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민족의 신화(神話)든지 신화를 읽는다는 것은 참으로 흥미로운 일이다. 신화적 서사(敍事)에는 단순한 흥미를 넘어 인간이 세계를 바라보고 삶을 통찰한 가장 원시적이며 근원적인 의식의 힘이 있다. 또한 신화의 근원성을 토대로 우리는 역사와 문화 그리고 종교와 사상의 기원을 조명하기도 한다. 그러한 신화를 규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신(神)의 이야기’, ‘신에 대한 인간의 경배 이야기’이다. 곧 신화는 신과 인간의 관계 혹은 신과 인간의 소통에 관한 이야기이며, 신을 근간으로 한 역사와 세계의 기원에 관한 담론인 것이다. 그래서 신화는 자연스럽게 민간신앙의 근원설화(根源說話) 혹은 신앙적 동기의 모태가 되며 제의(祭儀)라는 구체적인 색체와 형태 속에 전승되어 왔다.
그렇다면 우리네 신화에는 어떤 것들이 존재할까? 한민족 신화는 문헌에 기록으로 전하는 문헌신화01와 구비로 전승되는 구비신화02로 이분화 되며, 그 기저에는 단연 ‘하늘[天]’에 대한 신성성이 깔려 있다. 하늘, 그것은 우주의 만물이 영혼을 가지고 있다는 애니미즘(animism)에서 최고봉으로 이해될 수 있으며, 인간의 이해와 능력을 넘어서는 미지의 자연에 대한 원초적인 외경심(畏敬心)의 표현이다. 그 같은 믿음에서 나온 것이 바로 ‘천신신앙(天神信仰)’이라는 보편적인 현상이라 하겠다. 더욱이 초월적인 존재에 대한 신앙은 신을 맞이하고 받아들이는 의례인 ‘제천의식(祭天儀式)’을 통해 표출되었다. 『삼국지(三國志)』 「위지(魏志)」 ‘동이전(東夷傳)’에 기록된 음력 정월 부여의 영고(迎鼓), 시월 고구려의 동맹(東盟), 같은 달 예(濊)의 무천(舞天) 등은 다름 아닌 이 ‘하늘’에 대한 제의였으며, 기록에 전해오는 것으로 본다면 우리 민족의 시조이자 고조선의 창업왕인 단군왕검(檀君王劍)이 시초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 「단군고기(檀君古記)」의 ‘단군신화’에 그러한 점들이 발견된다.
“옛날에 환인(桓因)의 서자(庶子) 환웅이 천하에 자주 뜻을 두고 인간 세상을 탐하여 구하였다. 아버지[환인]가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태백(三危太伯)을 내려다보니 인간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할 만하여, 이에 아들에게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주어 그곳에 가서 다스리게 하였다. 환웅은 무리 3천명을 거느리고 태백산(太白山) 정상 신단수(神檀樹) 아래로 내려와 그곳에 ‘신시(神市)’를 열었고, 그분을 환웅천왕(桓雄天王)으로 불렀다. 그는 풍백(風伯)·우사(雨師)·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식·생명·질병·형벌·선악 등을 관장하고 인간 세상에 관한 3백 60여 가지 일을 맡으면서 세상에 머물렀고, 인간들에게 하늘의 질서에 적응하게 하고 제의와 교화를 가르쳤다. … 웅녀(熊女)는 신단수에서 하늘에 결혼하기를 기원하였다. 이를 본 환웅이 그녀와 혼인하여 아이를 낳으니 그가 곧 단군왕검(檀君王劍)이다. … 왕검이 평양성에 도읍을 정하고 비로소 조선(朝鮮)이라 일컬었다.”
그런데 ‘제천의식’을 이해함에 앞서 신화에 나타나는 몇몇 상징적인 양상들을 짚어 봐야 하는데, 한민족 신화의 한 특징을 반영하는 ‘천부지모(天父地母)’와 ‘우주의 중심축’이 그러한 것이다. ‘천부지모’의 양상으로 단군뿐만 아니라 주몽(朱蒙), 진한(辰韓) 육촌(六村)의 시조, 수로왕(首露王) 등도 거의 예외 없이 자신이 하늘에서 내려왔거나 아니면 하늘의 자손이라는 점을 표명한다. 이는 천신과 지신이 결연한 인격신의 탄생이라는 신성성을 부여하고, 또 인격신은 인간사(人間事)에 관여하기에 사람들로부터 숭배 또는 경외를 받는 대상이 된다. 더구나 중국의 채옹(蔡邕, 132∼192)03이라는 학자가 『독단(獨斷)』에서 “천자의 호칭은 동이에서 시작된 바이다. 하늘을 아버지로, 땅을 어머니로 하여 태어났기 때문에 하늘의 아들이라 한 것이다(天子 夷狄之所稱 父天母地 故稱天子).”라고 했는데, 마치 『삼국유사』 「고기」의 기록이라도 본 듯 정확하게 우리 민족이 천손민족임을 묘사하고 있다.
또한 신단수는 천신의 뜻에 따라 신령(神靈)과 정사(政事)를 의논하던 성역(聖域)으로, 지상과 천상의 통로이자 우주의 중심이 되는 신목(神木)을 일컫는다. 이는 신이 머무르는 신성한 곳임을 드러냄으로써, 성(聖)과 속(俗)의 공간을 구분 짓는 경계로서의 의미도 함께 숭앙되고 있다. 마을의 중심지가 된다는 솟대와 한옥에서 성주신(城主神)을 모신 대청마루 위의 상량(上樑)이 집안의 중심이 된다는 것 등이 신단수의 의미와 일맥상통한다 하겠다. 그리고 환웅이 강림하는 곳이 태백산이었고, 단군이 사후에 산신(山神)이 되었다는 점이 산의 또 다른 의미를 부각시킨다. 이른바 산은 상징적으로 하늘과 가까이 맞닿아 있어 천상과 지상을 연결하는 우주의 중심축으로서의 공간이자 하늘과 연계되는 성역(聖域)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후대에 들어 산은 ‘천제(天祭)’와 ‘산간천제(山間天祭)’를 지내는 공간으로 나눠진다. 전(前)자는 최고 권력을 지닌 지배자인 천자(天子)가 공식적으로 시행하는 곳으로, 후(後)자는 천자 이외에 산에서 의례를 거행하는 것은 반란에 해당되는 중차대한 음사(淫祀)04이므로 민간의 마을신앙 혹은 산신신앙으로 변이하게 된다.
이렇듯 고대인의 제천의식은 자신들이 하늘의 자손이라는 천손(天孫)의식과 우리네 산이 성역이자 우주의 중심이라는 의식이 짙게 드리워져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어쩌면 하늘에 더 가까이 가려는 인간들의 바람이자 숭배인지도 모른다. 하늘에 대한 믿음과 숭배는 당시의 정치 현상의 존재양태와도 긴밀하게 얽혀 있다고 봐야 한다. 신화가 역사적 사실 자체는 아니더라도 그 속에 내재된 역사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위 ‘단군신화’는 제정일치(祭政一致)시대의 존재를 상징적으로 전달해주고 있다. 단군은 ‘제사장’, 왕검은 ‘정치적 군장’이라는 의미로 이해한다면, 단군왕검은 곧 제사장과 정치적 군장이 일치하고 있음을 가리킨다. 거기에 담겨 있는 정치의 모습은 종교와 정치가 아직 분화되기 이전의 그것, 다시 말해 ‘신정(神政)일치 사회’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상제님께서 “옛적에 신성(神聖)이 입극(立極)하여 성·웅(聖雄)을 겸비해 정치와 교화를 통제 관장(統制管掌)하였으되 ….”(교법 3장 26절)라는 말씀을 미루어 짐작할 때, 당시 단군왕검의 시대는 요순시대에 버금가는 군사위(君師位)가 한 갈래인 이상적인 사회가 펼쳐졌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다음 호에는 삼한시대에서 고려시대까지의 제천의식에 대한 내용을 다루어 보겠다. 이 시대는 천상의 지고신(至高神)이 갖는 속성이 점차 인간의 세계에 가까워진 존재, 즉 산신신앙이나 마을신앙으로 변이 된다. 또한 천신이자 제사장이었던 단군이 후대에 들어 무당의 원형으로 투영되게 된 과정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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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단군신화’, ‘해모수신화’, ‘수로신화’ 등, 나라를 세운 왕의 건국신화와 한 씨족의 시조신화 등의 이야기이다. 각 서사에 따라 추정되는 사건이나 행위에 차이가 존재 하지만 그들 모두 신성성을 갖춘 존재로서 일반인들과 차별화된 신분이면서 초월적인 능력으로 인간에게 추앙을 받는다는 점이 특징이다. 특히 ‘단군신화’에는 한국인의 의식이 총체적으로 담겨져 있어 우리네 신화의 모체가 된다. 그래서 고구려 신화 등 후세의 모든 신화가 이것과 맥락이 닿아 있을 뿐 아니라 설화 · 문학 · 무속 등에 이르기까지 깊숙이 관련되어 전승되고 있다.
02 이를 서사무가 혹은 무속신화라고도 한다. ‘바리공주’, ‘천지왕본풀이’, ‘성주[상량]신화’ 등 어떤 인물이 인격신으로 좌정되기까지의 과정인 갈등 요소가 기본적으로 깔려 있고, 어떤 문제 상황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특정한 제의를 치루는 것을 서사하고 있다.
03 중국 후한시대 학자. 그는 삼국지에 자주 이름이 거론되는 인물로, 동탁과 조조가 참모로 등용하려 했다고 한다. 조정의 제도와 칭호에 대하여 기록한 『독단(獨斷)』, 시문집 『채중랑집(蔡中郞集)』이 있다. 또 비백체(飛白體, 비로 쓸어내린 것처럼 붓끝이 잘게 갈라져 짙음과 옅음이 공존하는 서체)를 창시하였다.
04 조선후기 사회에서 ‘천제’는 천자 혹은 임금에게 주어진 특권이었다. 그래서 민간차원의 의례는 공표될 수도 없었고, 공식화될 수도 없었다. 이를 최종성은 ‘숨은 천제’라 표현하고 있다.(최종성, 『숨은 천제, 조선후기 산간제천 자료를 중심으로』, 한국종교학회,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