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경의 가족 중에 상제님을 따랐던 이는 큰아들 덕유와 소진섭(蘇鎭燮)이 있다. 큰아들의 이름은 현묵으로 자(字)가 덕유(德有: 『전경』에는 德裕라고 표기되어 있다)이며 내부주사(內部主事)02를 지냈다. 덕유는 아버지와 함께 상제님의 공사에 참여하였다. 특히 진묵의 초혼으로 추측되는 공사에 참여할 당시 폐병 중기로 고통을 당하고 있었는데 공사에 참여한 후 치유되었다.(공사 1장 15절) 이 일은 상제님에 대한 그의 신심을 더욱 깊게 하여 상제님께서 화천하실 때 동곡약방에 함께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김보경의 다섯 명의 누이 중에 넷째 누이의 남편인 소진섭은 1895년 당시에 익산(益山) 간촌(間村)에 살았으며(1895년 족보) 덕유와 함께 위의 공사에 참여하였다.
족보를 살펴보다 생몰연대가 기록되어 있는 부분에 눈이 멈췄다. 『전경』에 보면 김보경의 모친이 위급할 때 그의 가족들이 상제님의 사자가 되어 명부사자(冥府使者)로부터 환자(김보경의 모친)를 구하고자 하셨던 공사(행록 1장 34절)가 있는데 그 시기가 기록되어 있지 않은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혹시 그것을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런데 족보에는 그 집안으로 시집 온 여자들의 태어난 시기는 있지만 이름과 사망시기는 정확히 기록되어 있지 않아 아쉽게도 그 공사의 시기를 알 수 없었다.
김보경이 살았던 집의 위치를 할머니께 여쭤보니 잘 모른다고 하셨다.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서류를 찾아보니 지금 할머니께서 사시는 곳이 아니었다. 그래서 서류를 들고 김보경이 살았던 곳의 위치를 찾아보았다. 그의 집은 현재 할머니께서 살고 계시는 집 건너편에 보이는 공장의 왼쪽에 있었다. 아쉽게도 이미 오래전 다른 사람의 소유가 되었다가 이제는 밭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김보경의 묘지에 대해 말씀을 드렸더니 묘는 김보경이 살았던 집 부근에 있었는데 몇 년 전에 묘를 정리하면서 화장(火葬)하였다고 하셨다.
천곡(泉谷)과 사명당(四明堂) 갱생공사(행록 5장 15절), 호소신 공사(공사 1장 16절), 수륙병진 공사(공사 1장 17절), 유불선과 관련된 공사(교운 1장 6절) 등 상제님의 공사에 참여하여 많은 일을 하였던 김보경 종도에 대해 알아보고자 찾아갔던 회선동에는 이제 깊게 주름지고 굵게 마디진 손을 가진 증손자며느리만 집을 지키고 계셨다. 비록 할머니께서 시증조할아버지인 김보경에 대해 알고 계신 것은 거의 없었지만, 오랜 세월속에 헤진 몇 권의 책들은 만인의 기쁨이 가득하고 신선들이 노닐었다는 함열 회선동에서 농호(聾湖)라는 호로 스스로를 낮추며 상제님을 따랐던 김보경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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