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댁은 태고종의 본산인 선암사로 유명한 순천 조계산 자락에 위치해 있다. 영화 ‘집으로’를 연상케 하는 버스도 닿지 않는 첩첩산중 산골마을이다. 사방이 온통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아름다운 사계절의 변화를 금방 느낄 수 있고 복잡한 세상과는 거리가 먼 산 좋고 물 맑은 곳이다. 시어머니께서는 이 산골로 시집와서 살다가 큰집에서 분가할 때 시부모님으로부터 살림밑천으로 토종벌통 하나를 분양받아서 지금까지 50년 동안 한 가족처럼 정성 들여 돌보셨다고 한다. 그리고 어머님은 자식들이 아프면 제일 먼저 꿀을 먹이셨고, 지금도 어린 손주들이 감기에 걸린 것 같으면 꿀을 주신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꿀 한 수저 먹고 자고 일어나면 아픈 곳이 정말로 좋아진다.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가장 귀한 어머님표 만병통치약이다. 실제로 한방에서도 꿀은 독성이 없고 신체에 부작용이 없는 자연 상태의 생약으로 사람의 생명력을 북돋아 주는 대표적인 동물성 상약으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꿀은 음식을 상하지 않게 하는 효과도 있는 것 같다. 3년 전쯤 어머니는 집 근처 산에서 채취한 약용식물과 꿀을 혼합하여 만든 환을 보내주셨는데 깜박 잊고 있다가 최근에 꺼내서 먹어보니 몇 년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상하지 않고 처음 그대로 보존이 잘 되어 있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챙겨먹어야겠다. 세월이 흘러 지금은 어른이 된 형제들이 명절날 시댁에 모이면 어릴 적 어머님께서 벽장 속 깊은 곳에 고이 숨겨둔 꿀단지를 몰래 꺼내서 먹던 그 달콤한 맛과 입안 가득 향긋한 꽃향기를 잊을 수가 없다고, 정말 꿀맛이었다고 이야기하곤 한다. 내가 처음 시댁에 갔을 때 마당이며 뒷산 여기저기에 정사각형 모양의 벌통들이 어린아이 키만큼 차곡차곡 위로 쌓여 있고, 그 벌통 주변에서 춤을 추듯이 빙빙 돌면서 바쁘게 움직이는 수많은 꿀벌들을 보니 정말 신기했다. 알고 보니 벌이 동그라미를 그리며 춤을 추면 100미터 이내에 꽃밭이 있다는 것이고, 8자 모양으로 날면서 춤을 추면 100미터 이상 먼 곳에 꽃밭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꿀벌의 의사전달 방법이라고 한다. 재미있는 춤동작을 통해서 꿀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려 준다니 정말 자연의 신비에 놀라울 뿐이다. 한 마리의 꿀벌이 500g의 꿀을 만들려면 벌통과 꽃 사이를 천만 번 오가야 하고, 꿀 1kg을 만들려면 560만 송이의 꽃이 필요하다고 한다. 여왕벌이 있는 벌집 한 통에 일벌이 약 5만 마리가 있으니, 벌 5만 마리가 날아가 한 마리당 약 100개의 꽃에서 꿀을 빨아 부지런히 벌집에 옮겨야 꿀 1kg이 나오는 것이다. 게다가 토종벌은 서양 벌에 비해 혀의 길이가 짧고 몸통이 작아서 더 많은 수고가 필요하다. 혀도 짧고 몸집도 작은 토종벌은 직선거리를 4km를 날아다니면서 꿀을 나르며 꿀 생산량 또한 서양 벌의 4분의 1 정도밖에 안 된다고 한다. 꿀벌들은 아침부터 날이 저물 때까지 이 꽃 저 꽃으로 ‘윙윙’ 날아다니며 열심히 꿀과 꽃가루를 모으고 다시 먼 길을 날아서 집으로 돌아와 꿀을 저장해 둔다. 부지런한 꿀벌들의 꾸준한 노력과 수고 덕분에 우리가 꿀을 맛있게 먹을 수 있었던 것이다. 『전경』 행록 3장 37절에 보면 상제님께서 “벌은 규모 있는 벌레니라”라고 말씀하셨듯이, 꿀벌은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역할분담이 아주 잘 이루어져 있다. 꿀벌의 대부분인 일벌은 벌집을 짓고 청소하고 지키는 일부터 애벌레를 돌보는 일까지 여러 일을 거친 뒤에 비로소 최종 단계에서 꽃가루와 꿀을 모은다. 여왕벌은 온종일 벌집 안에서 하루에 1,000개~1,500개씩 3~5년 동안 알을 낳고, 수벌은 집안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다가 결혼 비행에서 여왕벌과 교미한 후 그대로 땅에 떨어져 죽는다. 날마다 수많은 애벌레들이 알에서 깨어나므로 꿀벌의 가족은 계속 늘어난다. 이와 같이 여왕벌을 중심으로 자기 위치에서 각자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전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줄 알며 질서 있게 공동생활을 하는 꿀벌의 조화와 지혜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는 것 같다. 벌은 또한 훌륭한 건축가로 잘 알려져 있다. 서양 벌은 사람이 만들어 놓은 벌집에 꿀을 저장하고 우리나라 토종벌은 꿀벌의 배마디에서 나오는 밀랍으로 직접 벌집을 짓는다. 그 집 속에는 정육각형 모양의 많은 방들이 있는데, 방은 꿀이 넘치지 않도록 약간 비스듬히 위를 향해 있고 이웃방과 튼튼하게 연결하기에 가장 적합한 구조로 되어 있다. 그리고 벌집을 짓는 재료인 밀랍은 양초를 만드는 데도 사용된다. 벌은 자연에서 열매를 맺고 결실하는 데 매우 중요한 매개체 역할을 하는 등 인간에게 많은 혜택을 주는 유익한 생명체인 것 같다. 시어머니께서는 전문적으로 벌을 키우지는 않지만 50년 정성의 결과로 분양받은 1통이 지금은 20통 정도가 되었다. 그런데 지난해 갑자기 벌들이 많이 죽어서 겨우 1통만 남았다고 한다. 지난 추석 때 시댁에 가서 봤더니 실제로 벌통 주변에 하얀 애벌레들이 많이 죽어 있었다. 꿀벌로 성장하기도 전에 목숨을 잃은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 설 명절 때 내려갔는데 세상에 이럴 수가! 시댁은 물론이고 동네 전체 토종벌이 모두 죽어 빈 벌통들만 외로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눈으로 보고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은 너무 가슴 아프고 안타까워 눈물이 날 정도였다. 50년 동안 친자식처럼 키우신 어머님 심정은 더 하셨을 것 같다. 어머님 말씀에 의하면 서양 벌이 우리 토종벌을 죽이는 일은 있었지만, 올해처럼 그냥 저절로 애벌레들이 죽는 경우는 처음이라고 하셨다. 동네 어르신들도 한결같이 마른하늘에 날벼락 맞은 기분이라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해 하셨다. 알고 보니 병명은 꿀벌 애벌레에 악성 바이러스가 발생하여 애벌레가 번데기로 되지 못하고 말라죽는 병인 ‘낭충봉아부패병’이라고 한다. 전국적으로 토종벌 90% 이상이 집단 폐사할 정도로 그 피해가 심각하다고 한다. 그럼에도 현재까지 이 질병에 대한 뚜렷한 치료방법이 없고 양봉(養蜂)과 과수는 물론 농작물의 2차 피해가 예상되고 있으며 앞으로 종자벌 구하는 것마저도 어려운 실정이라니 걱정이 된다. 이렇게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이상기후로 인한 환경변화로 벌들의 개체수가 점점 감소하고 있다고 한다. 그 많던 벌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동식물이 인간보다 자연환경의 변화를 먼저 감지한다고 하는데, 『꿀벌 없는 세상, 결실 없는 가을』이라는 어느 책 제목처럼은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요즘처럼 추운 겨울에는 왠지 어머니의 꿀단지가, 아니 따뜻한 어머니 품이 더욱 그리워진다. 이 겨울 지나 따뜻한 봄이 오면 예쁜 꽃들도 많이 피고 꿀벌들도 많이 볼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