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어려운 시기에 닥친 한 수도원에 대한 것이다. 한때는 큰 규모와 역사를 자랑하던 어떤 종교 단체가 있었다. 이 교단은 17세기와 18세기에 걸쳐 벌어진 수도원 박해 운동에 영향을 받아 모든 세력을 잃고 말았다. 곳곳에 흩어져 있던 지부들은 명맥이 끊어지고 이제는 중앙 교단에 다섯 명의 수도승만이 남은 초라한 상태로 전락하고 말았다. 누가 봐도 몰락을 눈앞에 둔 교단임이 틀림없었다.
수도원이 위치한 깊은 산 속에는 한 랍비(유태교 성직자)가 이따금 은거처로 사용하는 작은 오두막집이 있었다. 그 랍비는 근처의 도시에서 시나고그(유태교 사원)를 이끌고 있었는데, 가끔 그 오두막에 와서 휴식을 취하곤 했다. 수십 년에 걸친 기도와 명상 덕분에 늙은 수도사들은 어느 정도 초능력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랍비가 언제 그 움막에 와 있는지를 멀리서도 알았다.
“랍비가 산에 왔군. 랍비가 또 오두막집에 왔어.”
그들은 그렇게 서로의 귀에 대고 속삭이곤 했다. 교단이 종말을 고하는 것 때문에 고뇌하던 수도원장은 문득 그 움막의 랍비를 찾아가 수도원을 되살릴 조언을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도원장이 찾아가자 랍비는 기꺼이 그를 오두막 안으로 맞아들였다. 그러나 수도원장이 방문 목적을 설명하자 랍비는 단지 동정을 표시할 뿐이었다.
“저도 이해합니다.”
랍비는 낮은 목소리로 탄식하며 말했다.
“사람들은 이제 영적인 문제로부터 멀어졌습니다. 제가 사는 도시에서도 마찬가집니다. 시나고그에 찾아오는 사람도 요즘은 무척 드물답니다.”
늙은 수도승과 랍비는 함께 눈물지었다. 그런 다음 그들은 『토라』(유태교 경전)를 읽고 조용히 심오한 대화를 나눴다. 이윽고 수도원장이 떠날 시간이 되었다. 둘은 서로 껴안았다. 수도원장이 말했다.
“그동안 자주 이런 만남을 가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하지만 전 여기에 찾아온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가는군요. 쓰러져가는 우리 교단을 살릴 한 마디의 조언도 당신은 갖고 있지 않은가요⋅”
랍비가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전 아무런 조언도 드릴 게 없군요. 단 한 가지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당신들 가운데 한 사람이 메시아라는 사실입니다.”
수도원에 돌아온 수도원장이 수도사들에게 말했다.
“아무런 도움말도 얻을 수 없었습니다. 우린 함께 눈물을 흘리고 『토라』를 읽었지요. 다만, 내가 오두막을 나설 때 그는 우리 중에 메시아가 있다는 수수께끼 같은 말을 하더군요. 무슨 뜻으로 한 말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 후 날이 지나고 달이 지나면서 늙은 수도사들은 랍비가 한 말의 의미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우리 중에 메시아가 있다고⋅ 이 수도원에 있는 우리 다섯 명의 수도사 가운데 한 사람이 메시아란 말인가⋅ 그렇다면 과연 누가 메시아일까⋅ 수도원장을 가리킨 말이 아닐까⋅ 그래. 정말로 메시아가 우리 중에 있다면 수도원장이 틀림없어. 그는 한 세대도 넘게 우리를 지도해 왔으니까. 하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토마스 일지도 몰라. 분명히 토마스는 성스러운 사람이야. 토마스가 빛의 사람이라는 걸 모두가 알지. 어쨌든 엘러드는 이따금 변덕을 부리지. 하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엘러드가 비록 발바닥의 가시 같은 존재이긴 하지만 사실 그가 항상 옳았어. 그가 절대적으로 옳을 때가 많았지. 어쩌면 랍비는 엘러드를 두고 말한 건지도 몰라. 필립은 확실히 아니야. 필립은 너무도 순종적이고 거의 눈에 띄지 않는 인물이니까.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는 누군가 자기를 필요로 할 때면 항상 나타나곤 하지. 마술이라도 부리는 것처럼 어느새 옆에 와 있단 말이야. 혹시 필립이 메시아일지도 몰라. 물론 랍비가 나를 두고 한 말이 아닌 건 확실해. 나를 지목한 말일 가능성은 전혀 없지. 난 그냥 평범한 인간이니까. 오. 하느님! 절대로 전 아닙니다. 제가 당신 앞에 그렇게 중요한 인물로 설 순 없어요. 안 그렇습니까⋅’
늙은 수도사들은 이런 식으로 제각기 사색하면서 메시아일지도 모르는 서로를 깊은 존경심을 갖고 대하기 시작했다. 또한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혹시 자기 자신이 메시아일지도 모르기 때문에 스스로에 대해서도 특별한 존경심을 갖기 시작했다.
수도원이 자리 잡은 그 산은 매우 아름다운 경관을 가진 곳이었다. 그래서 이따금 사람들이 소풍 삼아 수도원을 찾아와 잔디밭에서 놀거나 수도원 주변의 오솔길들을 산책하곤 했다. 또 황폐해져 가는 수도원 안으로 들어가 명상을 하는 사람도 가끔 있었다. 사람들은 차츰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그곳에 사는 다섯 명의 수도사들 사이에 존재하는 어떤 특별한 존경심 같은 것을 느끼게 되었다. 서로를 존경하는 그 마음들이 후광처럼 수도원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거기에는 어떤 이상한 매력과 사람을 잡아끄는 힘이 있었다. 자신들도 모르게 사람들은 더 자주 그 수도원을 찾아와 소풍을 즐기고 명상을 위해 주위의 친구들까지 데려왔다. 그리고 그 친구들은 또 다른 친구들을 데려왔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젊은 사람들도 그 수도원을 찾아와 늙은 수도사들과 대화를 나누는 일이 많아졌다. 얼마 후 한 젊은이가 그곳에 입문해 수도사가 되었다. 그 뒤를 이어 또 다른 젊은이도 입문했다. 그래서 몇 해 뒤에는 수도원이 또다시 옛날처럼 번창하게 되었고, 랍비의 선물 덕분에 그곳은 그 지역의 빛과 영성의 살아 있는 중심지가 되었다.
세상 모든 사람은 소중하며 존중받을 가치를 타고난 존재입니다. 사람은 하늘의 헤아릴 수 없는 공력으로 어렵게 태어난다는 『전경』의 말씀처럼 모든 사람은 하늘에서부터 기인하여 온 존귀한 존재임을 자각해야 합니다. 이것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비록 겉보기에 부족한 사람이라도 서로 존중하고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앞서 보았던 랍비의 지혜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어느 한 사람이 메시아일 것이라는 신비한 메시지는 결국 모두가 메시아와 같은 귀한 존재라는 깨달음의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어쩌면 우리 수도인 가운데도 초월적인 존재로만 알고 있던 도통군자의 모습을 오히려 일상 속에서 마주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끝없이 확인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이제 누구를 대하더라도 도통군자를 대면하듯이 서로가 가슴으로 존중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참답게 남을 존중하고 내가 존중받는 길이라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