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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진리회 - 『대순광장』

대순진리회 회보

by 벼리맘1 2023. 3. 8.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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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화(寓話)’를 통해서 본 화복(禍福)의 의미

 

 

글 - 대순진리회 여주본부도장 교무부

 

 

 

 

우연히 『톨스토이 단편선』 「대자(代子)」에 나오는 ‘엄마곰과 새끼곰’ 이야기를 읽다가 화복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이 이야기는 주인공 대자(代子)가 숲 속의 넓은 초원을 거닐면서 시작된다. 그는 초원 한복판에 소나무가 한 그루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소나무에는 새끼줄이 매여 있는데, 새끼줄에는 무게가 약 50kg쯤 되어 보이는 떡갈나무 등걸이가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나무등걸 밑에는 꿀이 든 통이 놓여 있었다. 도대체 이런 곳에다 왜 벌꿀을 놓아두고 나무등걸을 매달아 놓았을까라고 생각하는 순간, 숲 속에서 버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앞을 보니 몇 마리의 곰이 소나무가 있는 쪽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암곰이 앞장서고, 그 뒤에 두 살짜리 곰과 더 어려 보이는 세 마리의 새끼 곰이 따라왔다.
  암곰은 코를 벌름거리면서 통으로 다가갔고, 새끼 곰도 그 뒤를 따랐다. 암곰이 통에 코끝을 들이대자 새끼 곰들도 통에 매달렸다. 그때 나무등걸이 살짝 움직이는가 싶더니 금방 제자리로 돌아오면서 새끼 곰을 건드렸다. 암곰은 그것을 보고 앞발로 나무등걸을 밀어젖혔다. 나무등걸은 이전보다 세게 밀렸다가 돌아오면서 새끼 곰을 쳤다. 등을 얻어맞은 놈도 있고 머리를 맞은 놈도 있었다. 새끼 곰들은 비명을 지르며 흩어졌다. 암곰은 으르렁거리며 두 발로 통나무를 머리 위로 들어 올리면서 힘껏 내던졌다. 나무등걸이 공중으로 높이 튀어 오르자 두 살짜리 곰은 통으로 달려가 머리를 쳐박고 할짝할짝 꿀을 핥아 먹기 시작했다. 다른 새끼 곰들도 다가왔다.
  그러나 나무등걸이 다시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오면서 두 살짜리 곰의 머리를 세게 내리치는 바람에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다. 암곰은 먼저보다 더 격한 소리로 으르렁거리며 나무등걸을 소나무 가지보다 더 높이 올라가 새끼줄이 늘어질 정도로 내던졌다. 암곰이 통 곁으로 다가가자 새끼 곰들도 따라왔다. 나무등걸이 높이 튀어 올라 잠시 멈췄다가 다시 아래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높은 곳에서 내려오면 내려올수록 그 힘은 더욱 커지는 법이다. 나무등걸은 무서운 기세로 떨어져 내려오면서 암곰을 덮쳐 머리를 쾅 때렸다. 암곰은 벌렁 나자빠져 버둥거리다가 숨이 끊어졌다. 새끼 곰들은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달아나 버렸다.
  이 이야기는 옛날 사람들이 곰사냥을 하는 방법을 통하여 세상을 풍자한 이야기로 ‘이솝 우화’에도 등장한다. 이야기 속의 곰을 보고 무식하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정작 우리 자신들도 이러한 우(愚)를 많이 범하고 살기에 우화를 통하여 풍자되고 있는 것 같다. 톨스토이는 이 이야기를 통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화(禍)가 어떠한 형태로 다가오며 그것을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하고 있다. 암곰이 벌꿀을 먹을 때 자신을 건드리는 나무등걸은 조금 귀찮은 정도였을 것이다. 그 귀찮음이 싫어 처음 나무등걸을 건드렸을 때는 새끼 곰을 조금 놀라게 했을 뿐이다. 하지만 두 번째로 밀어젖혔을 때는 두 살짜리 곰을 죽이고, 세 번째로 집어던졌을 때는 스스로를 파멸시켜 버린 것이다.
 『전경』에 보면, “상제께서 김 갑칠이 항상 응석하여 고집을 부리나 상제께서 잘 달래여 웃으실 뿐이고 한번도 꾸짖지 아니하시니 그는 더욱 심하여 고치지 않는도다. 형렬이 참지 못해 ‘저런 못된 놈이 어디 있느냐’고 꾸짖으니 상제께서 형렬에게 이르시기를 ‘그대의 언행이 아직 덜 풀려 독기가 있느니라. 악장제거 무비초 호취간래 총시화(惡將除去無非草 好取看來總是花)라. 말은 마음의 외침이고 행실은 마음의 자취로다. 남을 잘 말하면 덕이 되어 잘 되고 그 남은 덕이 밀려서 점점 큰 복이 되어 내 몸에 이르나 남을 헐뜯는 말은 그에게 해가 되고 남은 해가 밀려서 점점 큰 화가 되어 내 몸에 이르나니라’ 하셨도다.”01라는 내용이 나온다.
  위의 구절은 말에 대해서만 언급되어 있지만, 인간의 마음과 생각과 행실을 모두 상징적으로 표현한 내용이다. 다시 말해서 남을 잘 되게 배려하면 덕(德)이 되어 잘 되고, 그 남은 덕이 밀려서 점점 큰 복(福)이 되어 내 몸에 이르지만, 남을 잘못되게 하면 그에게 해(害)가 되고 남은 해가 밀려서 점점 큰 화(禍)가 되어 내 몸에 이른다는 것이다. 상대방에 대한 마음가짐과 생각과 행실에 따라 나 자신이 복을 불러들일 수도 있고 화를 불러들일 수도 있다. 남을 나쁘게 생각하면 그 사람의 단점만 보이고, 남을 좋게 보면 장점만 보이는 법이다.  악장제거무비초(惡將除去無非草)요, 호취간래총시화(好取看來總是花)라고 했듯이, 나쁜 것은 없애려 하면 풀 아닌 것이 없고 좋은 것을 취하려 하면 꽃 아닌 것이 없다.
  ‘화복(禍福)’을 해자(解字)해 보면 그 의미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재앙 화(禍)는 구성은 보일 시(示)와 입 비뚤어질 괘(咼)로 구성되어 있다. 시(示)02는 신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제물을 차려놓은 상(床)을 본뜬 상형글자이다. 상서롭지 못한 뜻을 지닌  뼈 발라낼  입 구(口)가 합쳐진 글자다. 전체적인 의미는 조상이나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데 좋은 살코기는 자신들이 다 발라 먹고 남은 뼈(咼)03를 상(示)위에 올리면서 형식만 갖추고 소원만을 비니(口) 오는 것은 재앙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복 복(福)은 보일 시(示)와 가득할 복(畐)04으로 구성되었다. 제사 상(示) 위에 정성스러운 음식을 가득 담아 올리니 축복이 내린다는 뜻을 담고 있다. 즉 같은 제사상을 어떻게 차리느냐에 따라 화가 내리기도 또는 복이 오기도 하는 것이다.

  ‘화복동문(禍福同門)’이라는 말이 있다. 재앙이나 축복이 오는 문은 다른 게 아니라 자신이 생각하기에 따라, 같은 문으로 화가 오기도 하고 복이 오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화복이란 자기 스스로가 불러들이는 불행과 행복을 말하니 자신 이외에 누구를 탓할 수 있겠는가? 또 ‘화복규묵’05이라는 말이 있는데 화복(禍福)이 새끼줄과 같이 서로 얽혀 있다는 뜻으로, 재앙(災殃)이 있으면 복이 있고 복이 있으면 재앙(災殃)이 있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이다. 이처럼 화복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상제님께서는 복보다 화를 먼저 겪으니 당하는 화를 견디어 잘 받아 넘겨야 복에 이른다고 말씀하셨고06 도전님께서는 수도과정에서 오는 겁액을 극복할 것을 말씀하시면서 “모든 일에 그 목적을 달성하는 과정에 반드시 장애(겁액)가 있으며 이 겁액을 극복하고 나아가는 데 성공이 있다.”07라고 하셨다. 또 “복(福)은 곧 복마(伏魔)로 풀이함으로써 화복(禍福)이란 말과 대등하며, 복을 받기 위해서는 겁액에 굴복하여 자포자기(自暴自棄)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08라고 하셨다. 그리고 “신명공판이 운수를 받는 자리에 가서 있는 것이 아니고 수도과정에서 먼저 받게 되는 것이므로 상제께서 말씀하신 ‘나는 해마(解魔)를 위주하므로 나를 따르는 자는 먼저 복마(伏魔)의 발동이 있으니 복마의 발동을 잘 견디어야 해원하리라.’는 구절을 깊이 명심하라”09라고 하셨다.
  앞에서 살펴본 내용이 화복의 발생원인과 화복을 대하는 마음가짐에 대한 것이라면, 위의 말씀은 우리가 바라는 운수를 받는 입장에서 바라본 화복의 의미를 말씀하신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일상에서 화복은 끊임없이 함께 온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닥친 일을 화와 복으로 구분하기는 쉽지가 않다. 일견 화로 보이는 것이 실제로는 복일 수도 있고 복으로 보이는 것이 화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것이 나에게 화인가 복인가를 따지기에 앞서 수도인이라면 운수마당이라는 최종 목표에서 끊임없이 다가오는 화복의 굴곡을 꿋꿋이 이겨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곰은 꿀이라는 복을 취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꿀을 취하는 과정에서 오는 조그마한 귀찮음을 점점 크게 여김에 따라 결국에는 꿀도 못 취하고 자신의 목숨마저도 잃는 화를 당하고 말았다. 우리의 수도도 곰이 꿀을 취하려는 것과 같이 상제님의 천지공정에 참여하여 복을 받고자 하는 일이다. 하지만 수도 과정에서 반드시 겪게 되는 겁액을 극복하여 나아가지 못한다면, 달콤한 꿀은 맛볼 수 없고 오히려 파멸의 길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곰의 우둔함을 비웃기에 앞서 우리 모두 자신에게 다가오는 화복을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01 교법 1장 11절.

02 ‘宗’의 자원(字源)을 보면, ‘宀+示’으로 ‘示’는 신주, 신사(神事), 조상의 혼백을 모신 제사상의 의미를 가진다. (『동아 백년옥편』 p.447/ 『한한대자전』, 민중서림 p.572 참조)

03 剔人肉置其骨也. 象形. 頭隆骨也.
 "冎"는 사람의 살을 도려내고 뼈만 남겨둔 것이다. 상형이다. 머리의 튀어나온 뼈다. 冎부에 속하는 한자는 모두 冎의 의미를 따른다. (염정삼, 『설문해자주』,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07, pp.173∼174)

04  滿也.  象高厚之形.  讀若伏.
 ‘畐’은 가득 차 있다는 뜻이다. ‘高’의 생략형으로 구성되어 있다. 높고 두터운 모양을 상형하였다. 畐부에 속하는 한자는 모두 畐의 의미를 따른다. ‘伏’과 같이 발음한다. (위의 책 p.250)

05   ‘화복은 노처럼 꼬인 것이다’라는 말로 전한 문제(文帝) 때의 문장가 가의(賈誼)의 시에 나온다.

06  『典經』, 교법 1장 19절. 참조.

07  『대순지침』, p.93.

08  『대순지침』, p.94.

09  『대순지침』, p.94.

 

 

 

출처 - 대순진리회 여주본부도장 대순회보 12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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