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라니패. 조선 후기 유랑 예인집단의 하나로 농촌에서 유리된 많은 농민들이 유랑을 하며 춤과 노래ㆍ기예를 팔아서 생계를 유지했던 패거리들이다. 원래는 가면을 쓰고 잡귀를 쫓고 복을 불러들이는 의식에 따른 놀음을 벌이던 놀이패였으나, 후에 마을을 돌며 집집마다 들러 장구도 치고 ‘고사소리’를 부르며 동냥을 하는 놀이패로 변했다. 나중에는 여러가지 잡희를 벌이는 놀이패로 바뀌었다가 일제강점기로 접어들면서 없어졌다. 현재 초라니의 잔존된 형태가 남아 있는 것은 탈놀이의 초라니로 초란이ㆍ초랭이라고도 부른다. 여러 놀이마당 중 하회별신굿에서의 초란이는 양반의 하인 역으로 경망하게 까불어대는 성격을 가진다. 바지저고리 위에 붉은 쾌자를 입고 두 어깨와 허리에 걸쳐 청홍색 띠를 띤다. 가면의 얼굴빛은 중과 선비와 마찬가지로 주홍색 바탕에 갈색이 덮였다. 눈썹은 검게 칠하였고, 둥글고 조그만 눈이 툭 튀어나오게 생겼으며, 눈시울은 흰 테를 돌려 요면적(凹面的)효과를 노렸다. 입과 눈은 뚫렸고 약간 벌린 입에는 이가 드러나 보인다. 턱은 움직이지 않게 고정되어 있는 대신 입이 개폐되어 작고 둥근 눈과 함께 움직임의 표정을 갖는다. 양쪽 볼에 약간의 주름살이 새겨져 있다. 코 밑과 아랫입술 밑에는 식모공이 남아 있으며 짧고 빨간 수염을 달아 희극적인 효과를 준다. 가면의 높이는 20cm, 너비는 14cm이다.
ㆍ초장봉기(楚將蜂起) : 교운 1장 42절/172쪽.
초나라 장수들이 벌떼와 같이 들고 일어섬.
이 말은 『통감』 제3권 「후진기」편의 “今君起江東楚蜂起之將皆爭附君子以君世世楚將能復立楚之後也(지금 그대가 강동[江東]에서 일어난 후 초[楚]에서 봉기한 장수들이 다투어 부하가 되는 것은 그대의 가문이 대대로 초나라 장수를 지낸 바 있어 능히 초나라의 뒤를 다시 일으켜 세울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라는 구절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있다. 위의 구절은 범증이 항량(항우의 숙부)에게 진나라 말 농민 반란 지도자인 진승이 자신의 세력을 모으는 데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초나라의 후예를 앞세우지 않았기 때문이었음을 상기시키고 나서 초(楚)의 후예를 왕위에 올릴 것을 조언하는 장면이다. 항량은 그 조언을 그럴듯하게 여겨 초회왕(楚懷王)의 손자 심(心)을 찾아 초회왕으로 세웠고, 자신은 무신군(武信君)이라 칭하였다.
ㆍ초종지례(初終之禮) : 제생 12절/295쪽.
초종의 예. 초종이란 초종장사와 같은 말로서 초상 뒤부터 졸곡(卒哭 : 삼우제 후 지내는 제사)까지 치러지는 일이나 예식을 뜻한다. 초종의 절차는 임종에 대한 준비, 초혼(招魂), 시체 거두기, 상례 동안의 역할 분담, 관 준비, 부고 등 장례 초기 의식이 모두 포함된다. 일단 임종이 가까워지면 정침(正寢 : 제사를 지내는 방)에 모시고 숨이 끊어지면 천으로 시신을 덮은 뒤에 곡(哭)을 한다. 죽은 사람의 윗옷을 가지고 앞 처마를 통하여 지붕에 올라가 북쪽을 향하여 윗옷을 휘두르면서 죽은 사람의 이름을 3번 부르는 복(復), 즉 초혼을 하고 뒤처마로 내려온다. 옷은 바구니에 담아서 영좌(靈座 : 신위를 모셔놓은 자리)에 둔다. 장막을 쳐서 시신을 가리고, 시신은 시상에 올려 머리를 남쪽으로 향하게 한다. 눈은 감기고 손은 배 위에 모아 엄지와 함께 묶고, 입은 벌려 윷가락 같은 것으로 끼워놓고, 발은 틀어지지 않게 나무틀에 매어놓는다. 이를 수시(收屍)라 부르며 염(殮)을 쉽게 하기 위한 절차이다. 사자밥은 대문 밖에 차려놓는데 밥ㆍ동전ㆍ짚신 등을 상이나 키에 3개씩 놓는다. 상주는 맏아들이 되며, 없을 때는 장손이 된다. 자제로서 호상(護喪)을 삼고, 그밖에 상례(相禮)ㆍ축관(祝官)ㆍ사서(司書)ㆍ사화(司貨) 등을 각각 분담하여 맡긴다. 가족들은 옷을 바꾸어 입고 음식을 먹지 않는다. 여자들은 머리를 풀고 남자들은 흰옷을 입고 옷섶을 여미지 않는다. 집사자(執事者)가 상 위에 포와 젓갈 등 보통 반찬을 차리면 축관이 술을 따라 시신의 동쪽에 놓으며 이것을 시사전(始死奠)이라 부른다. 호상이 관을 만들도록 하고 사당에 고하며 부고(訃告)를 하도록 한다. 안마당에는 차일을 치고 화톳불을 놓아 밤샘이 시작된다. 여자들은 방에서 수의와 상복을 만든다.
ㆍ초혼(招魂) : 공사 1장 15절/102쪽. 교운 2장 57절/217쪽. 예시 66절/332쪽.
죽은 사람의 혼을 부름, 또는 그런 의식.
대개 장례를 치를 때 초혼을 하는데 고복(皐復) 또는 ‘혼 부른다’라고 하며 절차는 지방에 따라 약간씩 다르다. 『예서』에 나타난 고복의 절차는 다음과 같다. 죽은 사람의 종(신분이 천한 사람)이 죽은 이의 윗옷을 가지고 앞 지붕에서부터 용마루로 올라가서 왼손으로 옷깃을 잡고 오른손으로는 옷의 허리를 잡고 북쪽을 향하여 흔들면서 이름을 부른다. 이때에 남자는 관직명(官職名), 자(字) 등을 부르고 여자는 평소에 남들이 부르던 이름을 그대로 부른다. 고복이 끝나면 지붕에서 내려와 고복한 옷을 시체의 가슴 위에 얹어 놓는다. 고복하는 옷은 벼슬을 한 사람이면 공복(公服) 혹은 심의(深衣 : 신분이 높은 선비들이 입던 윗옷)를 사용하고, 서민은 심의가 없으면 도포(道袍)로 대신하며, 부인의 경우는 저고리나 치마를 사용한다. 요즈음 민간에서는 고복의 절차가 다소 약식화 되었다. 즉 지붕에 올라가는 대신 옷만을 지붕으로 던지고 마당에서 부르는 지방이 많으며, 부르는 방법도 “○○도 ○○군 ○○면 ○○리 ○○○ 복ㆍ복ㆍ복” 하고 부르는 것이 보통인데, 이것은 지방간의 차이보다 오히려 초혼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초혼하는 옷도 지금은 보통 겉저고리나 적삼으로 하며 고복이 끝나고 지붕에서 내린 옷도 사자밥과 같이 놓아두는 지방, 헛간 구석에 구겨 넣는 지방, 시체 가슴에 덮는 지방 등 많은 차이가 있다. 고복은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혼이 나간 것이라 믿고, 나간 혼을 불러서 재생시키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ㆍ촌보(寸步) : 제생 2절/290쪽.
몇 발짝 안 되는 걸음.
ㆍ총각판 : 교법 2장 33절/240쪽.
열 살 이상 스무 살 아래 결혼하지 않은 총각 선수들만 참가하여 벌이는 씨름판.
≒ 총각마구리.
ㆍ총대(總代) : 행록 3장 37절/44쪽. 공사 2장 19절/122쪽.
1. 차경석이 일진회에 있을 당시 전라남북도 순회관(巡廻官)의 직책을 맡았는데 이를 표현한 말.
2. 전체를 대표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
ㆍ총묘(塚墓) : 공사 3장 41절/151쪽.
높고 큰 무덤이라는 뜻. 발굴된 유물로 보아 왕족의 무덤이 분명한데 주인을 알 수 없는 무덤을 지칭.
ㆍ추기(樞機) : 행록 3장 44절/48쪽.
① 중추가 되는 기관(機關) ② 매우 중요한 사무나 정무(政務) ③ 몹시 중요한 사물, 사물의 중요한 부분
ㆍ추녀 : 제생 2절/291쪽.
네모지고 끝이 위로 들려진, 처마의 네 귀에 있는 큰 서까래. 귀서까래ㆍ충설(衝舌)ㆍ충연(衝椽)이라고도 한다.
나가서는 장수가 되고 들어와서는 재상이 된다는 뜻으로, 문무를 다 갖추어 장상(將相)의 벼슬을 모두 지냄을 이르는 말.
ㆍ취체(取締) : 행록 3장 15절/34쪽.
규칙, 법령, 명령 따위를 지키도록 통제함. 단속(團束).
ㆍ치도령(治道令) : 권지 1장 9절/264쪽, 1장 12절/266쪽.
길을 닦으라는 명령.
ㆍ치상(治喪) : 행록 5장 36절/93쪽, 5장 37절/94쪽. 제생 12절/295쪽.
초상을 치름.
ㆍ치송(治送) : 행록 4장 46절/75쪽.
짐을 챙겨서 길을 떠나 보냄.
ㆍ칙령(勅令) : 권지 1장 13절/267쪽. 제생 23절/300쪽.
칙명(勅命). 임금의 명령.
ㆍ친계(親系) : 교운 2장 9절/192쪽.
혈족 관계.
ㆍ친산(親山) : 행록 3장 30절/41쪽, 4장 28절/68쪽.
부모의 산소.
ㆍ칠성각(七星閣) : 교운 2장 28절/199쪽.
인간의 수명장수와 재물을 관장하는 칠성신(七星神)을 모신 불교의 전각. 도교에서 신앙되던 칠성신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비[雨]ㆍ장수ㆍ재물을 비는 민간신앙으로 정착되었다. 칠성신은 불교에 흡수되면서 처음에는 사찰의 수호신으로 자리 잡았다가 점차 본래의 기능을 되찾아 별도의 전각인 칠성각에 모셔지게 되었다. 칠성각은 대개 1칸 정도의 작은 규모로 지어지며, 칠성신을 산신(山神), 독성(獨聖 : 나반존자)과 함께 모실 때는 ‘삼성각(三聖閣)’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칠성각은 조선시대에 나타나기 시작해 지금까지도 대부분의 사찰에 자리잡고 있으며, 이는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경우라고 한다. 칠성각에는 칠성삼존불을 중심으로 칠여래와 칠원성군을 탱화로 그려 모시고 있다. 삼존불이란 치성광여래ㆍ일광여래ㆍ월광여래를 말하며, 이 삼존불 좌우에 칠여래와 칠원성군이 배치되어 있다. 전각의 명칭 칠성(七星)은 구체적으로는 천체와 관련되어 있는 신들인 탐랑ㆍ문곡ㆍ거문ㆍ녹존ㆍ염정ㆍ무곡ㆍ파군의 일곱 별로, 각각 운의통증여래(運意通證如來)ㆍ최승길상여래(最勝吉詳如來)ㆍ광음자재여래(光音自在如來)ㆍ금색성취여래(金色成就如來)ㆍ광달지변여래(廣達智辨如來)ㆍ법해유희여래(法海遊戱如來)ㆍ약사유리광여래(藥師琉璃光如來)의 칠(七)여래가 되어 신봉되고 있다.
북두칠성이 인간의 길흉화복을 맡았다 하여, 제사를 행하거나 개인적인 소원을 빌 때 읽는 경. 『도장(道藏)』에 실려있는 칠성신앙 관련 경은 「태상현령북두본명연생진경(太上玄靈北斗本命延生眞經)」, 「태상북두이십팔장경(太上北斗二十八章經)」, 「북두치법무위경(北斗治法武威經)」, 「북두구황은휘경(北斗九皇隱諱經)」 등이나, 이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태상현령북두본명연생진경」이고 우리나라에 주로 유통된 것도 이 경이다. 이 경을 설한 주체는 태상노군(太上老君)으로 되어 있으나 신빙성은 없으며, 인간의 선악을 심판하여 복록과 재앙을 내리는 권능이 북두칠성에게 있음을 설하고 있는 것이 주 내용이다. 이 경을 독송하면 재앙을 면하고 복록을 누리며 결국 구제받을 수 있다고 한다. 한편 「태상현령북두본명연생진경」에는 북두주(北斗呪)가 들어 있는데, 이 주문은 현재 대순진리회에서 사용하고 있는 칠성주와 거의 동일한 형태를 띠고 있다.
<북두주(北斗呪)>
北斗九辰 中天大神 上朝金闕 下覆崑崙 調理綱紀 統制乾坤 大魁貪狼
巨文祿存 文曲廉貞 武曲破軍 高上玉皇 紫微帝君 大周天界 細入微塵
何災不滅 何福不臻 元皇正氣 來合我身 俗居小人
好道求靈 願見尊儀 永保長生 三台虛精 六旬曲生 生我養我 護我身形
魁 尊帝急急如律令
ㆍ칠십이둔(七十二遁) : 행록 3장 28절/40쪽. 예시 20절/316쪽.
천문과 지리의 변화 양상을 72가지로 구분하여 그 각각을 인사(人事)에 적용할 수 있도록 만든 법술. 이것의 원리를 깨닫고 법술을 행사한 최초의 인물은 강태공이라고 알려져 있다. 원래 우주는 음양에 의해 변화를 일으키고 돌아가는데, 이것이 오행으로 분화된 후 하늘에는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甲乙丙丁戊己庚辛壬癸)의 십천간(十天干)으로 나타나고, 땅에는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의 십이지지(十二地支)로 나타난다. 하늘의 기운이 땅으로 내려와서 조화를 이루어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하늘의 십천간(十天干)을 변화의 기준으로 삼는다. 십천간(十天干)은 갑기토운(甲己土運)이라고 하여 갑(甲)과 기(己)가 음양 기운 전환의 기준이 된다. 그런데 甲일에서 己일까지 소요되는 일수는 5일이므로 이 5일을 하나의 단위로 해서 음양의 변화가 있게 된다. 이 변화의 단위가 되는 5일을 1후(候)라고 하는데, 1년 동안에는 모두 72개의 후(候)가 존재하기 때문에 1년에는 72가지의 변화가 있는 셈이다. 따라서 이 72라는 수리를 동양에서는 예로부터 “천지(天地)와 음양오행의 성수(成數)이며 많은 수효를 나타낼 때 사용한다”라고 하였으며, 이런 연유로 고전 소설 『서유기(西遊記)』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손오공이 부리는 변신술의 종류도 72가지라고 한 것이다. 한편 천문과 지리에서 일어나는 72가지 변화 형태를 응용하여 부리는 술수(術數)가 곧 72둔(遁)인데, 전쟁에 사용되는 형태의 72둔은 날짜와 시간ㆍ장소에 따른 군대의 전진ㆍ후퇴ㆍ배치 방법, 전투 길흉판단 등을 다룬 것으로 현재 「기문72국 군중응험신부경(軍中應驗神符經)」에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