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마흔을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는다고 해서 불혹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나는 정말 그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고 잘 살고 있는 걸까? 언제나 이팔청춘으로 머무를 줄만 알았던 내가 서른이 되었고 어느새 사십이 되었다. 유년기에 나는 불심이 깊으신 어머니를 따라 절에 가는 것을 유난히 좋아했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염불을 외웠고 법당 대웅전 부처님 전에 엎드려 빌고 빌었다. 철부지 어린애였던 그때 나는 과연 무엇을 빌었을까?
지금은 기억조차 희미하지만 나는 나와 가족의 삶을, 혹은 모든 사람들의 삶이 행복해지기를 빌었던 것 같다. 늘 무엇인가 갈구했었고 대단한 생각은 아니었지만 세상 사람들이 모두 행복한 세상에서 살기를 진정 바랐다. 힘들고 아파서 서러움에 빠진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해주고 싶었다.
나는 내 마음을 찾아, 본성을 찾아 긴 시간을 그렇게 방황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마치 운명처럼 먼저 입도하신 어머니의 권유로 도를 만났다. 어머니가 좋은 운을 받으려면 정성을 들여야 한다고 해서 입도 치성을 모셨고 어머니와 함께 집에서 기도를 모셨다. 밤 한 시면 매일 선각이 집으로 찾아와 함께 기도를 모셔 주었고 그 정성으로 지금의 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후 참배와 치성을 가고 포덕도 했지만 그땐 어려서인지 세상을 너무 몰랐고 철도 없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도를 진심으로 믿지 못한 채 시간만 흘렀다. 그때는 나만의 고민에 빠져 밖을 볼 수 없었다. 시간이 약이라고 마흔을 넘겼을 때 비로소 내면을 넘어 주변 사람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때 처음으로 어머니의 삶이 눈에 들어왔다. 그동안 내 삶에만 머물면서 한 번도 어머니를 제대로 챙겨 드리지 못한 무심한 딸자식이었다.
언제나 어머니는 내 방안의 장롱처럼 항상 내 곁에 오래오래 계실 줄만 알았다. 내 생활이 바쁘다는 핑계로 부모님은 항상 뒷전이었다. 그러다 보니 문득 부모님은 늙어 계셨다. 나름대로 잘한다고 했지만 지나간 세월을 돌이켜보면 사실은 불효한 것이 많았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항상 잘 챙겨 주셨고 두 분이 늘 오붓하게 지내셨기 때문에 더 소홀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건강하시고 기력이 있으실 때 더 좋은 음식을 많이 잡숫게 해드리고 더 좋은 곳을 함께 모시고 다니지 못한 것이 참 후회스럽다.
그렇게 오랜 세월 아버지와 정답게 잘 지내시던 어머니에게 하늘이 무너지는 듯 한 슬픔이 찾아왔다. 작년 봄 폐암 말기이신 아버지를 하늘나라로 보내드리신 일이다. 갑자기 세상을 떠나신 아버지를 못 잊으신 탓일까? 아버지가 가시고 한 달이 채 안되어 어머니는 후두암에 걸리셨다. 암세포가 어머니의 숨구멍 바로 아래에 자리를 잡고 있어서 연로하신 나이에도 불가피하게 수술을 선택해야만 했다. 그래서 지금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신 채 치료를 받으시며 병원에 계신다. 가끔 병원 침대에 누워계신 어머니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어머니의 모든 삶이 송두리째 그곳에 묶여버린 슬픔이 가슴에 파도처럼 밀려와 북받칠 때가 있다. 차라리 수술을 하지 말았어야 했을까 하는 후회도 들지만, 만약 어머니마저 하늘나라로 보냈다면 또 후회하지 않았을까 한다.
어머니는 수술 후 목소리를 잃으셨고 목으로는 물 한 모금도 드실 수 없었다. 나는 두 번 다시는 사랑하는 어머니의 따스한 음성을 들을 수 없게 된 것이다. 호박 듬성듬성 썰어 넣어 끓인 된장찌개며, 크림 듬뿍 들어간 부드러운 빵이며, 여름날 내내 달고 사셨던 아이스크림도, 그 작은 박하사탕 한 알 조차도 어머니는 드실 수가 없었다. 오로지 입모양만으로 나와 대화를 나누며 위장에 호스를 연결한 병원 영양식으로 식사를 하실 뿐이다. 큰 수술 후 힘든 회복기를 보내는 어머니를 잠시 간호해 드릴 때 나는 병원으로 가며 울고 집으로 오며 울고…. 나는 울고 또 울었다. 내가 해 드릴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에 말이다. 그래서 목이 메고 가슴이 저렸다. 침대에 누워 계시면서 더 이상 아무것도 드실 수 없는 어머니가 마음에 걸려 나는 밥을 먹고 싶다는 배고픔조차 한없이 죄송하고 마음이 아팠다. 한동안은 표현할 수 없는 죄책감에, 더 잘해드리지 못한 지난날에 대한 후회와 죄송함으로 나는 며칠을 물 한 모금 마실 수 없었고 사십 년 넘게 살면서 그렇게 가슴 아프게 울었던 적이 없었다.
어렸을 때 나는 부모님이 세월이 흘러 늙고 병드시면 내가 보살펴야 한다는 생각이 마음 한 곳에 항상 있었다. 스스로에 대한 약속이었는데 그것을 지키지 못했다는 생각 때문인지 나는 한동안 어머니를 볼 낯이 없어 죄송한 마음으로 시간을 보냈다. 평생을 애지중지하며 키워주신 딸자식이 있어도 홀로 병마와 싸우시며 병원 침실에 누워계신다는 사실이 너무나 슬펐다. 다른 부모님들처럼 자식 손자들과 오손도손 행복하고 따스한 모습으로 그렇게 계셔야 할 어머니가 낯선 사람들 틈에 덩그러니 계신 게 너무 마음이 아팠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약이라고 했던가. 절대 받아들이지 못할 것만 같았던 순간도 바윗덩이처럼 내 가슴을 짓누르던 슬픔도 이제는 흘러가는 시간 속에 조금씩 녹고 있다. 몸조차 가누기 힘드실 텐데 어머니는 늘 웃는 모습으로 나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괜찮다고 여기가 편하고 좋다고…. 아무 걱정하지 말라 하신다. 고통스러운 병고에 시달리면서도 어머니는 자신 때문에 마음 아파할 딸의 마음을 걱정하시고 계셨다. 그런 어머니이시기에 나는 더 이상 울 수 없었다. 틈 날 때마다 자주 들러 사랑하는 어머니를 한 번 더 보고 사랑하는 어머니 손을 한 번 더 잡고 그렇게 어머니와의 추억을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어디에 계시든 간에 어머니가 지금 내 곁에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고 고맙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는 어머니를 편안한 마음으로 찾아뵙는다. 쫑알 쫑알 여섯 살 꼬마 아이가 되어 어머니 곁에서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고 돌아서 오는 길에도 나는 더 이상 슬퍼하지 않는다. 어제도 내가 사랑하는 어머니셨고 오늘도 내가 사랑하는 어머니이시고 내일도 내가 사랑하는 어머니로 항상 나의 곁에 계실 테니 말이다.
오늘도 나는 어머니를 위한 기도를 모시며 간절히 심고 드린다. 어머니 없이 어떻게 내가 이 세상에 났으며 어머니 없이 어떻게 내가 지금 이 천지대도를 받아 도문소자의 길을 걸어갈 수 있을까…. 어린 시절 나를 오직 사랑으로 키워 주셨던 그때의 어머니처럼 이젠 내가 어머니를 꼭 안고 속삭여 드린다. 어머니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