 비로소 마음을 속이지 않게 된다는 의미이다. 이 글에서의 양심은 주자가 말한 명덕의 의미와 거의 같은 개념이다. 모두 인성의 본질은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며, 선하고 밝아 물욕에 의해 비롯되는 사심과 대비된다고 규정한다.
마음을 속이지 않는 것을 무자기(無自欺)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도인의 옥조(玉條)이며 대순진리회 목적의 첫 번째 항목이다. 무자기가 바탕이 되지 않고는 도인으로서 목적하는 바를 이룰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또한 『대순지침』에서는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내 마음을 거울과 같이 닦아서 진실하고 정직한 인간의 본질을 회복했을 때 도통에 이른다.(p.38)
상제님의 말씀을 항상 마음에 새겨 언행과 처사가 일치되게 생활화하여 세립미진(細入微塵)되고, 마음이 무욕청정(無慾淸淨)이 되었을 때 도통진경에 이르니라.(p.39)
이 도전님의 말씀을 근거로 보면 인욕의 사(私)를 버리고 진실하고 정직한 인간의 본질을 회복해 나가는 과정이 도통을 이루기 위한 전제이며 수도의 과정이라 해석된다. 곧, 주자가 말한 명명덕의 과정은 대순사상의 측면에서는 수도의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신민(新民)은 스스로 명덕을 밝혔으면 마땅히 남에게까지 미쳐서 그들로 하여금 명덕을 실현하게끔 하는 것이라 한다. 명명덕을 남에게 확대해 나가는 교화를 뜻하는 것으로 제가·치국·평천하가 신민의 일이라고 했다. 이 신민은 결국에는 힘에 의한 정복이 아니라 개개인의 끊임없는 자각으로 획득된 도덕성을 천하에 실현하여(평천하) 그 속에 있는 모든 사람이 평화롭게 살아가는 원대한 정치 이상의 세계를 실현해 가는 과정이란 뜻이다.29 이것은 대순사상에서의 포덕·교화 의미와 비교하여 볼 수 있을 것이다.
주자의 신민이 명명덕의 구현이라는 단순한 의미라면, 대순사상에서의 포덕·교화는 더 다양한 의미가 있다. 『대순지침』의 포덕과 관련한 다음 구절들을 보자.
포덕은 해원상생·보은상생의 양 원리인 대도의 이치를 바르게 알려 주는 것이다.
포덕은 인도(人道)를 선도하여 윤리도덕의 상도(常道)를 바로 이룩하는 것이다.(p.19)
포덕은 『전경』을 바탕으로 하여 상제님의 대순하신 광구천하의 진리로 구제창생키 위한 대인접촉이다.
해원상생 대도의 참 뜻을 전하는 것이 포덕이며, 포덕천하(布德天下)가 되어야 광제창생이 되는 것이다.(p.21)
여기서 포덕은 인도를 선도하여 윤리도덕의 상도를 구현하는 것뿐만 아니라, 해원상생·보은상생의 양 원리인 대도의 이치를 바르게 알리고 나아가 대순진리로 구제창생키 위한 일이라 정의하고 있다. 주자의 신민은 명덕이라는 도덕성을 매개로 하지만, 대순사상에서의 포덕·교화는 도덕성뿐만 아니라 반드시 상제님의 진리를 통해서 이루어 나가야 한다는 뜻이다. 곧, 개개인의 자각에 의한 도덕성의 실현과 아울러 상제님의 진리로써 포덕천하해 나가는 일련의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지어지선(至於至善)에 대해서는 “지선은 사물의 당연한 극치이니, 지어지선은 명명덕과 신민이 모두 마땅히 지극히 착함에 그쳐 옮기지 않음을 말하는 것으로 대개 반드시 천리의 극진함을 다하여 털끝만큼의 사사로운 인욕이 없게 함이다.”30라고 하였다. 곧, 명덕에도 지선이 있고 신민에도 지선이 있으니 지선은 그 극치점이요, 지어지선은 명덕·신민과 구별되는 또 다른 것이 아니라 이것이 모두 최고의 경지에 이른다는 뜻이다. 이것을 대순사상의 관점에서 보면 개개인의 수도의 완성으로 무욕청정이 되어 도통진경(道通眞境)에 이르고, 포덕천하가 완전히 실현되어 상제님의 진리 속에서 인류화평이 구현된 세상을 이룩하는 것이라 이해할 수 있다. 곧, 지상낙원의 세상이 이룩된 경지를 말한다. 이 경지는 『전경』의 다음 구절에서 설명한 내용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후천에는 또 천하가 한 집안이 되어 위무와 형벌을 쓰지 않고도 조화로써 창생을 법리에 맞도록 다스리리라. 벼슬하는 자는 화권이 열려 분에 넘치는 법이 없고 백성은 원울과 탐음의 모든 번뇌가 없을 것이며 병들어 괴롭고 죽어 장사하는 것을 면하여 불로불사하며 빈부의 차별이 없고 마음대로 왕래하고 하늘이 낮아서 오르고 내리는 것이 뜻대로 되며 지혜가 밝아져 과거와 현재와 미래와 시방 세계에 통달하고 세상에 수·화·풍(水火風)의 삼재가 없어져서 상서가 무르녹는 지상선경으로 화하리라.(예시 81절)
3. 팔조목
격물(格物)은 천하만물의 이치를 객관적으로 탐구하는 일이요, 치지(致知)는 격물을 통하여 만물의 이치를 온전히 다 알게 되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 그 탐구의 대상을 천하만물의 이치라고 광범위하게 말했지만, 실지로는 군신·부자·부부·장유·붕우 등의 오륜(五倫)과 관련한 것을 주로 하고 있다. 성의(誠意)는 그 뜻을 참되게 한다는 의미인데, 여기서 ‘뜻’은 ‘마음이 발동하는 것(心之所發)’을 말하는 것이니 마음이 발동하는 것을 참되게 하라는 의미이다. 곧, 반드시 스스로 속이지 않는 것(毋自欺)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그 홀로를 삼가는 것(愼獨)이라 했다. 여기서 신독은 마음이 발동하여 선과 악으로 나뉘는 그 미세한 순간(幾善惡)을 남은 알지 못하고 오직 자신만이 알 수 있으니 그 순간을 삼가라는 뜻이다.
또한, 성의는 스스로 닦음의 첫 번째(自修之首)라 했다. 성의·정심(正心)·수신(修身)은 모두 자수(自修)의 일이다. 그런데 마음의 바름과 바르지 않음, 몸의 닦임과 닦이지 않음이 모두 뜻이 참되냐 참되지 못하냐에 달려 있기 때문에 스스로 닦음의 첫 번째라 한 것이다. 곧, 성의가 개인의 수양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에 있다는 말이다.
정심은 인간의 마음에는 여러 가지 감정이 일어나게 마련이지만 내 몸이 이 감정의 지배를 받게 되면 마음이 바르게 될 수 없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마음을 집중시켜 항시 마음을 바르게 보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신에 대해서는 마음을 바르게 보존해야 몸을 검속(檢束)할 수 있으니 군자는 마음을 살펴 경(敬)으로써 곧게 하여 마음을 항상 바르게 보존해야 비로소 몸이 닦인다고 하였다. 이처럼 정심과 수신의 관계 속에서 정심과 수신을 논하고 있다.
수신제가(齊家)에서도 또한 수신이라는 개념을 논술한 것이 아니고 제가와의 관련성 속에서 수신을 논하고 있는데, 수신의 요체는 가치의 양면성을 전관하는 포괄적 덕성을 함양함으로써 가(家: 과거에는 대가족 개념)의 인간관계를 공평하게 만드는 것이라 할 수 있다.31 제가치국(治國), 치국평천하(平天下) 역시 마찬가지 구도로 설명하고 있다. 먼저 제가치국에 있어서 제가의 도리는 효(孝)·제(弟)·자(慈)인데, 국가의 군주를 섬기고 장관(長官)을 섬기고 백성을 다스리는 도가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리고 치국평천하의 관계에서는 군주가 혈구지도(絜矩之道: 일정한 기준이나 원칙에 의해 사물이나 타인을 대하는 도)에 기반을 둔 인(仁)의 정치를 행함으로써 평천하를 이룰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평천하는 천하라는 영토적 범주를 정하기도 어렵고, 각 나라마다 주권을 가지고 자주적인 정체성을 확립하고 있기 때문에 현 시대에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따르는 개념이다.
이상의 팔조목에서 격물치지는 앎의 문제이며 성의정심수신은 수양의 문제이고 제가치국평천하는 치인의 문제이다. 이것은 군자가 동시적으로 마땅히 이뤄나가야 할 과정으로 항시 상호 간에 본말의 관계에 놓여 있어 상대적으로 후하게 하거나 박하게 할 대상이 된다.
이 팔조목을 대순사상의 관점에서 이해해 보자. 먼저, 격물치지는 우리 도의 생명인 종통과 종지·신조·목적 등의 대순진리를 올바르게 이해하여 신앙체계를 바르게 정립하는 일일 것이다. 치국평천하를 이루기 위한 첫 단계가 격물치지에서부터 시작되듯이 신앙체계의 정립은 도인으로서 그 목적인 도통의 완성을 이루고 지상천국을 건설하는 첫 번째 단계가 된다. 이러한 까닭에 『대순지침』의 목차에서도 ‘신앙체계의 정립’이 그 첫 번째 항목이 된 것일 것이다.
다음으로 성의정심수신은 『대순진리회요람』의 「취지」문에 잘 나타나 있다.
… 오직 우리 대순진리회는 성·경·신 삼법언(三法言)으로 수도의 요체(要諦)를 삼고 안심·안신 이율령(二律令)으로 수행의 훈전(訓典)을 삼아 삼강오륜을 근본으로 평화로운 가정을 이루고 국법을 준수하여 사회도덕을 준행하고 무자기를 근본으로 하여 인간 본래의 청정한 본질로 환원토록 수심연성(修心煉性)하고 세기연질(洗氣煉質)하여 음양합덕·신인조화·해원상생·도통진경의 대순진리를 면이수지(勉而修之)하고 성지우성(誠之又誠)하여 ….
성의, 정심과 수신의 내용이 서로 어우러져 쓰여 있기 때문에 낱낱으로 구분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하지만 모두 수양의 문제, 곧 수도의 의미로 포괄하여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수신과 제가에 대해서는 잠시도 소홀히 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함을 밝히신 상제님의 말씀이 있다.
“ … 이제 천지신명이 운수자리를 찾아서 각 사람과 각 가정을 드나들면서 기국을 시험하리라. 성질이 너그럽지 못하여 가정에 화기를 잃으면 신명들이 비웃고 큰일을 맡기지 못할 기국이라 하여 서로 이끌고 떠나가리니 일에 뜻을 둔 자가 한시라도 어찌 감히 생각을 소홀히 하리오” 하셨도다.(교법 1장 42절)
여기서 수신은 격물치지성의정심의 공부 과정이 개인의 내면에 축적되어 몸으로 드러난 결과이다. 이 수신의 결과는 개인의 언행을 통해 밖으로 표현되는데, 가장 일차적으로 드러나는 곳이 가정이다. 그러므로 가정화목은 개인의 수도력을 평가할 수 있는 기준으로서 이것이 바탕이 되지 않고는 신인조화(神人調化)로써 도통진경에 이르기 어렵다는 중요한 사실을 인식할 수 있는 대목이다.
마지막으로 치국평천하인데, 치국은 왕이나 정치지도자가 해야 할 일이고 도인의 본분에서 벗어난 일이므로 언급할 내용은 없다. 이것은 우리나라가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법을 준수하고 사회도덕을 준행하며 종단의 3대 중요사업인 구호자선사업·사회복지사업·교육사업을 통하여 국가발전에 이바지 하는 것을 현실적인 측면에서 치국의 일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평천하에 대해서는 다음의 『전경』 구절들을 통해서 이해할 수 있다.
… 상제께서 “내가 평천하 할 터이니 너희는 치천하 하라. 치천하는 五十년 공부이니라. 매인이 여섯 명씩 포덕하라”고 이르시고 ….(행록 3장 31절)
… 상제께서 면장에게 “내가 천지공사를 행하여 천하를 바로 잡으려고 하는데 그대가 어찌 이러한 음모에 참여하나뇨” 하시니 ….(행록 3장 53절)
“ … 내가 천지의 도수를 정리하고 신명을 조화하여 만고의 원한을 풀고 상생(相生)의 도로 후천의 선경을 세워서 세계의 민생을 건지려 하노라.” ….(공사 1장 3절)
여기서 평천하는 상제님께서 하실 일이고, 치천하(治天下)는 너희의 몫이라고 밝히셨다. 이 평천하는 천지공사의 도수(度數)에 따라 무위이화(無爲而化)로 이루어 질 것이다. 평천하가 온전하게 구현된 세상은 상생의 도가 실현되어 위무와 형벌을 쓰지 않고도 창생을 법리에 맞도록 다스리는 지상선경이리라. 그리고 창생을 다스리는 주체는 대순진리로써 바르게 수도하여 도통진경에 이른 도통군자일 것이다.
Ⅴ. 맺음말
유학의 핵심 사상과 실천 강령을 가장 체계적으로 밝혀 유학의 입문서로 각광 받아온 『대학』은 주자에 의해 『대학장구』로 완성되었다. 또한, 그는 오경 중심의 학문풍토를 사서위주로 바꾸어 도불에 익숙한 지식인들의 학풍을 다시 유학으로 바꾸는 일대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이루었다. 이로써 유학은 다시 부흥하게 되었고, 그 중심에 『대학』이 있었다. 그는 이 책의 전체구조를 삼강령과 팔조목으로 파악하고 경문과 전문으로 재편집하였다. 이것은 성리학적 이념을 구현하기 위한 일련의 안배였다. 『대학장구』는 주자 이래로 사회 운용에 책임의식을 가진 신진 사대부 계층이 도덕 주체이자 정치 주체로서 활약하는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또한, 원나라 이후 중국과 조선시대에는 수많은 선비의 학문의 초석을 다지는 서물로서 수백 년 동안 영광을 누렸다.
이러한 역사를 가진 『대학』은 상제님께서도 수차례 거론하시며 여러 용도로 쓰기도 하시는 등 『전경』에서 중요한 서물로 평가되었다. 상제님께서는 특히 경1장을 읽게 하여 종도들의 지혜를 밝히시고, 그 외에도 몇 구절을 읽어 주시는 등 『대학』을 통하여 여러 가르침을 주셨다. 비단 그 가르침은 당시의 종도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리라. 100여 년의 세월을 격한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그 가르침은 상제님의 뜻을 이해하고 바르게 수도해 나가는 데 중요한 초석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 초석을 다지는 데 있어서 『대학』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대학』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있어서는 고려해야 할 부분이 있는 것 같다. 그 내용을 어떤 관점에서 이해해야 하느냐의 문제이다. 이 책이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으로부터 사랑받고 있는 이유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사상적 보편성과 심오한 가르침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 사상과 가르침을 지금의 현실에 무조건 적용해서 이해할 수는 없다. 그것은 이 책이 쓰인 시대적 환경이 지금과 다르기 때문이다. 『대학』은 농경이 주를 이루던 사회에서 국가 통치의 주체가 한 사람의 군주에 국한된 시대에 군주나 정치지도자를 대상으로 하여 쓰였고, 다시 주자가 성리학적 논리로 재구성한 책이다. 따라서 사회가 산업화하여 직업군(群)이 훨씬 다양화되고 국민이 국가통치의 주체인 오늘날의 사회현실과 비성리학적 가치 기준에는 들어맞지 않는 내용도 있다. 그러므로 『대학』은 현실에 맞게 재해석되어야 하며, 나아가 도인에게는 대순사상이 가치 면에서 유학의 이념보다 우선하기 때문에 이러한 관점에서 다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우선한다고 해서 유학의 이념을 등한시하거나 배제한다는 말은 아니다. 사상적·윤리적 보편성을 가진 이념이나 가르침은 종교적·이념적 성향을 초월하여 당연히 수용하고 실천해야 할 진리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견해를 가지고 앞에서 유학의 핵심사상인 삼강령을 종단의 기본사업과 대비하여 살펴보았다. 하지만 필자의 재질이 둔박하고 성심이 부족하여 그러한 측면을 충분히 밝히지 못했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먼저 명명덕과 신민은 대순진리회의 수도, 포덕과 서로 통하는 점이 있었다. 그리고 지어지선은 수도의 완성으로 개인이 무욕청정의 경지에 올라 도통진경에 이른다는 뜻이며, 포덕천하가 실현되어 상제님의 진리 속에서 인류화평이 온전하게 구현된 세상을 이룩하는 것으로 대순진리회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목적과 비교하여 이해할 수 있었다.
격물치지는 외부 세계에 대한 투철한 인식을 통하여 앎을 바르게 정립하는 것이니, 도인으로서 대순진리회의 신앙체계를 바르게 정립하는 것일 것이다. 이것은 종통을 비롯하여 종지·신조·목적 등의 대순진리를 바르게 이해하는 데서 비롯된다. 주자가 격물치지를 특히 중요시했던 것처럼 도인에게 있어서도 신앙체계의 정립은 매우 중요한 과정이다. 이것이 정립되지 않고서는 성의정심수신제가의 과정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과정은 반드시 동시적으로 이루어 나가야만 하는 일이며, 상제님의 천지공사에 따른 도수에 의해 평천하가 실현되는 날까지 수행해야 할 책무이다. 도인으로서 이 책무를 성경신(誠敬信)을 다해 수행해 나갈 때 개인적으로는 수도의 완성을 이룰 뿐만 아니라 종단이 지향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대인지학(大人之學)의 요체와 그 실천 강령 및 조목을 체계적으로 밝힌 『대학』에 대한 이해는 이러한 측면에서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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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예기』속의 대학을 ‘고본대학’(古本大學)이라 부르는데 이것은 왕양명의 신조어이다. 주자가『대학장구』를 만든 이후로 일반적으로 말하는 『대학』은 『대학장구』이다. 이글에서도 『대학장구』이전 시기의 서물(書物)로서 기술한 『대학』은 모두 ‘고본대학’임을 밝힌다. ‘고본대학’의 원문은 <성백효 역주, 『현토완역 대학ㆍ중용집주』, 동양고전국역총서 3, 전통문화연구회, 1994. pp.49~51>에 실려 있음.
03 김용옥, 『대학ㆍ학기 한글역주』, 통나무, 2009, pp.169~172 참고.
04 ‘대학’이라는 말은 『시경』,『서경』,『논어』,『맹자』에도 나오지 않는다. ‘대학’에 해당하는 다양한 이름의 교육기관은 고대로부터 있었지만, ‘대학’이라는 이름의 교육기관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김용옥, 위의 책, p.176)
05 위의 책, pp.174~196 참고(김용옥에 의하면, 『대학』은 대략 『여씨춘추』의 집필시기와 일치한다고 한다).
06 이 외로도 춘추 말 전국 초(기원전 400년경)에 성립되었다는 설도 있고, 진나라 통일 후에서 한나라가 건국되기 전의 작품이라는 설도 있다. 이와 관련한 문헌으로 ‘김충열, 『김충열 교수의 중용대학강의』, 상지사, 2007, pp.287~288 / 황희경,「곽점 출토 유가문헌의 사상사적 의의와 그 한계」『시대와 철학』 제18권 3호, 한국철학사상연구회, 2007.’ 이 있다.
07 공자와 같은 성인의 말씀을 ‘경’(經)이라 하고, ‘전’(傳)은 경의 뜻을 해석하여 후세에 전(傳)하여 보이는 서물이란 뜻이다. 경전체제란 압축된 내용의 ‘경문’(經文)이 있고 그 경문을 해설하는 ‘전문’(傳文)이 뒤따르는 문학양식으로 『주역』ㆍ『효경』 등도 이 체제로 구성되어 있다.
08 정강 원년(元年)인 1126년에 후금(後金)이 남하하여 흠종(欽宗)을 항복시키고 그 이듬해에 휘종(徽宗: 흠종의 아버지)과 흠종을 포로로 잡아 금(金)의 내지(內地)로 보내고 수도에는 장방창(張邦昌)을 세워 초국(楚國)을 만들게 함으로써 북송(北宋)이 멸망한 사건.
09 『사서집주』의 초간본으로 현재 하나도 남아있지는 않다. 주자는 한유로부터 내려오는 강렬한 도통의식이 있었다. 따라서 공자→증자→자사→맹자의 계보를 정당화하려면 이 네 사람의 작품을 경(經) 수준급의 확고한 준거로서 제시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에 공자 이래 네 선생의 가르침을 전하는 책을 하나씩 선정하였다. 공자의 『논어』, 맹자의 『맹자』, 자사의 『중용』,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학』이다. 하지만 『대학』은 저자가 불분명하였다. 그래서 주자는 경문은 공자의 말을 술(述)한 증자의 작이고, 전문은 증자의 뜻을 설명한 증자 문인의 작품이라고 단언하였다. 물론 주자 이전부터 이러한 설이 있었으나 역사적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었고 주자의 이 단언으로 정설화된 것이다. 이렇게 『사자서』, 곧 『사서집주』가 탄생하였다.(김용옥, 위의 책, p.109ㆍ110 참고)
10 문답형식을 빌어 『대학장구』의 내용을 보다 상세하게 설명한 책.
11 『대학』(특히, 경1장)의 구성과 내용에 대해 학자마다 다양하게 해석했다. 이글에서는 머리말에서도 말했지만 주자의 해석을 위주로 하였음을 다시 한번 밝힌다.
12 경1장은 공자의 말씀을 증자가 전술(傳述)한 것이고, 전10장은 증자의 뜻을 그 문인이 기록한 것이다. 구본(고본대학)은 자못 착간이 있어 정자(정이천)가 정한 바를 따라 경문을 다시 살펴 아래(왼편)와 같은 차례로 (전문을) 만들었다. 『전경』의 교운 1장 55절에 ‘右經一章’ 이외의 나머지 구절이 인용됨.
13 삼강령의 ‘在親民’은 ‘在新民’으로 전7장의 ‘身有所忿懥’는 ‘心有所忿懥’로 고쳐 읽었고 전10장의 ‘擧而不能先 命也’에서 ‘命’을 정현은 ‘慢’, 정이천은 ‘怠’여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누가 옳은지는 모르겠다며 자신의 견해를 유보했으나 오자(誤字)로 본 것은 확실하다. 전5장에 있는 ‘此謂知本’의 네 글자는 연문(衍文: 문장 가운데 쓸모없이 끼인 글)이라 하여 삭제하였다.
15 ‘삼강령’과 ‘팔조목’이라는 용어는 주자의 용어가 아니고 후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주자가 ‘차삼자’(此三者), ‘차삼개’(此三個) 그리고 조목(條目)이라는 규정어와 함께 ‘팔건’(八件), ‘팔사’(八事)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 것으로 볼 때 주자의 본의를 벗어난 것이라 단정하긴 어렵다.(위의 책, p.143 참고)
16 이것은 성리학적 이념을 토대로 한 주자식의 해석이고, 일반적으로는 “큰 학문의 바른길은 통치자가 개인의 내면의 덕성을 밝히고, 그 명덕을 백성과 소통하는 친밀함 속에서 밝혀나가 모든 백성이 좋다고 여기는(또는 지극히 선한) 이상국가를 건설하는 데 있다.”라고 해석한다.
17 사(事)와 물(物)을 대칭으로 말하면 각기 다른 뜻을 가지지만, 물만을 들어 말하면 사는 그 가운데 포함된다. 사는 주로 효, 공경, 수신, 치국 등 사람과 관련한 일을 지칭하는 의미로 쓰였다. 물은 사람이나 개, 말, 종이 등의 형상이 있는 것에 주로 쓰였으나, 어떤 이름을 붙일 수 있는 무형의 것(명덕ㆍ신민ㆍ수신ㆍ치국 등)도 모두 물이라 칭했다. 여기서 기원하여 오늘날 ‘사물’(things: 형상이 있는 모든 물건)이라는 어휘를 쓰고 있지만, 그 의미가 많이 바뀌었다.
18 최정묵, 「『대학』의 삼강령 팔조목을 통해 본 유학의 체계」『동서철학연구』제62호, 한국동서철학회, 2011, p.25.
19 각 장마다 공자, 증자의 말씀과 『시경』, 『서경』, 『국어』(國語), 『예기』 등등을 적절하게 인용하였다.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일신 우일신’(日新 又日新: 2장), ‘절차탁마’(切磋琢磨: 3장), ‘신독’(愼獨: 6장), ‘혈구지도’(絜矩之道: 10장), ‘덕본재말’(德本財末: 10장) 등의 어휘들이 등장한다.
20 이세동,「주자의 《대학》 개본(改本)에 대한 고찰」『중국어문학』 제29집, 영남중국어문학회, 1997, pp.186~192 참고.
21 위의 논문, p.200 참고.
22 『대순지침』(p.18)의 도전님 말씀처럼 도가 음양이며 음양이 이치이며, 이치가 곧 경위며 경위가 법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런데 일반적인 용례에서 그 의미는 다양하게 쓰인다. 사람이 다니는 길인 도로의 개념으로서 도에서부터 그 범주를 하늘에 국한한 천도, 인간의 도리를 말하는 인도 그리고 도술이나 방법 등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된다. 따라서 전반적인 전후 맥락에 따라 해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