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순진리회의 목적은 무자기 정신개벽 지상신선실현 인간개조 지상천국건설 세계개벽이다. 그리고 대순진리회 수도인의 목적은 도통군자(道通君子)가 되는 것이다. 목적하는 바가 있다면 그것이 실재로 존재하는지, 존재한다면 그곳에 가는 경로는 어떻게 되는지 정확히 알고 가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대순진리회 수도인이 목적하는 도통은 실재로 있는지, 아직까지 대순진리회에서 도통을 한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도통이 있다는 근거를 어디에 두고 도통을 향한 수도를 하고 있는지 라는 질문은 중요하다. 증산께서 “도는 장차 금강산 일만이천 봉을 응기하여 일만이천의 도통군자로 창성하리라.”01고 하셨다. 그러므로 대순진리회에서 수도를 통해 도통을 하고자 한다면 먼저 증산이라는 분이 천지의 주인이시고 천지의 주인께서 도통이 있음을 말씀하신 것을 확실히 믿는 것이 우선시 되어야 할 것이다. 증산에 대한 믿음을 통해 도통이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면 종통을 확인하여 어디에 도통하는 법방(法方)이 있는지를 잘 살피는 것도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 할 것이다. 도통이 있다는 확신과 종통을 확인한 연후에는, 어떻게 수도를 해야 도통을 할 수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도전님께서 도통은 선후에 차등이 없고 오직 수도 여하에 달려있다고 말씀하셨기에 과연 대순진리회에서의 수도는 무엇을 말하는 것이며 정확하게 이를 파악하여, 바르게 수도했을 때 도통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도통에 대한 확신과 종통의 확인을 전제로 대순진리회에서 도통을 하기 위한 수도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Ⅱ.본론
대순진리회에서의 수도
대순진리회에서 수도하는 수도인의 목적은 삼계를 투명하고 삼라만상의 곡진이해(曲盡理解)에 무소불능(無所不能)한 경지인 도통이다. 그렇다면 대순진리회에서는 무엇을 수도라고 하는가? 수도란 구천상제님의 유지(遺志, 음양합덕, 신인조화, 해원상생, 도통진경)를 받들고, 도주님의 유법(遺法, 수도의 제(諸) 규정)을 따르며, 도전님의 유훈(遺訓)을 실천하는 일련의 모든 과정을 수도라 할 수 있다. 대순진리회 요람에는 “무자기(無自欺)를 근본(根本)으로 하여 인간 본래(人間本來)의 청정(淸淨)한 본질(本質)로 환원(還元)토록 수심연성(修心煉性)하고 세기연질(洗氣煉質)하여 음양합덕(陰陽合德) 신인조화(神人調化) 해원상생(解寃相生) 도통진경(道通眞境)의 대순진리(大巡眞理)를 면이수지(勉而修之)하고 성지우성(誠之又誠)하여 도즉아 아즉도(道卽我 我卽道)의 경지(境地)를 정각(正覺)하고 일단(一旦) 활연 관통(豁然 貫通)하면 삼계(三界)를 투명(透明)하고 삼라만상(森羅萬象)의 곡진이해(曲盡理解)에 무소불능(無所不能)하나니 이것이 영통(靈通)이며 도통(道通)인 것이다.”라고 하셨다. 여기서 청정한 본질이란 양심을 말한다. 마음은 일신의 주(主)이고 사람의 언어 행동은 마음의 표현이다. 그 마음에는 양심과 사심이 있고 양심은 천성 그대로의 본질이다. 즉 인성의 본질이자 천성인 양심을 되찾기에 전념(수심연성과 세기연질)하여 정직과 진실로써 일체의 죄악을 근절하는 것이 수도인 것이다. 이에 대하여 도전님께서는 “무자기를 근본으로 하여 올바른 사람, 즉 완전한 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완전한 도인이 되면 원래의 천성과 본성으로 돌아가 인간의 양심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욕심도 사심도 없으며 유리알 같이 깨끗하고 맑은 마음입니다. 이것이 바로 도통을 받을 수 있는 그릇이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수도한다는 것은 도통을 받을 수 있는 그릇을 만드는 것입니다.”라고 하셨다.02 다음으로 대순진리를 정각하는 부분이다. 대순진리를 면이수지하고 성지우성 하여야 도즉아 아즉도의 경지에 이르고 도즉아 아즉도의 경지에 이르러야 바르게 깨달을 수 있다는 말씀이다. 여기에서 도란 무엇인가를 먼저 살펴야 할 것이다. 물론 “도란 음양이며 음양이 이치이며, 이치는 곧 경위며 경위가 법이다”라고 하셨다. 그럼 대순진리를 도로 볼 수 있는가? 대순진리를 도로 본다면 도즉아 아즉도의 경지를 정각하는 부분에서 도란 대순진리를 말하고 도즉아 아즉도의 경지를 정각하는 것은 결국 대순진리를 정각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도전님께서 대순진리를 파악하는 부분에 대해서 “실력 있는 도인이란 상극에 빠진 이 세상을 구하시기 위하여 상제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펴놓으신 해원상생(解冤相生)과 보은상생(報恩相生)의 진리, 즉 상제님께서 대순하신 진리를 완전히 파악하여 성(誠), 경(敬), 신(信)으로 실천 수도하는 도인을 말합니다. 무릇 성이라 하는 것은 정성을 뜻하며, 경이라 하는 것은 공경을 말함이며, 신이라 하는 것은 믿음을 말하는 것으로, 믿음이 없으면 정성과 공경도 있을 수 없으며 안심(安心), 안신(安身)도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 공부는 몸과 마음이 안정되어야 하는 공부이니 먼저 상제님의 진리를 완전히 앎으로써 믿음이 확고해 질 것이며 안심, 안신이 될 것입니다. 이때 거짓이나 가면가식(假面假飾)은 있을 수 없게 되어 각자 스스로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지극한 정성과 공경으로 수도 생활을 하게 되며 안심, 안신으로 상제님을 모시게 되니 모두가 목적으로 하는 바의 소망을 이를 수 있는 것입니다. 농부가 땅에 씨를 뿌리는 것은 땅을 믿기 때문이며 가을이 올 줄 알기 때문인 것처럼 모든 일은 이 믿음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 확고한 믿음을 위해서는 진리 파악이 확실하게 이루어져야 하며 이를 위해서 끊임없이 배우는 노력이 필요한 때입니다. 잘못 알고 있는 것을 바르고 완전히 알도록 하여 마음속에 조그만 의혹도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도인들 상호 간에 토론회를 열어 서로 믿고 협동하는 마음으로 의사를 충분히 교환하여, 배우며 가르치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라고 하셨다.03 이상 요람과 도전님의 말씀을 정리해보면, 수도란 양심을 찾고 대순진리를 정각하는 데 있으며 이 두 가지 조건을 모두 갖추었을 때 도통에 이를 수 있다는 말씀이다. 결국 수심연성하고 세기연질 하여 양심을 찾고 면이수지 하고 성지우성 하여 대순진리를 정각하는 것이 곧 수도의 핵심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는 양심을 찾고 대순진리를 정각하기 위한 방법으로 수도에 핵심적인 네 가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네 가지 항목의 선정은 도인의 책무인 포덕에 대한 부분과 지침과 요람의 용례(用例)에서 수도에 관계된 부분을 기준으로 정했다. 첫째 “포덕”에 대해서 알아보고, 둘째 지침에 “수도는 인륜을 바로 행하고 도덕을 밝혀 나가는 일이다.”와 셋째 지침에 “체계질서를 바로 세우는 것이 도를 닦는 것이니, 경상애하(敬上愛下)의 융화로 단결하여야 한다.” 그리고 넷째 요람에 “수도는 공부와 수련과 평일기도와 주일기도로 구분한다.”에 대한 부분으로 각각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1) 수도(修道)란 포덕(布德)을 해나가는 것
도전님께서 “우리 도인들의 사업(事業)은 바로 포덕(布德)입니다. 포덕은 상제님의 덕화를 천하 만방에 널리 펼치는 일이며 포덕은 수도(修道)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의 수도는 포덕에서 시작됩니다. 포덕을 하기 위해 여러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고 여러 형태의 사람들과 부딪치면서 겪는 고통(苦痛)과 인내(忍耐) 속에서 우리의 마음이 연성(煉性)이 되는 것입니다. 주문만을 많이 읽고 마음만을 닦는다고 소원(所願)을 이룰 수는 없습니다. 포덕을 통해 나 자신이 연성(煉性) 되고 연질(煉質)이 되어야 운수를 받게 되며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습니다. 포덕사업을 하는 사람을 도(道)에서 일꾼이라 합니다. 일꾼은 모름지기 부지런하고 솔선수범(率先垂範)하며 고통을 끈기 있게 참아 포덕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 운수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을 도에서 성공(成功)했다고 하며 이 성공은 모두 포덕으로 이루어집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소원이 천하포덕에 있으므로 수도(修道)도 포덕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수도는 상제님의 덕화를 천하만방(天下萬方) 곳곳에 널리 펼치는 것이며, 포덕하고자 하는 상대에게 상제님의 덕화를 심어주는 것입니다. 포덕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정신통일(精神通一)이 되어 영(靈)이 맑아져야 합니다. 자나 깨나 항상 한 마음 한뜻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도인의 포덕하는 정신입니다. 포덕이란 상제님께서 천지신명(天地神明)들의 하소연에 따라 이 땅에 오셨고, 진멸지경(盡滅地境)에 빠진 인간과 신명을 구하셔서 영원한 복록(福祿)이 있는 후천선경(後天仙境)으로 갈 수 있도록 하셨다는 것과, 이에 맞추어 수도(修道) 함으로써 큰 운수(運驗)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천하창생(天下蒼生)에게 알리는 것입니다.”라고 하셨다. 04 도전님의 말씀을 따르면 포덕의 본질은 상제님의 사상을 널리 알리는 것이고 궁극의 목적은 포덕을 통해 나 자신이 연성(煉性) 되고 연질(煉質)이 되는 과정을 거쳐 도통을 하기 위한 그릇을 만드는 것이다. 도전님께서 포덕은 수도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 하셨다. 하지만 포덕의 목적이 수도와 궁극적으로 도통임을 망각하고 마치 호수를 늘리는 자체라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순진리회 수도인에게 포덕은 상제님의 사상을 널리 알려 공덕을 짓고 그 과정을 통해 나 자신이 연성과 연질이 될 수 있는 수도법이다. 그런데 일부의 수도인들은 포덕이라는 전체적인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는 우(愚)를 범하는 것이다. 그 결과 포덕을 하는 데 있어서 편법(便法)을 쓰거나 구차한 방법을 써서 포덕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행위는 덕화를 손상하여 대순진리회에 대한 이미지를 실추시켜 다른 방면의 포덕사업을 방해함으로써 종단 전체가 포덕에 어려움을 겪게 만드는 결과를 낳는다. 정당하게 대순진리(大巡眞理)를 알려서, 상제님을 믿고 수도에 참뜻을 가진 사람에게 입도(入道)를 권해야 한다. 포덕 숫자나 늘리려고 없는 말을 만들어 하게 되어 사회에 커다란 누를 끼치게 되고 타인(他人)들로부터 지탄(指彈)의 대상된다. 그리고 포덕하는 과정에서 시한부(時限附)의 이야기를 하여도 안 되며, 시대(時代)를 악용(惡用)하여도 안 되고 상제님의 진리(眞理)로써 상대방에게 상제님을 믿게 만들어 입도시켜야 할 것이다. 또한 도전님께서는 “포덕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정신통일(精神通一)이 되어 영(靈)이 맑아져야 합니다.”라고 말씀하셨다. 포덕을 하기 위해서는 순결한 마음으로 활인공덕(活人功德)을 펴려는 자세로 쉼과 틈이 없이 정성을 드리는 시간이 지속되면 자연스럽게 정신이 통일되고 영이 맑아지게 된다. 포덕을 위해 꾸준한 정성을 드리는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수도가 되고 포덕의 결과도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포덕을 하고자 한다면 누군가의 동기부여 보다는 스스로 마음을 일으켜 틈과 쉼이 없는 정성을 다하면, 주변의 사람들의 인망(人望)에 오르고 후에 겁액(劫厄)을 넘는 과정을 거쳐 뜻한 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포덕을 하기 위해서는 선후각 사이의 통심정(通心情)이 필요하다. 대의(大義)를 위해 선후각 간에 융화단결을 이룬다면 즉, 선각과 나와 후각이 상제님의 뜻을 받들기 위해 서로서로 마음이 통한다면 놀라운 결과를 이끌어 낼 수도 있다. 한 사람의 힘이 10이라면 선각과 내가 마음이 합하면 100이 되고 선각과 나와 후각의 마음이 합하면 1000이라는 놀라운 힘이 발휘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힘으로 포덕을 하는 것이 아니고 양위 상제님과 도전님의 기운을 모시고 선후각 사이에 단결하는 힘으로 포덕을 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이상의 내용을 정리해 보면 포덕을 하려는 사람은 포덕을 왜 하려고 하는지부터 생각하고 순결한 마음으로 천지공정에 참여하여 덕화를 선양하고 포덕 대상을 위한 진정한 마음으로 포덕에 임하고 혹여나 나의 행동으로 덕화손상을 일으키지는 않는지 잘 살피고 빨리 일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을 경계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포덕의 본질은 상제님의 사상을 널리 알리는 것이고 궁극적 목적은 포덕을 통해 나 자신이 연성(煉性) 되고 연질(煉質)이 되는 수도의 과정을 거쳐 도통을 받기 위한 그릇을 만드는 과정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2) 수도는 인륜(人倫)을 바로 행하고 도덕을 밝혀 나가는 일
도전님께서 “수도(修道)란 인륜(人倫)을 바로 행하고 도덕을 밝혀 나가는 일인데 이것을 어기면 도통을 받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셨다.05 그저 기도만 모시며 기다린다고 수도가 되는 것이 아니고, 때와 장소와 상대에 따라서 자신이 지켜야 할 도리를 다해야 한다.06 여기서 도리란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하는 바른길로, 이것은 군신(君臣)·부자(父子)·부부(夫婦)·장유(長幼)·붕우(朋友) 등의 도덕적 질서를 말한다. 지금의 세상에서 자신의 도리를 다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것이지만, 자신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 수도의 중요한 부분이 된다. 가정에서 남편은 남편의 도리를, 아내는 아내의 도리를, 부모는 부모의 도리를, 자식은 자식의 도리를 다하여 가족 간에 화목을 이루어야 한다. 『전경』을 살펴보면, “상제께서 박 공우가 아내와 다투고 구릿골을 찾아왔기에 별안간 꾸짖으시기를 ‘나는 독하면 천하의 독을 다 가졌고 선하면 천하의 선을 다 가졌노라. 네가 어찌 내 앞에 있으면서 그런 참되지 못한 행위를 하느뇨. 이제 천지신명이 운수자리를 찾아서 각 사람과 각 가정을 드나들면서 기국을 시험하리라. 성질이 너그럽지 못하여 가정에 화기를 잃으면 신명들이 비웃고 큰일을 맡기지 못할 기국이라 하여 서로 이끌고 떠나가리니 일에 뜻하는 자가 한시라도 어찌 감히 생각을 소홀히 하리오’. 하셨도다.”07 도전님께서도 “가정(家庭)에서는 항상 화목해야 하며 불화(不和)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도인들은 가정 화목으로써 이웃의 모범(模範)이 되어야 하며 그렇게 되면 자연히 상제님의 덕화가 선양(宣揚)될 수 있습니다. 도인들의 가정에서 불화가 생기면 그것이 종단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일일지라도 밖에서는 종단 전체를 비방(誹謗)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도인들은 도(道)를 믿지 않는 이웃 사람들에게 더욱 모범을 보여 신뢰감(信賴感)을 주어야 합니다.”라고 하셨다.08 더불어 “앞으로 가정 화목이 이루어져야, 때가 오면 운수를 받게 될 것입니다. 임원들은 도인 한 사람 한 사람을 잘 살펴서 화목한 가정이 이루어지도록 보살펴 주어야 하겠습니다. ”라고 가정 화목을 강조하셨습니다.09 상제님과 도전님께서 화목한 가정을 강조하신 것은 한 가정을 잘 이끌어 가는 사람은 한 나라도 잘 이끌어 갈 수도 있을 것으로 보셨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러한 근거는 『맹자(孟子)·만장편(萬章篇)』에서 순임금에 대한 기록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데, 여기에는 고집불통인 아버지 고수, 수다스러운 계모, 사사건건 형인 순(舜)을 죽이려고만 하는 배다른 동생 상(象)에 관한 이야기와 요임금이 순임금이 쓸 만한 사람인지 알아보기 위해 자기의 아홉 아들과 두 딸 아황(娥皇)·여영(女英)을 순에게 보내어 사람 됨됨이를 테스트해보았다는 고사가 실려 있다. 그 내용을 보면 요임금이 순을 살펴본즉 뛰어난 인재임을 알 수 있었지만, 우선 순을 시험해 보기 위하여 두 딸인 아황, 여영을 순에게 시집 보내 이들 부부 사이를 관찰하였다. 그러자 그녀들은 부도(婦道)를 다하여 부부의 사이에 흠잡을 것 없이 원만하였다. 군자의 도는 부부로부터 시작된다는 말이 있듯이 이들 부부 사이를 본 요임금은 순의 능력을 인정하여 비로소 안심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의 『전경』에도 "단주가 불초하다 하여 요가 순(舜)에게 두 딸을 주고 천하를 전하니 단주는 원을 품고 마침내 순을 창오(蒼梧)에서 붕(崩)케 하고 두 왕비를 소상강(瀟湘江)에 빠져 죽게 하였도다."라는 내용을 미루어 짐작하면 순임금은 죽을 때까지 두 왕비와 죽음을 함께할 정도의 부부애(夫婦愛)를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순은 제위에 오른 지 39년 되던 해 남쪽 나라들을 순행하다가 창오에서 병사하였다. 순임금을 따라 상수 부근까지 와 있던 두 왕비는 갑작스러운 흉보에 비탄을 못 이겨 눈물을 흘렸는데 그 눈물이 옆에 있는 대나무에 떨어져 얼룩진 반점의 흔적을 남겼다. 그 후부터 소상강 부근에서는 반점이 있는 반죽이 있는데 이것은 그녀들의 피눈물이 변한 것이라고 한다. 눈물을 흘린 두 왕비는 이윽고 세상을 떠난 남편 순임금에 대한 흠모의 정을 누를 길이 없어 둘이서 얼싸안고 소상강 깊은 물에 몸을 던져 생애를 마쳤다는 내용이 전해져 오고 있다. 순임금과 두 왕비의 이야기는 신화적 색채가 짙어 그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어려우나 어쨌든 순임금은 가정을 잘 이끌었던 것으로 보이고 그로 인해 한 나라를 이끌 수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고 나아가 태평성대(太平聖代)를 이룬 인물이 된 것은 사실로 보인다. 여기에서 우리는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의 기본이 제가(齊家)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상의 내용을 정리하면 수도(修道)란 인륜(人倫)을 바로 행하고 도덕을 밝혀 나아가고 때와 장소와 상대에 따라서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이 해야 할 도리를 다해야 하며, 이것을 어기면 도통을 받기 어렵다는 것이다. 도전님께서 이러한 말씀을 하신 배경은 상제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에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상제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상도(常道)를 잃어 충효열(忠孝烈)이 무너져서 무도병(無道病)에 걸린 인간 세상을 구하시고자 오셨는데 상제님을 따른다는 사람이 그분의 뜻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행위를 하고서 도통을 하기 위해 수도를 한다면 이 얼마나 모순된 행동인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3) 체계질서를 바로 세우는 것이 도를 닦는 것
『대순지침』을 보면 “체계질서를 바로 세우는 것이 도를 닦는 것이니, 경상애하(敬上愛下)의 융화로 단결하여야 한다.”고 하셨다. 체계질서를 바로 세운다는 말은 도인들 상호 간에 융화단결이 잘 이루어짐을 말한다. 융화단결이 잘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선후각 사이에 서로서로 고마운 존재임을 인식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도전님께서 “ ‘임원은 도인이 없었으면 어떻게 임원이 되었을까?’ 도인들은 ‘임원이 없었다면, 내가 도를 몰랐을 것이다.’라고 생각한다면, 서로가 고맙고 공경심이 절로 생길 것입니다. 서로가 고마워할 때 서로의 위치가 바로 서고, 권위가 생기며 화목해질 것입니다. 화목이란 서로의 뜻이 상통(相通)하고 정답다는 것입니다. 화목함으로써 인망(人望)을 얻게 되고, 덕망(德望)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상제님께서는 뱀도 인망을 얻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인망을 얻어야 신망에도 오를 수 있으니 인망과 신망(神望)이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상제님께서도 ‘도가(道家)나 일반 가정에서 화기(和氣)를 잃으면 신명(神明)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10 라고 하셨다. 체계질서는 윗사람의 지시를 잘 따르는 것만을 말하지 않는다. 윗사람의 지시라도 이치에 어긋난다고 생각되면 다시 물을 수도 있다. 도전님께서 말씀하신 체계질서는 융화로 단결하고 화목한 선후각의 관계를 유지하고 이를 바탕으로 대순진리회의 목적을 달성하도록 노력할 것을 말씀하신 것으로 생각한다. 체계질서를 잘 지키는 일은 무척이나 어려운 부분이다. 한날한시에 난 손가락도 길고 짧은 손가락이 있듯이 나와 성격과 가치관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 한뜻으로 공동의 목표를 향해 함께 가는 길에 얼마나 사연이 많겠는가? 부족해 보이는 선각을 잘 모시고 잘난 척하는 후각을 감싸 안으며 시기 질투하는 동료를 배려하면서 가는 길이 말처럼 쉽지 않으므로 체계질서를 지키며 화합하려는 과정을 통해 진정한 수도의 길을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수도인은 여러 가지 곤욕스러운 일이나 잘 풀리지 않는 일도 인내(忍耐)하면서 극복(克服)하는 것이 수도(修道)의 한 과정이다. 선각이나 후각이 잘못할지라도 내 자신이 잘 극복하고 이해(理解)하면 좋은 결과(結果)로 돌아온다. 이에 대해 도전님께서 “내 자신이 수도하고 도를 믿는 것은 다른 사람이 잘못하는 것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수도하는 사람에게 인사(人事)에 있어 불화(不和)라는 것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도(道)란 것은 내가 나 자신의 완성(完成)을 위해서 믿는 것이므로 어렵더라도 잘 극복하면 진강(眞降)을 받을 수 있고, 잘못하게 되면 허강(虛降)이 내려 몸과 마음을 망치게 됩니다.”하셨다.11 도전님의 말씀처럼 도를 닦는 사람은 원인과 결과를 자신에게서 찾아야 한다. 어떤 일에도 ‘탓’을 밖으로 돌리지 말고,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고 편안할 수 있도록 자기 자신을 개조(改造)해야 한다. 현재 내가 어떠한 어려움을 겪는 이유가 어디에 있든 자신을 돌아보라고 하셨다. 그리고 곤욕스러운 일에 처했을 때 수도인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을 상제님의 말씀 중에 찾아보자. 먼저 자신에게 잘못이 없는 김형렬의 경우를 보면, “김 형렬이 출타하였다가 집에 돌아오는 길에 예수교 신자 김 중구(金重九)가 술이 만취되어 김 형렬을 붙들고 혹독하게 능욕하는지라. 형렬이 심한 곤욕을 겪고 돌아와서 상제께 사실을 아뢰니 상제께서 형렬에게 ‘청수를 떠 놓고 네 허물을 살펴 뉘우치라.’ 형렬이 명하신 대로 시행하였도다. 그 후 김 중구는 한때 병으로 인해서 사경에 헤매었다고 하느니라. 이 소식을 형렬로부터 들으시고 상제께서 다시 그에게 충고하시기를 ‘금후에 그런 일이 있거든 상대방을 원망하기에 앞서 먼저 네 몸을 살피는 것을 잊지 말지어다. 만일 허물이 네게 있을 때에는 그 허물이 다 풀릴 것이오 허물이 네게 없을 때에는 그 독기가 본처로 돌아가리라’ 하셨도다.”12 다음은 잘못이 자신에게 있는 박공우의 경우를 살펴보면, “상제께서 천원(川原)장에서 예수교 사람과 다투다가 큰 돌에 맞아 가슴뼈가 상하여 수십일 동안 치료를 받으며 크게 고통하는 공우를 보시고 가라사대 ‘너도 전에 남의 가슴을 쳐서 사경에 이르게 한 일이 있으니 그 일을 생각하여 뉘우치라. 또 네가 완쾌된 후에 가해자를 찾아가 죽이려고 생각하나 네가 전에 상해한 자가 이제 너에게 상해를 입힌 측에 붙어 갚는 것이니 오히려 그만하기 다행이라. 내 마음을 스스로 잘 풀어 가해자를 은인과 같이 생각하라. 그러면 곧 나으리라.’ 공우가 크게 감복하여 가해자를 미워하는 마음을 풀고 후일에 만나면 반드시 잘 대접할 것을 생각하니라. 수일 후에 천원 예수교회에 열두 고을 목사가 모여서 대 전도회를 연다는 말이 들려 상제께서 가라사대 ‘네 상처를 낫게 하기 위하여 열 두 고을 목사가 움직였노라’ 하시니라. 그 후에 상처가 완전히 나았도다.”13 위의 내용을 살펴보면 김형렬은 자신의 잘못이 없는데 심한 곤욕을 겪는 경우이다. 상제님께서는 이러한 상황에서도 “상대방을 원망하기에 앞서 먼저 네 몸을 살피는 것을 잊지 말라 하셨고 자신에게 잘못이 없으면 그 독기가 본처로 돌아간다고 하셨다.” 그리고 공우에게 “네가 전에 상해한 자가 이제 너에게 상해를 입힌 측에 붙어 갚는 것이니 오히려 그만하기 다행이니 내 마음을 스스로 잘 풀어 가해자를 은인과 같이 생각해야 빨리 낳는다.”고 하셨다. 우리는 김형렬과 박공우의 두 사례에서 보듯이 현재 내가 어떠한 어려움을 겪거든 상대나 그 상황을 원망하지 말고 우선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를 가져야 할 것이다. 그 탓을 밖으로 돌리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 되고 말 것이다. 지금 내게 일어나는 힘들고 괴로운 일들의 이유가 어디에 있든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고 자신을 단련(鍛鍊)하여 그러한 일에 꿋꿋하게 맞서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수도의 과정에는 힘들고 괴롭고 억울한 일들이 여러 원인에 의해서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어려움의 과정을 겪는 것을 자신을 단련하는 과정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어려움을 겪는 모든 외부적인 환경을 바꿀 수 없으므로 그 원인을 ‘나’ 안에서 찾아서 해결하여야 한다. 가령 예를 들면 유리컵은 망치로 때리면 깨진다. 높은 곳에서 떨어뜨려도 깨지고, 단단한 벽에 던져도 깨지고, 유리컵이 깨지는 조건은 무수히 많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물건이 망치로 때리거나 떨어뜨린다고 깨지는 것은 아니다. 유리컵은 그 자체에 깨지는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컵을 깨지지 않게 하려고 그 원인을 밖에서 찾아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언제 어떤 충격을 받아 깨질지 예측할 수도 헤아릴 수도 없고, 설사 다 헤아린다고 해도 그 모든 원인을 제거하기는 불가능하다. 컵이 깨질 수 있는 모든 외부적인 원인을 제거하기보다는 컵의 재질을 바꿔서 어떤 외부의 충격에도 깨지지 않는 재질로 만들면 될 것이다. 그리고 수도의 과정에서 찾아오는 어려움에 대해 상제님께서는 “天將降大任於斯人也 必先勞其心志 苦其筋骨 餓其體膚 窮乏其贐行 拂亂其所爲 是故 動心忍性 增益其所不能.”란14 맹자의 한 구절을 일러주셨다. 훌륭한 선장은 폭풍우 치는 바다에서 길러진다는15 말이 있듯이 자신에게 잘못이 없는데도 어려움을 겪는 것은 장차 하늘이 크게 쓰기 위함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이상에서 보듯이 상제님과 도전님의 말씀에 따라 우리는 어떤 일에도 ‘탓’을 밖으로 돌리지 말고 원인과 해결을 자신에게서 찾아야 하며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고 편안할 수 있도록 자기 자신을 개조(改造)해야 한다. “천지종용지사(天地從容之事)도 자아유지(自我由之)하고 천지분란지사(天地紛亂之事)도 자아유지(自我由之)”16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수도하는 사람은 주변의 상황에 불평과 불만을 품기보다는 대안을 제시하고, 남의 허물은 보지 말고 자기 허물은 추호도 용서치 말아야 하며, 어떠한 일에도 안심(安心) 안신(安身) 할 수 있도록 자신을 개조(改造)하는 것이 최상의 수도의 길이 될 것이다. 그리고 체계질서를 지켜 융화단결을 이루어 덕화를 선양하고자 한다면 지난날의 잘못에 연연하는 것은 화합에 큰 장애가 된다. 수도인 중 일부는 선각이나 주변의 다른 사람의 잘못된 행동을 핑계 삼아 자신의 할 도리를 다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이는 선각이 밉다고 상제님께 모시는 성을 모시지 않겠다는 논리와 같다. 인숙무죄(人孰無罪)요 개과(改過)하면 족하다 하신 도주님의 말씀이 있다. 선각과 후각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잘못을 빨리 용서하고 화합하는 방안을 모색하여 융화단결로 덕화선양에 힘써야 할 것이다. 누군가를 용서하는 일은 상대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일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만일 다른 이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마치 쥐약은 자기가 먹고 상대가 죽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 할 것이다.” 그러면 상대는 안 죽고 자기의 몸과 운명을 그르치게 될 것이다. 상제님께서 차경석이 과거의 잘못을 생각하고 심히 근심하는 것을 아시고 “모든 허물을 낱낱이 생각하여 풀어 버리라고 하였는데 어찌 지금까지 남겨 두었느냐. 금후 다시 생각지 말라.”하셨고,17 허물이 있거든 자신의 마음속으로 풀고, 만일 풀지 않고 남겨두면 몸과 운명을 그르친다고 하셨다.18 상제님께서는 자신이 지은 허물에 대해서도 남겨두지 말고 다 풀라고 하셨고, 남의 누행(陋行)에 대하여 말하지 말라고 하셨다.19 그러므로 도통에 목적을 두는 사람은 선각이나 후각의 누행이나 부족한 점을 잘 보완하여 방면의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사람이라 하겠다. 손오공이란 영화를 보면 손오공은 삼장을 모시고 천축국에 불경을 구하러 가는 과정에 손오공은 부족해 보이는 삼장을 잘 모시고 불경을 구해오고 그 공로를 인정받게 된다. 우리의 수도 과정에서도 부족해 보일 수 있는 선각자나 후각자는 자신의 관점에서만 부족해 보일 수도 있다. 만에 하나 부족한 선각이나 후각을 만났다 하더라도, 좋은 선후각 만나서 수도하는 사람과 어려운 선후각 만나서 많은 역경 속에서 고생하며 수도하는 사람의 입장은 두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그러한 사람을 만나는 이유의 하나는 업장이 두터워서고, 다른 관점은 그가 역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 크게 운수를 받기 위함일 수도 있다. 나아가 선각이나 후각의 무능함을 손가락질하기보다 부족한 선후각일지라도 잘 보필하고 포용할 때 나의 후각도 나의 모습을 보고 배워갈 것이다. 그리고 누군들 관절염이라는 병을 얻고 싶은 사람이 있겠는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병을 얻게 된다. 마찬가지로 누구나 존경받는 선각이 되고 인정받는 후각이 되고 싶지만 타고난 성품을 어찌하겠는가? 선후각의 허물을 동업중생(同業衆生)20의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즉, 우리의 수도는 인중(人衆)수도이다. 결과적으로 내 주변에 모든 인연은 하늘이 주신 네트워크이다. 모든 사람이 스승이고 이를 통해 수도하라는 뜻이다. 이를 거부하는 것은 수도를 거부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수도는 후천의 지도자가 되기 위한 연수(硏修)과정이라 할 수 있다. 후천의 지도자가 될 사람이 자신을 도문에 인도하고 같이 상제님의 뜻을 받들고자 대순진리에 동귀하여 동고동락(同苦同樂)하는 선각 마음 하나 헤아리지 못한다면 가슴 아픈 일이라 아니 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후각 한 사람 품지 못하는 간장 종지 같은 마음으로 어찌 도통을 하고 후천의 지도자가 될 수 있겠는가? 사람은 소우주, 소천지라는 말이 있다. 한 사람의 마음은 우주와도 같다는 뜻이다. 누군가 한 사람의 마음을 얻은 사람은 그 마음에 우주를 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선각과 마음을 통하는 것은 실로 위대한 일이다. 더불어 마음으로 따르는 후각을 얻는다면 우주를 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마음 자세로 수도하는 것을 진정한 체계질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체계에 따라 구분을 한다면 상급임원은 머리요, 중간임원은 몸통에 해당하고, 선.교무는 손과 발이라 할 수 있다. 뇌나 장기, 팔, 다리에 장애를 가진 사람이 어떤 일을 하는 데 장애가 뒤따르듯이 체계에 문제가 있는 방면은 화합단결이 잘 된 방면보다 어떠한 일을 하는 데 장애가 따르게 될 것은 당연해 보인다. 이상의 내용을 정리하면 체계질서를 세운다는 것은 윗사람을 공경하고 아랫사람을 사랑하며 서로가 화합하여 단결된 힘으로 상제님의 뜻을 받드는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수도가 되고 체계가 세워짐을 살펴보았다. 그래서 도전님께서 체계질서를 잘 지키는 것이 수도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사료된다. 서로 좋아 결혼한 사람도 이혼하는 경우가 허다한 세상에 도가(道家)를 이루는 구성원은 나와 성격과 가치관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 공동의 목표를 향해 뜻을 같이 하는 일은 사연 많고 힘든 일임에 틀림없다. 선각을 잘 모시고 후각을 감싸 안으며 동료를 배려하면서 가는 길이 말처럼 쉽지 않겠지만, 체계질서를 지키며 화합하려는 과정을 통해 진정한 수도의 길을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수도(修道)는 심신(心身)을 침잠추밀(沈潛樞密)하여 대월(對越) 상제(上帝)의 영시(詠詩)의 정신(精神)을 단전(丹田)에 연마(鍊磨)하여 영통(靈通)의 통일(統一)을 목적(目的)으로 공경(恭敬)하고 정성(精誠)하는 일념(一念)을 끊임없이 생각(生覺)하고 지성(至誠)으로 소정(所定)의 주문(呪文)을 봉송(奉送)한다. 수도(修道)는 공부(工部)와 수련(修鍊)과 평일기도(平日祈禱)와 주일기도(主日祈禱)로 구분(區分)한다. 공부(工部)...일정(一定)한 장소(場所)에서 지정(指定)된 방법(方法)으로 지정(指定)된 시간(時間)에 주문(呪文)을 송독(誦讀)한다.”라고 하셨다.21 여기서 기도와 공부에 대한 도전님의 말씀을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기도는, 진실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면 참된 믿음이 되며 가면 가식은 거짓된 믿음이 된다. 진실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는 참된 정성이 있는 곳에 상제님의 하감(下鑑)하심이 있는 것이며, 천지신명의 보살핌이 있다고 하셨다. 가정이나 회관, 회실에서 주일기도를 모심에 있어서도 철저를 기하고, 직장에 다니거나 외출을 하거나 바쁜 일을 하는 등 여건이 여의치 못한 경우에는 그 시간을 잘 기억하여 마음속으로 심고를 드리고 집에 돌아온 후 보충으로 기도를 모셔야 한다. 사정이 허락지 않아 기도 의식을 행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마음속으로 상제님께 발원함도 기도를 모심과 같다. 시간을 잊지 않고 심고를 드리는 그 자체가 상제님을 항상 잊지 않고 정성을 다하여 모시는 지극한 영시(永侍)의 정신이니 기도를 모신 것과 다를 바 없다 하셨다.22 그리고 공부에 대한 도전님의 말씀은, “도장(道場)은 정결(淨潔)하고 신성(神聖)한 곳이며 양위 상제(兩位上帝)님을 봉안하고 천지신명(天地神明)이 가득한 신성한 성지(聖地)이고, 생명보다 더 소중한 수도공부를 하는 곳이다. 도장 내에서는 물론, 어느 곳에서도 마음을 속일 곳이 없습니다. 안심, 안신(安心 安身)하고 수도에 임하기 위해 우리는 도장(道場)을 수호(守護)하고 있습니다. 수호하는 목적은 도인들의 수도, 공부에 만전(萬全)을 기하는데 있습니다.”라고 하셨다.23 신성한 성지(聖地)인 본부도장에서 생명보다 소중한 시학(侍學)·시법(侍法) 공부가 행해지고 있다.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그 공부가 행해질 수는 없다. 이와 관련해 『대순진리회요람』 수도(修道)편 중 공부(工夫)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면, “일정(一定)한 장소(場所)에서 지정(指定)된 방법(方法)으로 지정(指定)된 시간(時間)에 주문(呪文)을 송독(誦讀)한다.”라고 되어 있다. 여기서 ‘一定’이란 어느 하나로 정해져 있음을 뜻하는 말인데, 이는 곧 시학 시법 공부가 본부도장의 시학원과 시법원 외의 다른 어느 장소에서도 행해질 수 없음을 분명하게 밝혀 놓으신 것이다. 그런데 요즘 종단을 이탈한 세력들이 시학 시법 공부를 돌린다는 허무맹랑한 말을 하고 다닌다. 이러한 말을 하는 사람이나 그 말을 듣고 따르는 사람들은 대순진리에 대한 정각은 물론이고 요람의 문구도 바르게 해석하지 못하는 우(愚)를 범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위의 내용을 정리하면, 기도를 모시는 것과, 시학·시법 공부를 하는 것, 도인들의 수도와 공부에 만전을 기하기 위해 도장 수호를 서는 것이 수도의 한 가지임을 알 수 있다.
Ⅲ. 결론
지금까지 대순진리회에서 수도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대순진리회에서 수도는 수심연성하고 세기연질하여 양심을 찾고 면이수지하고 성지우성하여 대순진리를 정각하는 것이 곧 수도의 핵심이고 양심을 찾고 대순진리를 정각할 때 도통에 이를 수 있음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양심을 찾고 대순진리를 정각하기 위한 핵심적인 수행 네 가지를 살펴보았다. 그 첫째로 포덕(布德)은 상제님의 덕화를 천하 만방에 널리 펼치는 일이며 포덕은 수도(修道)에 있어 가장 중요한 사실임을 확인하였다. 둘째는 인륜을 바로 행하고 도덕을 밝혀 나가는 것인데 이는 인간이 행해야 할 마땅한 도리(道理)가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을 실천하는 도덕적인 사람에게 도통이 주어짐을 알았다. 그리고 셋째는 체계질서를 바로 세우는 것으로 선후각 사이에 통심정을 이루고 융화단결하여 체계질서를 바로 세우는 것이 곧 수도임을 확인하였다. 넷째 공부와 수련과 평일기도와 주일기도로 우리의 생명과 같은 공부와 기도의 소중함과 수호의 중요성을 알았다. 이상의 내용을 모두 완벽하게 실천 수행하는 사람에게만 도통이 주어진다면 과연 몇 명이나 도통을 받을 수 있을까? 우리는 완벽하게 실천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선을 다하는 자세로 수도에 임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목표를 정하지 못하거나 낮게 잡는 것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미켈란젤로는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은 목표를 높게 정하고 이루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목표를 낮게 잡고 그것에 안주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자신은 재주가 둔박(鈍朴)하다고, 과거에 지은 죄가 커서, 도에 공헌한 게 없다고, 포덕사업을 많이 못 했다는 등의 이유로 자신의 꿈을 포기하거나 낮게 잡아서는 안 될 것이다. 수도하는 사람이 수도에 대한 열정이 사라진다면 가슴 아픈 현실이 될 것이다. 자신에게 허물이나 부족한 점이 있을지라도 이제부터라도 새로운 마음으로 수도에 정진하면 반드시 그 뜻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상제님께서 남은 복이 크고 일심을 가지면 하늘도 두려워한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먼저 도인의 책무인 포덕에서부터 수도를 실천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여기서 광의(廣義)의 포덕은 누군가를 입도를 시키는 것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덕화를 선양하는 것이 곧 포덕이요, 덕(德)은 음덕(陰德)이 크다고 하셨다. 그리고 자신의 상황에 맞게 열정을 가지고 포덕에 참여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탁명(託名)24이나 하여두는 사람이 운수가 있을지 생각해볼 문제이다. 그리고 도전님께서 계획은 운수가 저 멀리 있는 것처럼 세우고 행동은 내일 운수가 올 것처럼 하라고 말씀하셨다. 지금까지 대순진리회에서 수도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이제 우리는 수도의 궁극적인 목적인 도통을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목표들을 설정하고 실천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천지대도를 열어 주신 상제님께 보은하는 길이요, 60년을 공(功)에 공을 드려 자손을 타내신 조상님에 대한 보은의 길이 될 것이다. 자신의 재주가 둔박함을 탓하지 말 것이며, 안 되리라는 생각을 버리고, 일심을 가지면 지체 없이 베풀어 주신다는 상제님의 말씀을 믿고 나야가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에 길은 마음먹으면 나타나고 실현되는 길이기 때문이다.
01 예시 45절 02 1989년 3월 훈시 03 1986년 4월 16일 훈시 04 95년 2월 5일 훈시. 05 『대순지침』, 37쪽. 06 86년10월 훈시 07 교법 1장 42절. 08 88년5월 훈시 09 87년4월 훈시 10 86년10월 훈시 11 88년5월 훈시 12 교법 2장 28절 13 교법 3장 12절 14 행록 3장 50절 하늘이 장차 사람에게 큰 임무를 내리려 할 때에, 반드시 그의 마음과 뜻을 괴롭게 하며, 근육과 뼈를 수고롭게 하며 육체를 굶주리게 하고, 궁핍하게 하여 실행할 때에는 하는 일들을 불란스럽게 하나니 이것은 마음을 움직이고 자기의 성질을 참아서 그가 해내지 못했던 일들을 더 많이 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이다. 15 김정섭 『행복한 마음』 김영사 2000년 499p 16 교법 3장 29절 천지가 따르는 일도 자신에게서 비롯되고 천지가 어그러지고 헝클어짐도 자신에게서 비롯된다. 17 교법 1장 37절 18 교법 2장16절 19 교법1장60절 20 같은 업을 가진 중생 21 대순진리회 요람 17쪽 22 86년4월16일 훈시 23 93년2월4일 훈시 24 무슨 좋은 일이나 있을까 하여 이름을 걸어 놓는 일을 이르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