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8[戊申]년 10월 말, 청도원에서 청국공사를 마치고 동곡약방으로 돌아오신 며칠 뒤 상제님께서는 “풍(風)·운(雲)·우(雨)·로(露)·상(霜)·설(雪)·뇌(雷)·전(電)을 이루기는 쉬우나, 오직 눈이 내린 뒤에 비를 내리고 비를 내린 뒤에 서리를 오게 하기는 천지의 조화(造化)로써도 어려운 법이라. 내가 오늘 밤에 이와 같이 행하리라.”고 하시며, 글을 써서 불사르셨다. 과연 그날 밤에 눈이 오더니 곧 비가 내리고 개인 뒤에 서리가 내렸다.
상제님의 말씀처럼 눈이 오다가 비가 내리고 다시 서리가 연이어서 내리는 현상은 자연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현상이다. 좀 복잡한 듯하지만, 그 이유를 하나씩 찬찬히 살펴보도록 한다.
원래 땅은 비열(比熱: 온도를 올리는 데 필요한 열의 양)이 작아서 공기보다 더 빨리 온도가 변한다. 다시 말해서 공기보다 땅이 더 빨리 달아오르고 더 빨리 식는다는 뜻이다. 간단히 예를 들면, 맑은 날 해가 뜨면 비열이 작은 땅은 햇빛을 받아서 금방 달아오르지만 비열이 큰 공기는 땅보다 더 늦게 데워지기 때문에 오전에는 선선하다. 또 해가 지면 땅은 금방 차가워지지만 공기는 이보다 좀 더 시간이 지나서야 차가워지기 때문에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따뜻하다. 상제님께서 눈 → 비 → 서리를 차례로 오게 하신 때는 밤이다. 밤에는 땅이 빨리 식는다. 따라서 공기의 온도보다 땅의 온도가 낮은 상태이다.
이런 상태인 밤에 눈이 온다면, 공기는 영하일 터이고 땅은 원래 공기보다 온도가 낮은 상태였던 데다가 눈까지 맞으니 더욱 온도가 낮을 것이다. 그런데 곧바로 비가 오기 위해서는 눈이 녹아 비로 바뀌어 내려야 하는데, 이러기 위해서는 해가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어딘가에서 따뜻한 바람이 불어 공기의 온도를 올라가게 하는 방법 외에는 없다. 밤중에 눈이 오고 있는데, 갑자기 훈풍이 불어 눈이 비로 바뀌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어쨌든 드문 일이지만, 따뜻한 공기가 몰려와서 눈이 녹아 비로 내렸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영하였던 공기는 영상으로 올라갈 것이고, 땅 역시 비를 맞아 그 물기로 인해서 영상으로 올라갈 것이다. 자연계에서 보기 힘든 현상이지만, 그래도 여기까지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은 아니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간단히 정리하자면, 밤에 눈이 내리고 있는데 어디에선가 홀연히 훈풍이 불어와서 눈이 녹아 비가 내려 공기도 땅도 모두 영상이라는 것이다.
이제 이럴 때 비가 그치고 서리가 내릴 수 있는지 살펴보자. 서리란 땅의 온도가 공기보다 낮고 영하로 내려갈 때, 땅에 가깝게 붙어있는 공기의 수증기가 얼어붙어 생기는 작은 얼음을 말한다. 그런데 좀 전에 눈이 내렸다가 비가 온 관계로, 땅은 영상인 상태이다. 더구나 비로 인해 공기 중에 많아진 수증기는 열을 머금고 있어서 땅의 온도가 떨어지지 못하게 단단히 막고 있기까지 한다. 밤에는 태양이 없기 때문에, 땅과 공기의 온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은 사실상 외부에서 불어오는 바람밖에 없다. 땅의 온도가 영하로 떨어져야 서리가 생길 수 있으니, 땅을 영하로 차갑게 만들기 위해서는 매우 차가운 바람이 갑자기 불어와야 한다. 하지만 좀 전에 따뜻한 바람이 불었는데, 다시 연이어 차가운 바람이 또 분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래도 정말 우연히 이런 아주 특이한 일이 일어난다고 가정해보자. 차가운 바람이 불면 당연히 공기가 땅보다 먼저 차가워져 버린다. 따라서 땅의 온도를 급작스럽게 공기보다 더 차갑게 영하로 떨어뜨릴 수 있는 방법이란 사실상 없다. 즉 서리가 내릴 수 있는 조건은 도저히 만들어질 수 없는 것이다.01 이렇게 보면 밤에 눈 → 비 → 서리가 차례로 내리는 초자연적인 일기 현상을 직접 일으켜 보여주신 이 사례는 천지를 마음대로 좌우하시는 상제님의 권능을 입증해주는 하나의 일화라 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일기 변화는 상제님께서 보시는 천지공사의 한 일환에서 비롯된 것이다. 다만 자세한 기록이 없어 그 공사의 내용은 알 수 없다.
얼마 후, 동곡약방에 기거하고 계시던 상제님께서는 남쪽을 향하여 누우시며 최덕겸에게 “내 몸에 파리가 앉지 못하게 잘 날리라.”고 이르시고 잠에 드시는 듯했다. 반시간쯤 지나서 김덕찬(金德贊)이 최덕겸에게 점심을 먹자고 불렀는데, 그는 상제님의 분부 때문에 가지 못한다고 말했다. 김덕찬이 “잠들어 계시니 괜찮을 것이라.”고 말하기에 최덕겸은 파리를 멀리 쫒고는 나가려고 일어섰다. 그러자 갑자기 상제님께서 벌떡 일어나 앉으시며 “너는 밥을 얻어먹으러 다니느냐! 공사를 보는 중에 그런 법이 없으니 번갈아 먹으라!”고 꾸짖으셨다.
이 공사를 끝내신 상제님께서는 종이에 무수히 많은 태극 문양을 그리시고 글자도 쓰셨다. 그리고 최덕겸에게 동도지(東桃枝)를 꺾어오라고 하셨는데, 동도지란 동쪽으로 뻗은 복숭아 나뭇가지로서 예로부터 양기(陽氣)가 가득하다고 여겨져 온 것이었다. 최덕겸은 상제님의 명에 따라 태극 문양을 세면서 매 열 개가 될 때마다 동도지를 입에 물었다. 이윽고 49개의 태극을 다 세자 상제님께서는 “맞았다. 만일 잘못 세었으면 큰일이 나느니라.”고 말씀하시며, 그 동도지를 들고 큰 소리를 지르신 뒤에 태극 문양들과 글들이 쓰여진 종이를 두루마리로 말아서 불사르셨다. 그 후 상제님께서 다시 종이에 ‘龍’ 한 글자를 쓰셔서 최덕겸에게 “이것을 약방 우물에 넣으라.” 하시니, 최덕겸은 그대로 행하였다.
▲상제님께서 종이에 ‘龍’ 글자를 쓰셔서 넣도록 하신 동곡약방 우물의 현재 모습
상제님께서는 김낙범(金落範)으로 하여금 쌀 20말을 찧어서 동곡약방에 저장하도록 시키셨다. 그때 김형렬이 여러 종도들의 아침밥을 지을 쌀이 모자라자, 아무도 모르게 사촌동생 김갑칠을 시켜 동곡약방에 저장해 둔 20말의 쌀 가운데 반 말을 떼어내어 조반을 지었다. 이를 벌써 알고 계셨던 상제님께서는 김형렬과 김갑칠을 불러내 꾸짖으셨다.
상제님께서는 다시 동곡약방에서 남서쪽으로 30여 리 떨어져 있는 와룡리(臥龍里)02로 발걸음을 옮기셨다. 그곳의 신경수 집에서 얼마간 묵으시다가, 문득 박공우에게 “너의 살과 나의 살을 떼어서 쓸 데가 있으니 너의 뜻이 어떠하뇨?” 하고 물으셨다. 박공우가 “쓸 곳이 있으시면 쓰시옵소서.” 하고 아뢰니, 과연 그 다음 날 부터 박공우가 살이 빠져 마르기 시작했다. 박공우가 “살을 떼어 쓰신다는 말씀만 계시고 행하시지 않으셨으나, 그 후로부터 선생님과 제가 수척하여지오니 무슨 까닭이오니까?” 하고 여쭈니, 상제님께서는 “살은 이미 떼어 썼느니라. 묵은 하늘이 두 사람의 살을 쓰려 하기에 만일 허락하지 아니하면 이것은 배은(背恩)이 되므로 허락한 것이로다.”고 깨우쳐주셨다.
얼마 후 신경수 집 근처에 사는 ‘황’응종(黃應鍾)이 오는 것을 보시고는 “‘황’천신(黃泉神)이 이르니 ‘황’건역사(黃巾力士)의 숫대를 불사르리라.”고 하셨다. 그리고 김갑칠로 하여금 짚 한 줌을 물에 축인 다음, 잘라서 숫대 모양으로 만들게 하시고 그것을 화로에 불사르셨다.
황천이란 저승을, 황천신이란 후사가 있어 자손으로부터 제사를 받는 신을 말한다. 또 황건역사는 황색 두건을 쓴 힘이 센 신장(神將)으로서, 대개 죄를 지은 신들에게 벌을 주거나 혹은 지옥으로 보낼 때 호송을 맡는다고 알려져 있다. 숫대란 숫가지 또는 산목(算木)이라는 것으로서, 옛날에 숫자를 표현하거나 또는 계산할 때 사용하던 젓가락 모양의 대 가지를 말하니 요즘으로 보면 주판이나 계산기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01 박정옥, 「권지 1장 22절에 나타난 상제님의 권능」 『상생의 길』 1 (대순진리회 출판부, 10∼15쪽 참조.
02 現 전북 정읍시 정우면 회룡리 괴동(槐洞)마을. 와룡마을과 신기(새터)마을이 합쳐져서 괴동마을이 되었고, 와룡마을은 괴동 남쪽에 있었다.(『한국지명총람12-전북편(하)』, 한글학회, 2003, 447쪽 / 임남곤, 『향리지』, 2002, 55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