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오경 중에 사람은 대부분 욕망과 언행이 정제된 존재로 등장한다. 그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바른생활맨이 되도록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사서오경을 일탈과 해방의 자유로운 공간이 아니라 억압과 통제의 폐쇄적인 공간으로 생각한다. 사서오경의 언술 주체는 성인과 군자이다. 그들은 너무나 올곧고 반듯하여 과연 배고파할 줄 알고 가슴 뛰는 사랑에 아파할 줄 알까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이다. 사서오경에는 간혹 덜 떨어진 인간이 나오는데, 이들은 대부분 고상한 덕이 무엇인지 모르고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소인 아니면 황하 문화의 세례를 거부하는 이민족이다. 사서오경에도 예외는 있다. 설사 다른 경전과 결론이 같을지라도 내용은 현대인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일탈과 저항으로 가득 차 있다. 그 예외는 바로 『춘추좌전』과 『시경』을 가리킨다. 그 속에는 많은 여인들이 전쟁 나간 남편을 걱정하며 잠 못 이루고 있고 평균 이하의 임금이 제 욕정을 참지 못해 궁궐 담장을 뛰어넘어 유부녀와 달콤한 시간을 보내다가 살해당하기도 하고 무수한 서민들이 고단한 삶에 치여서 하늘과 부모를 원망하고 있다. 죽어서 딱딱하게 굳은 것이 아니라 살아서 펄떡이는 날 것으로서의 사람이 『춘추좌전』과 『시경』, 특히 후자의 공간에서 활보하고 있다. 예컨대 『춘추좌전』을 펼치면 첫 기사부터 정(鄭)나라의 장공(莊公)과 공숙단(共叔段) 형제가 왕위를 두고 골육상쟁의 대결을 벌이면서 사람의 욕망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춘추좌전』의 경우 왕공대인의 사람이 주류를 이룬다면 『시경』은 훨씬 더 일반 사람의 경우에 더 가깝다. 『시경』에 나타난 날 것으로서 사람은 『춘추좌전』보다 훨씬 더 순박하며 보편적 공감을 끌어낼 수 있다. 우리는 이처럼 정제되지 않은 사람을 만남으로써 사서오경을 죽은 시인의 사회처럼 독법이 굳어있는 딱딱한 책이 아니라 사람 냄새가 폴폴 나는 부드러운 책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읽어보지도 않은 채 “사서오경은 원래 고리타분한 거야!”라며 지레 단정하는 무지의 용기를 발휘하지 않아야겠다.
▣ 시의 나라
동아시아는 일찍부터 시의 문화를 꽃피워왔다. 황하 유역의 시를 기록한 『시경』만이 아니라 조금 뒤에는 회수와 장강 유역의 시를 기록한 『초사(楚辭)』가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동아시아 지역은 오래 전부터 시와 노래를 통해 자신의 희노애락을 표현해왔던 것이다. 사실 시는 다의적이어서 애매한 구석이 없지 않다. 듣는 사람에 따라 얼마든지 달리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늘 부대끼는 사람 간에 정확하게 예스와 노를 말하지 않고 시를 통해서 점잖게 의사를 표시하면 서운함이랄까 분노랄까 하는 감정의 손상을 줄일 수 있다. 동아시아의 관료(공무원) 선발에서는 사서오경의 경전 지식만큼이나 문학 소질을 중시했다. 웬만한 사대부라면 시를 읊조리면서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다. 오늘날 중국의 최고 지도자들이 이해를 다투는 외교 활동에서 시를 즐겨 인용해서 해외토픽이 되는 경우가 많다.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2009년에 일본을 방문해서 대학생들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는 중국과 일본 사이의 불행한 근대 경험을 잘 알고 있었고 양국이 21세기의 세계 경제에 차지하는 비중도 알고 있었다. 당시 그는 당나라 왕지환(王之渙, 688~742)의 출세작 「관작루에 라는 시의 구절을 인용했다. “천리의 머나먼 길을 눈에 담으려고 다시 한층 더 올라가리라!”[欲窮千里目, 更上一層樓] 이 구절은 앞 구절 “밝은 해는 산에 기대 떨어지고 황하는 바다로 흘러들어가네.”[白日依山盡, 黃河入海流]와 짝을 이루고 있다. 관작루는 우창의 황학루(黃鶴樓), 난창의 동정호의 악양루(岳陽樓)와 함께 중국의 4대 누각으로 꼽힐 정도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한다. 관작루는 오늘날 산시성 용지(永濟)에 세워진 6층 누락 앞에 황하가 유유히 흘러가고 있다.(지금의 누각은 1997년에 시작해서 2001년에 새로 세워진 건물이고 원래 건물은 원나라 때 이미 소실되었다.) 땅 위에서 누각으로 아래층에서 위층으로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시야가 넓어진다. 높이 나는 새가 더 많이 본다는 말처럼 층을 오를 때마다 다리는 힘이 들고 눈은 아찔해지더라도 마음은 탁 트인 시야를 가지면서 더없이 상쾌해진다. 서울이라면 남산의 서울타워나 북악산의 팔각정에 오르면 서울의 전경이 다 보이는 것과 같다. 이처럼 누각이 사람에게 자유로운 시야를 열어주는 것을 이해한다면, 현대인들이 왜 가격이 비싸더라도 스카이라운지나 펜트하우스를 고집하는지도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원자바오는 중국과 일본이 눈앞에 놓인 장애를 극복하고 지금보다 더 나은 단계로 올라가야 하는 상황을 수많은 말을 끌어들여서 설명하지 않고 왕지환의 시로 간단하게 표현하고 있다. 수천 마디의 말을 10자가 대신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몇몇 종교인과 정치인들이 간간이 고사성어를 통해 자신의 심정이나 정견을 표현하곤 한다. 앞으로 고사성어만이 아니라 시를 인용해서 자신을 드러내는 풍경을 보고 싶다. 그러면 날 선 말로 상대를 자극해서 괜히 상황을 꽉 틀어막는 일이 줄어들지 않을까!
▣ 『시경』의 전승과 시 비평
『시경』은 모두 305수의 시를 모아놓은 시집을 가리킨다.(흔히 ‘시 300수’라고 하는데, 이는 백 단위로 『시경』을 대표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시집하면 시인이 자신의 시를 모아서 책으로 묶은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고대에는 국가가 사회 분위기를 파악하는 일환으로 각 지역의 시를 수집하곤 했다. 그렇게 수집된 시를 모아놓은 것이 『시경』의 모태가 되었다. 오늘날 식으로 생각하면 시는 여론조사나 동태파악의 일환이었다고 할 수 있다. 더 특징적인 것은 각 시마다 곡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시경』은 곡은 사라지고 가사가 남은 꼴이라고 할 수 있다. 『시경』이 편집된 텍스트인 만큼 풍(風)·아(雅)·송(頌)이라는 순서가 있다. 아에는 다시 소아(小雅)와 대아(大雅)의 구분이 있다. 풍은 바람·분위기·향배 등을 나타내는 말로 대부분 황하 중하류의 15개 지역의 민요를 채집한 것이다. 아는 우아(優雅)·아정(雅正)처럼 기준을 나타내는 말로 송나라 주희의 구분법에 따르면 소아는 잔치나 연회에 쓰인 반면 대아는 제사에 쓰였다고 한다. 송은 찬송·예찬을 나타내는 말로 민족(인종)의 영웅적인 조상의 공적을 기리는 시로 되어있다. 편수로 보면 풍이 160수, 소아가 74수, 대아가 31수, 송이 40수로 모두 305수이다. 분량으로 보면 풍이 제일 많고 송이 제일 적다. 오늘날 기록할 도구와 매체가 아주 다양하다. 50년 전만 해도 종이가 지배적이었지만 지금은 CD, DVD, 컴퓨터, 아이패드, 휴대폰 등 기록할 매체가 상상도 못할 정도로 늘어났다. 종이가 기록의 첨단이었던 시대 이전에는 기록할 매체가 늘 문제였다. 역사적으로 보면 양피지, 비단, 나무, 동물뼈, 바위 등이 공책과 같은 기능을 했지만 대량의 문서화 작성은 여전히 어려웠다. 이 때문에 고대에는 문서[경전]를 다음 세대에 안전하게 전해주는 게 쉽지 않았다. 그 결과 고대 문헌은 처음에 기억을 통해 전승되다가 종이에 옮겨진 뒤에도 시비가 끊이지 않았다. 사람마다 기억이 조금씩 다르고 그것이 전해지는 과정에서 더욱더 같지 않게 되었기 때문에 서로가 자신의 자료가 믿을 만한 자료라고 고집했던 것이다. 한제국 시절에 『시경』은 삼가시(三家詩)라 불리는 세 계통에서 전해지고 있었다. 예컨대 노나라 출신 신배공(申培公)의 시를 노시(魯詩)라 하고, 제나라 출신 원고생(轅固生)의 시를 제시(齊詩)라고 하고, 연나라 출신 의 시를 한시(韓詩)라고 했다. 이들의 시 중 한시외전(韓詩外傳)으로 불리는 한영의 시 이외는 모두 전해지지 않는다. 오늘날 『시경』은 삼가시의 계통이 아니라 모시(毛詩)라고 불리는 새로운 계통의 전승 문헌이다. 『시경』과 관련해서 육의(六義)라는 중요한 개념이 있다. 앞에서 살펴본 풍·아·송 이외에 부(賦)·비(比)·흥(興) 등이 있다. 풍·아·송이 시의 기원·용도·성질을 가리킨다면, 부·비·흥은 시 창작과 비평의 체제와 형식을 가리킨다. 부는 직설법으로 있는 사실과 시상을 그대로 기술하는 방식을 말한다. 비와 흥은 역대로 그 정체를 두고 학자들이 논란을 벌여왔다. 비와 흥은 사실을 그대로 전달하지 않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즉 둘은 문자 그대로의 의미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문자 너머의 또 다른 의미를 전달하고자 한다. 예컨대 널리 알려진 김동명 시, 김동진 곡의 「내 마음은 호수요」에서 우리는 누구도 물리적 의미에서 ‘내 마음 = 호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 마음은 호수요 그대 노 저어 오오”처럼 나의 마음으로 다가올 수 있는 매개로서 호수를 쓰고 있는 것이다. 같은 시에서 시인은 마음을 계속 촛불·나그네·낙엽에 견주어서 표현하고 있다. 비와 흥은 일종의 비유로서 시인이 시를 통해서 무엇을 불러일으키려고 했는가에 따라 차이가 난다. 비는 상상력에 의해 연상 효과를 갖는 반면에 흥은 공감에 의해 정서적 유발의 효과를 갖는다. 대중가요를 듣고서 우리는 각각 다른 반응을 보인다. 애인과 헤어졌을 때는 슬픔의 감동을 느끼고, 계절의 변화를 느낄 때는 반성의 계기를 갖는다. 전자가 흥에 가깝다면 후자는 비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 희노애락에서 저항까지 자유 공간의 창출
공자는 오경 중에서 『시경』과 관련된 말을 많이 남겼다. 그는 『시경』을 “생각이 꼬여 있지 않고 순하다”(思無邪)라고 했다. 그는 또 시를 배워야 하는 이유로 탁월한 언어 능력을 필요로 하는 외교 업무를 잘 수행할 수 있다든지 잡다한 상식을 가질 수 있다든지 풍자와 완곡한 표현으로 자신의 의사와 감정을 부드럽게 전달할 수 있다는 점을 제시했다. 공직 수행과 대인 관계처럼 절제된 언행을 필수 덕목으로 하는 자리에 있다면, 그이는 시를 반드시 배워야 했다. 사람살이가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므로 결국 모든 사람이 시를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오프라인만이 아니라 온라인의 블로그, 까페, 홈페이지, 전자출판, SNS 등을 통해서 누구나 텍스트를 만들 수 있게 되어 누구든 텍스트의 장에 등장인물이 되는 것이 자유롭다. 고대에는 선택된 사람만이 텍스트의 제국에 기거할 수 있었다. 『춘추좌전』과 같은 역사서는 사건마다 숱한 등장인물이 필요로 하므로 보통 사람이 비집어 들어갈 틈이 있다. 하지만 그 속에 보통 사람은 무명용사처럼 모두 몇 명으로 기록된 숫자 중의 한 명으로서 몸은 있지만 입은 없는 기형 인간으로 되어있다. 그들은 말 없는 다수로 텍스트의 제국에 초대를 받았지만 발언권이 없기 때문이다. 『시경』은 사정이 다르다. 특히 풍에는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해서 자기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다. 고난의 삶을 살아오신 어르신들이 “내 삶을 기록하면 공책 열 권도 모자란다.”고 하듯이 『시경』 속에는 다양한 민초와 귀족 그리고 아웃사이더와 주역들이 제 소리를 들어 달라는 듯이 여기저기에서 아우성을 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시경』을 사서오경 중의 해방 공간이라고 부른다. 과연 그런지 몇몇 인물을 만나보자. 에서는 혼기가 찬 여성이 가지에 남아있는 매실의 개수를 소재로 자신을 하루바삐 데려가 달라는 내용을 시로 나타내고 있다. “매실이 떨어져서 열매가 일곱 개 남았네. 나를 찾는 총각님들 길일을 잡아 데려가소. 매실이 떨어져서 세 개만 남았네. 나를 찾는 총각님들 오늘 당장 데려가소. 매실이 다 떨어져 광주리에 주워 담네. 나를 찾는 총각님들 말만 잘하고 데려가소.” 시의 전개에 따라 여성이 마음이 급해지는 속도가 그대로 전해지고 있다. 7, 3, 0이란 숫자가 20대 후반, 30십대, 30대 중반 등으로 읽으면, 이 시는 오늘날 우리가 주위에서 흔히 듣는 이야기를 그대로 읊고 있는 셈이다. 「잣나무 배[柏舟]」에는 배가 물결 위에서 이리저리 흘러가는 것을 근심 걱정으로 잠 못 이루는 사람의 심경을 그리고 있다. “내 마음 거울이 아니니 비춰서 보여줄 수 없고, 형제가 있지만 도움이 되지 않네, 찾아가 하소연한들 그의 노여움만 산다네.… 근심 어린 마음 초초하니 하찮은 무리마저 성을 다 내네, 쓰라린 일 많았고 치욕도 적잖이 받았네, 가만히 생각하다 제 가슴만 치네.” 사회에서 점점 고립되어가는 사람의 울분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다. 위의 두 시가 소극적이라면 사회에 대해 적극적인 발언과 자기 의사를 드러내는 시도 있다. 「큰 쥐[碩鼠]」에서는 부패한 지도자를 큰 쥐에 비유하면서 살기 좋은 곳을 찾아 떠나겠다는 염원을 그리고 있다. “큰 쥐야 큰 쥐야, 우리 기장 먹지마라, 삼 년이 지났지만 나를 제대로 돌보지 않네, 내 앞으로 너를 떠나 저 낙토(樂土)를 찾아 가리, 낙토를 찾아가서 내 살 곳을 가꾸리.” 폭정에 시달리는 백성이 고통을 더 이상 겪지 않고 착취와 고통이 없는 낙원(유토피아)을 스스로 일구려는 소망을 읊고 있다. 「정월(正月)」에는 세상살의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고 자신을 낳아준 부모를 원망하고 있다. “부모님 나를 낳아 어찌 나를 힘들게 하는가, 지금보다 먼저 낳거나 아니면 뒤에 낳지, 좋은 말도 입에서 나오고 나쁜 말도 입에 줄줄 나오네, 근심은 더욱 깊어지고 모욕을 당한다네.” 『시경』에서 이처럼 자신을 낳아준 부모와 하늘을 원망하는 시가 많은데, 이를 원천시(怨天詩)라고 한다. 하늘이 모든 것을 낳은 근원이면서도 불의의 세상에서는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는 무기력한 존재로 그려진다. 이처럼 『시경』은 너무나도 다양한 색깔의 시들이 많다. 사서오경 중에서 아마 현대인과 가장 쉽게 친근해질 수 있는 텍스트라는 생각이 든다.
▣ 주족(周族)의 신화 공간
『시경』은 전근대에 모든 사람들이 삶의 좌표로 삼아야 하는 거룩한 책으로 간주되었다. 이에 따라 다른 책과 달리 경(經)의 이름으로 불리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은나라를 무찌르고 왕조를 세운 주족(周族)의 서사를 담고 있다. 즉 『시경』은 무색무취한 보편 교과서가 아니라 주족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반영한 건국 서사라고 할 수 있다. 「문왕(文王)」에서는 문왕이 주나라를 도와서 은나라를 무찌르게 하고 그들의 후손들이 영원히 복을 누리도록 한다는 내용을 읊고 있다. 「오이덩굴[綿]」에서는 고공단보에서 문왕까지 주족이 기산(岐山) 아래에 터를 잡고서 땅을 개척하고 궁실을 세우는 등 건국의 짧은 서사시를 웅장하게 그리고 있다. 「거룩한 태임[思齊]」에서는 주나라의 건국이 남성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어머니 또는 아내의 공로였다는 것을 읊고 있다. 이렇게 보면 『시경』은 고대 로마의 로물루스와 레무스의 탄생 설화와 건국 이야기, 구약성경과 이스라엘 민족 이야기 등과 마찬가지로 인류 보편이 아니라 특정 인종의 정착, 확장, 통일 등 일련의 건국 과정을 담은 서사시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앞으로 『시경』을 읽더라도 여러 가지 측면을 잘 구분해서 봐야겠다. 개별 인종의 영웅을 동아시아의 영웅으로 일반화시키려고 하는지, 상황은 다르지만 오늘날 억압과 독제, 폭력과 전쟁이 있는 곳이라면 누구나 겪는 이야기가 『시경』 속에서 이미 그려지고 있는지 조금씩 따져보아야겠다.그 중에서 보편화 가능성을 가지고 형상화된 시가 있다면 그 시에 곡을 붙여서 오늘의 노래로 부르고 싶다. 아니면 이미 있는데 우리가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필자소개 서울대학교에서 서양철학과 동양철학을 배웠고 대학원에서 동양철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유학·동양학부의 교수로 있다. 한국철학회 등 여러 학회의 편집과 연구 분야의 위원과 위원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사람다움이란 무엇인가』 『공자씨의 유쾌한 논어』 『제자백가의 다양한 철학흐름』 『동중서 중화주의 개막』 『동양철학의 유혹』 『사람다움의 발견』 『논어의 숲, 공자의 그늘』 『중용: 극단의 시대를 넘어 균형의 시대로』 『어느 철학자의 행복한 고생학』 『한비자』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백호통의』 『유학, 우리 삶의 철학』 『세상을 삼킨 천자문』 『공자신화』 『춘추』 『동아시아 미학』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