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천사거리에서 고부 방향으로 가다보면 동학농민혁명기념관으로 가는 도로가 나온다. 이 도로에 들어서면 멀리 송전탑이 보이는데, 이 탑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유왕골이 있고, 오른쪽에는 배장골이 있다. 유왕골과 배장골은 상제님께서 강세하실 당시에는 고부군 우덕면(古阜郡優德面)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정읍군 덕천면이 되었다. 현재 유왕골과 배장골은 각각 신월리(新月里)와 우덕리에 속해 있다.
유왕골은 시루산 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현재 자동차 전용 도로가 가로질러 지나가며, 골짜기 안쪽으로부터 축사들이 마치 계단처럼 층층이 들어서 있다. 유왕(留王)의 한자를 풀어 보면 ‘왕이 머물며 다스린다’는 뜻이다. ‘장군들이 (왕을 향해) 절을 한다’는 뜻을 가진 배장(拜將)골과 짝을 이루고 있다.
▲ 유왕골과 배장골의 항공사진 (출처: 다음지도)
▲ 유왕골 터
배장골은 시루봉과 매봉 사이에 있는 골짜기인데, 골짜기를 따라 계단식 논으로 되어 있다. 배장골을 바라보니 바람이 부는 대로 벼들이 흔들거리는 풍경이 마치 우리에게 “어서 오세요.” 하며 기쁘게 맞아주는 듯했다.
배장골 남쪽으로는 배장마을이 있고, 이 마을의 뒷산에는 ‘매봉’이 있다. 이곳에 장군이 단정하게 앉아 있는01 ‘장군대좌혈(將軍臺座穴)’이 있다.02 이 혈 주위의 산세를 보면 옛날에 ‘영주산(瀛州山)’이라고도 불렸던 두승산(斗升山)에서 망제봉(望帝峰)을 지나 매봉으로 산줄기가 이어지다가 더 나아가 시루산에 이르게 된다. 배장마을의 동쪽에는 작은 못이 있는데, 마을의 이름을 따서 ‘배장지’라 부른다.
▲ 배장골 터
쪽박골과 부정리(扶鼎里)
배장골을 떠나 쪽박골과 부정리(扶鼎里)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덕천사거리에서 이평 방향으로 조금 가다보면 좌측 편으로 보이는 골짜기가 쪽박골이고, 우측 편으로는 가맛등과 부정리가 있다. 쪽박골과 부정리가 속해 있는 신월리(新月里)는 옛 지형이 초승달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신월리는 상제님께서 강세하신 시기에는 고부군 달천면(古阜郡 達川面)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정읍군 덕천면에 편입되었다.03
도로가에서 바라본 쪽박골은 일반 골짜기와 다를 바 없는 형태였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작은 야산의 골짜기로 손잡이 부분의 작은 골과 바가지 부분의 큰 골이 이어져 있는 모습이 박[瓢]을 반으로 쪼개 만든 작은 표주박처럼 생겼다. 쪽박과 같은 뜻인 표주박[瓠]은 성씨와도 연관이 있는데, 『한국 고대 인명사전』의 기록에 의하면 박 씨의 시조 혁거세가 큰 알에서 태어났을 때, 그 알의 모양이 표주박[瓠]과 같다고 하여 성을 ‘박(朴)’이라 했다고 한다.04
쪽박골은 『한국지명총람』에 따르면 ‘좃바골’이라 명시되어 있으며, 풍수지리에 의하면 소가 누워있거나 잠자는 모습과 흡사하여 와우형(臥牛形)이라고 한다.05 와우형의 산세는 풍후하고 유순한 특징이 있다.06
705번 지방도 사이를 두고 건너편에 있는 부정리로 가려면 가맛등을 넘어야 하는데, 나지막한 언덕이어서 넘어가는 데 어렵지 않았다. 부정리 주변의 자연경관과 지명은 솥과 연관성이 있는데, 가맛등과 부정은 ‘가마솥을 엎어놓은 형상’ 이라고 하며,07 부정리 중심으로 주위에 솥발을 형상하는 세 봉우리가 있다고 한다.
주민의 말에 의하면 부정리에는 샘이 하나 있었는데, 그 마을 사람들이 물을 길어 먹었다고 한다.08 그 샘을 ‘부정리 새암’09이라고 불렀으며, 현재 그 자리에 펌프와 파이프 관이 설치되어 있다. 이 샘을 사용했을 부정리에는 네다섯 가구가 살았다고 한다.10 지금은 정돈된 묘지들만 있을 뿐 마을은 사라지고 없다.
이 마을의 이름인 ‘부정’의 한자가 『전경』에서는 ‘부정(扶鼎)’으로 쓰고 있고, 『한국지명총람』이나 『정읍향리지(井邑鄕里誌)』에서는 ‘부정(夫丁)’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지명총람』에는 부정(夫丁)을 ‘지형이 가마솥을 엎어 놓은 것 같음’ 이라고 설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부정(夫丁)’의 한자 표기가 잘못되어 있는 듯하다.
종단 역사 일번지 답사를 마치며
상제님의 생가와 호둔바위 등 상제님의 숨결이 깃들어 있는 행적지를 볼 수 있어서 뜻깊었다. 그리고 덕천사거리 남쪽으로 등(燈)판재를 넘어 연촌(硯村), 필동(筆洞), 그리고 강동(講洞) 등 마을이 있는데, 이 지명 속에 선비들이 글공부를 할 때 필요한 벼루와 붓 그리고 밤에 불을 밝히는 등잔 등이 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이번 답사지 중 의미를 두고 싶은 곳이 있다. 그곳은 시루산[甑山]과 부정리 그리고 쪽박골이다. 세 지명이 어느 시기에 발생하였는지 알 수 없으나, 자연스럽게 상제님, 도주님 그리고 도전님을 알려준다는 점이 신비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