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부터 첫 시작을 여는 ‘전경 성구’는 우리 신앙의 근본이 담긴 『전경』에 대한 소중한 관심과 정성스런 이해를 함께 나누고자 마련한 코너입니다. 교법 1장 1절을 시작으로 『전경』 구절을 하나씩 소개하며 그 속에 담긴 성스럽고 고귀한 진리를 새롭게 아로새겨 보고자 합니다. 아울러 본 코너를 계기로 『전경』을 대하는 우리 수도인들의 마음이 더욱 깊어지고 진실하여 은은한 향내가 퍼지듯 그 깨달음 또한 참된 실천으로 우러나올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이제 천하 창생이 진멸할 지경에 닥쳤음에도 조금도 깨닫지 못하고 오직 재리에만 눈이 어두우니 어찌 애석하지 않으리오.(교법 1장 1절)
『전경』의 위 구절은 현대인들이 재리에만 빠져 천하가 진멸할 지경에 닥쳐 있다는 현실 인식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 대하여 상제님께서 개탄하신 내용입니다. 지금 천하가 진멸할 지경에 닥쳐있음을 깊이 인식하고 비겁(否劫)에 쌓인 신명과 재겁(災劫)에 빠진 창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상제님께 하소연하신 분들은 신성·불·보살들입니다. 이는 다음의 성구를 통하여 잘 알 수 있습니다.
“서양인 이마두(利瑪竇)가 동양에 와서 지상 천국을 세우려 하였으되 오랫동안 뿌리를 박은 유교의 폐습으로 쉽사리 개혁할 수 없어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도다. 다만 천상과 지하의 경계를 개방하여 제각기의 지역을 굳게 지켜 서로 넘나들지 못하던 신명을 서로 왕래케 하고 그가 사후에 동양의 문명신(文明神)을 거느리고 서양에 가서 문운(文運)을 열었느니라. 이로부터 지하신은 천상의 모든 묘법을 본받아 인세에 그것을 베풀었노라. 서양의 모든 문물은 천국의 모형을 본뜬 것이라.” 이르시고 “그 문명은 물질에 치우쳐서 도리어 인류의 교만을 조장하고 마침내 천리를 흔들고 자연을 정복하려는 데서 모든 죄악을 끊임없이 저질러 신도의 권위를 떨어뜨렸으므로 천도와 인사의 상도가 어겨지고 삼계가 혼란하여 도의 근원이 끊어지게 되니 원시의 모든 신성과 불과 보살이 회집하여 인류와 신명계의 이 겁액을 구천에 하소연하므로…” 01
상제께서 구천에 계시자 신성·불·보살들이 상제가 아니면 혼란에 빠진 천지를 바로잡을 수 없다고 호소하므로02
이렇듯 삼계가 혼란하여 도의 근원이 끊어지게 되었고, 상제님이 아니시면 이를 바로 잡을 수 없다고 하는 것이 신성·불·보살들의 현실 인식입니다. 상제님께서는 상제님이 아니시면 혼란에 빠진 천지를 바로 잡을 수 없다는 신성·불·보살들의 청원과 하소연으로 천하를 대순하시다가 이 동토(東土) 조선에 강세하셔서 천하를 주유하시고 천하를 진단하신 결과, 천하가 다 병이 들었다고 하셨습니다. 즉 세상에 충(忠)·효(孝)·열(烈)이 없어 무도(無道)하다는 것입니다. 천하개병(天下皆病)은 바로 천하가 무도병(無道病)을 앓고 있다는 것입니다. 서양 문명이 들어오기 전 조선시대에는 왕명에 의해 『오륜행실도(五倫行實圖)』를 편찬하여 국가 차원에서 삼강오륜을 잘 지키는 사람에게는 상을 주고 표창하였습니다. 반면에 불충, 불효한 경우는 나라에서 국법으로 처벌하기도 하였습니다. 학교 교육도 인간다운 삶을 위한 인간의 도리에 대한 교육을 했습니다. 그러나 서양문명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오늘날 환경은 급속히 변하여 학교 교육은 관리 봉록 등 비열한 개인의 공명(功名)이나 이욕(利慾)에 빠지게 합니다. 그 결과 오늘날 물질문명시대에 사는 사람들은 재리(財利)나 명리(名利)에 눈이 어두워져 있고, 조상과 부모를 모시고 인간적인 도리를 행하는 일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히 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현대인은 상극시대의 난법 난도로 인한 가치관의 혼란이라는 집단적 병폐 속에 살고 있습니다. 인륜 도덕보다는 재물과 이익을 최상의 가치로 생각하여 이에 정신과 마음이 팔려 있고 인간의 도리는 망각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무도(無道)한 삶을 살다보면, 각종 질병에 시달리게 되고 끝내는 망하는 길로 접어들게 됩니다. 상제님께서는 “大病出於無道 小病出於無道”(행록 5장 38절)라 하셨듯이 현대인의 질병은 크던 작든 간에 다 무도(無道)한 데서 생기는 것입니다. 무도(無道)란 은혜를 망각하고 배은망덕(背恩忘德)한 것입니다. 은혜를 망각하는 순간 자기 삶의 근원적인 원천과 단절이 일어나므로 삶의 정신적 원동력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정신의 원동력이 사라지면 그 사람은 점차 시들어 삶이 피폐하게 됩니다. 이것이 도전님께서 “도는 우주 만상의 시원(始原)이며 생성(生成) 변화의 법칙이고, 덕은 곧 인성(人性)의 신맥(新脈)이며, 신맥은 정신의 원동력이므로 이 원동력은 윤리도덕만이 새로운 맥이 될 것이다.”03라는 말씀의 의미라 하겠습니다. 이렇게 자신이 처한 무도한 상황을 조금도 깨닫지 못하고 오직 재리에만 정신이 팔려 있는 집단적 병폐 상태에서 벗어나는 길은 수도하는 것뿐입니다. 상제님께서는 9년간의 천지공사로 삼계(三界)를 광구할 천지대도(天地大道)를 여셨습니다. 그 천지대도는 무극대운(無極大運)의 해원상생 대도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는 상생의 법리로 마음을 속이지 않고, 언덕을 잘 가지며, 척을 짓지 않고, 은혜를 저버리지 않으며, 남을 잘 되게 해야 합니다. 무극대운의 상생의 도가 세상에 출현했음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깨닫지 못하고 재리와 명리만을 추구하며 살아간다면 끝내 망고(網罟)의 자화(自擭)를 면하지 못 할 것입니다. 이를 두고 상제님께서는 “천하의 형세에 밝은 자는 사는 기운이 따르고, 천하의 형세에 어두운 자는 죽는 기운이 따른다(知天下之勢者 有天下之生氣 暗天下之勢者 有天下之死氣).”라고 하신 것입니다. 전환기인 현시점에 해원상생(解冤相生)과 보은상생(報恩相生)의 대도(大道)를 알지 못하고 과거의 상극적 논리로 살아가는 사람은 결국 망하는 길로 가게 되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이처럼 재리에 눈이 어두워 도리를 깨닫지 못하는 것은 인간의 양심(良心)이 물욕(物慾)에 의한 사심(私心)에 가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모든 죄악은 물욕에 사로잡힌 사심에 의하여 도리에 어긋나는 언동을 감행함으로써 일어나는 것입니다. 도전님께서 “‘대병지약은 안심·안신이라’ 하셨으니 깊이 명심하여야 한다.”04라고 하시어 수도를 통한 안심(安心)·안신(安身)이 양심을 회복하는 길이며, 무도병을 치유하는 약이라는 것을 밝혀주셨습니다. 수도적 이상과 경제적 현실은 잘 조화되어야 합니다. 이상만을 추구하여 현실을 도외시하면 아표신(餓莩神)05이 될 뿐이고, 현실만을 추구하여 이상을 저버린다면 금수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상제님께서는 보화(寶貨)라는 글자 속에는 낭패(狼狽)라는 패 자가 들어있다고 하셨습니다.06 낭(狼)과 패(狽)는 중국 전설에 나오는 이리를 말합니다. 낭(狼)은 앞다리가 짧고, 패(狽)는 뒷다리가 짧은 이리입니다. 따라서 둘은 항상 붙어 다녀야 합니다. 혹 둘이 다퉈 떨어지게 되면 따로따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일이 어긋나는 것을 낭패(狼狽)라 한다.’고 중국의 『유양잡조(酉陽雜俎)』라는 책에 실려 있습니다. 이처럼 보화는 삶에 필요한 것이지만 지나치게 탐하는 것은 삶의 균형을 무너뜨려 낭패로 가는 길입니다. 수도생활과 사회생활이 합덕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을 잠시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범사에 나의 삶의 원천과 근원에 대한 은혜를 잊지 않고 보은상생과 해원상생의 법리로 살아가는 것은 가치관의 혼란과 물욕에 사로잡히기 쉬운 무도적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삶의 조화를 잃지 않고 무도병을 치유할 수 있는 필요불가결한 영약(靈藥)이라 할 것입니다.
01 교운 1장 9절 참조. 02 예시 1절. 03 『대순지침』, p.44. 04 『대순지침』, p.48. 05 권지 1장 8절, 예시 11절: 굶어 죽은 귀신, 사람들을 굶주려 죽게 만드는 귀신. 06 교법 1장 38절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