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대학가는 민주화를 열망하는 분위기가 고조되고, 학생 시위와 전경 진압 사이에 최루탄과 폭력이 난무하는 갈등의 현장이었다. 이 무렵 나는 군 복무를 마치고 대학에 복학했다. 학교생활은 사회변혁의 희망과 좌절이 교차하는 고단함의 연속이었다. 이런 와중에 평소 알고 지내던 친구로부터 상제님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이것은 마치 새벽녘 어둠을 걷어내는 여명과도 같았다. 나는 더 알고 싶어 경전을 요구했다. 그는 『전경』을 전해주었고, 난 3번을 읽고 입도를 결정했다. 그 후 수도과정에서 주변 도인들과 교유하게 되고, 몇몇 도인들의 도인답지 못한 행동에 ‘도인이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선무 임명을 모셨지만,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과 타인에 대한 실망감이 뒤섞여 쉽사리 안정을 찾지 못했다. 이 문제로 심각하게 고민도 해보았지만 뚜렷한 해답을 얻지 못해 방면 선감에게 자문하기도 했다.
김선무: 도대체 도인이란 어떤 사람입니까?
방면 선감: 참 중요하고도 어려운 질문이네요. 도인이란 상제님께서 말씀하신 대순진리를 잘 수행하는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김선무: 그렇다면『전경』의 가르침을 잘 지켜야 할 것 같은데요, 일반적인 상식도 지키지 않는 사람이 종종 있습니다. 도인이라 하면서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방면 선감: 도인의 삶 또한 사회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아요. 도인도 가정에서 맡은 역할과 국민으로서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다만 목적을 이루는 데는 꼭 과정이 필요합니다. 김선무가 좀 더 수도해 가다 보면 스스로 그 의문이 풀리게 될 겁니다.
김선무: 도인의 수도과정이 목적만큼이나 중요하다는 말씀입니까~요?
방면 선감: 그렇습니다. 과정 없이 목적을 이루기는 어렵습니다. 먼저 상대를 아끼고 이해하는 해원상생을 실천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그 답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인산 수도(人山修道)라는 말이 있으니 잘 새겨보세요.
나는 어느덧 상급임원이 되었고, 금강산토성수련도장 건립에 필요한 서까래를 준비하는 작업에 참여했다(1994년). 불철주야 서까래로 쓸 나무를 다듬는 중, 불현듯 오랫동안 잊고 지낸 나의 그 심각했던 의문이 풀렸다. 그 짧은 순간에 ‘서까래’라는 재목(材木)에 도인들의 모습이 투영됐다. 재목으로 쓰기 위해선 잘 다듬어야 하듯이 도인들도 인간관계 속에서 자신의 모난 점을 다듬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었다. ‘나는 얼~마나 완벽한 사람인가?’ 남의 허물을 거울삼아 나를 반성할 일이었다. 멀리 생각하지 못하고 조급했구나! 결국, 주변 사람들은 나의 수도를 위해 맺어진 고귀한 인연인 것을 …. 짧은 순간이었지만 눈가가 촉촉해지며 상제님의 용안이 스쳐지나갔다. “물샐틈없이 도수를 짜놓았다” 하셨는데! 지금 이 순간 내 곁에 아름다운 도우(道友)들이 있으니 감사하고 행복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