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편삼절은 『사기(史記)』 「공자세가(孔子世家)」에 있는 말로 가죽으로 맨 책 끈이 세 번이나 닳아 끊어진 것을 의미한다. 공자는 만년에 『주역』01을 좋아해서 끊임없이 읽어 대나무 쪽의 책을 엮은 가죽 끈이 세 번이나 끊어졌다고 한데서 나온 말이다. 공자 같은 성인도 학문연구를 위해서는 피나는 노력을 해야만 했다는 예로 이 말이 인용되기도 하고, ‘학문에는 왕도가 없다’는 말이나 ‘천재는 99%의 노력과 1%의 영감으로 이루어진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공자는 스스로를 평하기를 “나는 발분(發憤)하여 밥을 먹는 것도 잊고, 즐거움으로 근심마져 잊은 채, 세월이 흘러 몸이 늙어 가는 것조차 모른다.”02고 했다. 공자는 또 음악을 좋아 했는데, 제나라로 가서 소(韶)라는 음악을 들었을 때는 석 달 동안 고기 맛을 모를 정도로 열중한 끝에, “음악을 만든 것이 이러한 경지에 이를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03고 했다. 따라서 이글은 공자가 무엇이든 배우고자 하면 정수에 이를 때 까지 한 순간도 거기에서 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잘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즐기지 않으면 불가능한데, 즐긴다는 것은 배움의 대상과 하나가 되어 마음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구나 성인의 말씀은 그 정수를 가늠하기가 어렵다. 성인의 말씀이 담긴 책은 성인의 마음이 실려 있는 것으로, 단지 몇 번 읽어 서는 성인의 깊은 마음과 진리를 파악 할 수 없다. 읽고 또 읽기를 수없이 반복하여야만 비로소 나의 마음의 눈이 열려 성인의 심법에 도달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전경』은 상제님께서 우리에게 남기신 말씀이 실려 있는 책이고, 서전 서문은 요순우왕의 심법이 담겨 있는 글이다. 이와 같은 경전이나 서물(書物)은 상제님과 성인의 마음이 담겨 있는 것으로 끊임없이 되풀이하여 습득 해야 비로소 마음이 밝아져 성인의 심법을 가늠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상제님께서는 서전 서문을 많이 읽으면 도에 통하고, 대학상장을 되풀이 하여 읽으면 활연 관통한다고 하셨다. 그러나 막상 서전 서문이나 『전경』의 교법을 몇 번 읽으면 머리에 그 기억들이 남아 이미 다 알고있는 양 착각에 빠져 더 이상 되풀이 하여 읽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성인의 글은 화려한 문장의 색채를 구하지 않는 것으로 아주 평이하고 간결한 문체로 쓰여있다고 하여 심오한 진리가 깃들어 있음을 간과하여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공자는 『주역』을 단순히 머리로만 이해하기 위해 보지는 않았다. 이해의 단계를 넘어 성인이 남긴 작품과 하나가 되고 이를 심법으로 체득하기 위해 수 없이 보았던 것이다. 어쨌든 공자의 위대함은 이와 같은 피나는 노력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이처럼 도통을 바라보는 수도인들도 양위 상제님과 도전님의 말씀이 담긴 글을 수없이 읽어 마음에 새기고 이를 실천해 나간다면 반드시 대순진리를 정각(正覺)하는 날이 올 것이라 생각한다.
01 공자 당시의 주역은 경(經)에 해당하는 부분만 존재했을 것이라 추정된다. 전(傳)은 후대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됨. 02 『논어』 「술이편」 18;子曰 “女奚不曰 其爲人也 發憤忘食樂以忘憂 不知老之將至云爾.” 03 『논어』「술이편」 13;“子在濟聞韶 三月不知肉味 曰 不圖爲樂之至於斯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