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하나, 나 하나 … 별 둘, 나 둘 … 별 셋에 이미 내 어린 두 동공이 가득 채워지고 만다. 좁은 시야에 꽉 차버린 별들일랑 이내 쏟아내고 조막 손가락 하나 펼쳐 들고서 점에서 점으로 … 하늘 무늬 따라 그림 그린다.
오늘밤도 지구 별 어른들은 침몰하는 서쪽 달이 못내 아쉬워 동서로 남북으로 하늘 끝 부여잡고 서로가 서로를 마주 그리지. 깜빡이는 눈동자처럼 … 일렁이는 별빛은 바람에 스치우는 떨림일 거야. 유난히 그 총총함에 눈이 시린 날은 코끝 시큰거리는 먹먹함으로 그렁그렁 차오르는 그리움 머금고 너도 나도 밤새워 꿈을 꾼다지.
# 1. 동행
푸릇한 어둠을 사이에 두고도 희미한 그들에게서 친근함과 안도감이 느껴지는 것은 무의식에 와 닿는 연줄(緣乼) 때문일 것이다. 잔잔히 웅성대는 무리에 섞여 무심히 서성이던 그녀가 별안간 탄성을 지르며 밤하늘을 가리킨다. “말(馬)이다!!!” 제각각의 실루엣들이 일제히 그녀가 가리키는 북쪽 하늘을 바라본다. 진실로 그녀의 짧은 외침이 효력을 발휘한 듯 북두의 별들이 제각기 배열되는가 싶더니 어느새 말의 형상으로 무늬 지어졌다. 마치 은빛 네온들이 하나둘씩 켜지듯 검푸른 하늘에 앞발을 높이 쳐든 은마(銀馬)가 점등되어졌다. 그럴 리(理)가 없는 비현실적 현상에 대한 경이로움으로 무리들이 동요하는 가운데, 밤하늘에 수놓아진 추상적 은마(銀馬)는 급기야 구체적 백마(白馬)로 화(化)하여 하강(下降)하기 시작했다. 예지에 번뜩이는 그녀의 눈이 끝까지 북두(北斗)의 말을 쫓는다. 순간 요란한 말발굽 소리와 함께 들판을 가로지르는 말무리 떼가 먼지를 일으키며 그녀의 시야를 빠르게 지나쳤다. 뿌연 먼지 구름이 옅어질 때쯤 그녀는 무리를 이탈해 뛰어나오는 무언가에 주목했다. 저만치 모습을 드러낸 그것이 그녀 앞으로 다가올수록 서서히 선명한 빛과 형체를 드러냈다. 백우(白牛)였다. 말무리에서 뛰어나온 그것은 뜬금없게도 털빛이 하얀 흰 소였던 것이다. 놀라움과 반가움의 모호한 경계에서 그녀는 동공을 최대한 확장시켜 이 신령스러운 동물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우선 이 소는 완벽한 백색 모(毛)는 아니었지만, 몸 전체는 우유빛으로 온화한 윤기가 흘렀고 양쪽 뿔[角] 사이의 곱슬 머리털은 희고 풍성했다. 몸체가 그리 웅장하지 않은 다부진 근육과 균형 잡힌 골격의 상(象)이 사람의 나이로 치자면 대략 30대 중후반 장년의 풍채로 젊음과 성숙이 공존하는 왕성함을 뿜어내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긴 속눈썹 아래로 깊고도 그윽한 검은 눈동자 속에 투영된 진실어림은 그녀를 압도시키는 위엄마저 서려있었다. 호기심으로 예리하게 번뜩이는 그녀의 눈과 지극한 선(善)을 머금은 백우의 눈이 정면으로 마주쳤다. 그녀는 그와 동시에 이 소가 조금도 자신을 두려워하거나 경계하고 있지 않음을 감지해 낼 수 있었다. 그녀 역시 예상치 못했던 이 신령스러운 존재와의 조우(遭遇)에서 설명할 수 없는 반가움과 안도감이 느껴지는 것은 어쩌면 그녀의 깊은 무의식의 샘에서 떠오른 백(白)색의 ‘연줄(緣乼)’을 건드렸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그녀가 막연한 느낌에만 의지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겪는 것은 상황 전개가 그녀의 의지로서 제어하거나 책임질 수 없을 만큼 상당히 비약적이고 일방적이라는 점에 있었다. 다행히 이 비현실적 공간에서 그래도 현실적인 것은 흰 소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는데, 만약 ‘소와 그녀’가 구체적인 대화를 주고받는 이솝우화 같은 식이 되어 버렸다면, 그녀가 이 상황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갖가지 당황스러운 요소에도 불구하고 백우의 갑작스런 등장에 대해 그녀는 비교적 단호한 직관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었다. 단지 흰 소가 그녀 자신을 닮아 있다는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에서 출발하여, 그녀는 심지어 이 소의 임자가 그녀임을 알아볼 수 있는 것은 오직 자기 자신뿐이라는 신념에까지 이르렀다. ‘그래. 이 소는 내 소다!’ 라고 그녀의 마음이 조용히 말하고 있었다. 좀 더 가까이에서 소를 만져 보고 싶어진 그녀는 조심스레 한 발을 내딛었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이내 멈칫 제자리에 서고 만다. 어느 틈에 일어난 일인지 알 수 없는 부지불식간의 일이었다. 흰색 두루마기를 입은 누군가가 이미 백우(白牛)의 등에 올라 타 있는 것이 아닌가 …. 순식간에 일어난 느닷없는 사태에 그녀는 적잖이 당황했고 이 낯선 존재의 출현에 대해 잠시 동안 혼란스럽고도 불쾌했다. 믿어 의심치 않았던 그녀의 직관이 틀리지 않았다면 이 사람은 남의 소에 허락도 없이 함부로 올라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분명 내 소인데 …. 그럴 리가 없어! 내 소가 틀림없는데 …. 누구지? 이 사람은?’ 그녀의 입에서 나지막한 중얼거림이 반복되었지만, 생각보다 의혹의 꼬리는 그리 길지 않았다. 신기하리만치 그녀는 이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빠르게 판단하고 결론지었다. 물론 이 소가 곧 자신과 일체가 될 것이며 소 등에 탄 이는 장차 그녀와 함께 같은 길을 가게 될 동반자라는 지극히 자의적이고 운명적인 해석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가 나타나지 않은 때문이기도 했지만, 적어도 이 시공간에서 만큼은 그녀의 직감을 굳이 설명하고 설득해야 할 대상도, 당위성도 없었기에 지금 그녀는 모든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웠다. 여하튼 기왕지사 벌어진 이 상황에 순응할 수밖에 없다면 그녀는 지금부터 편안한 마음으로 꼼꼼히 그를 관찰해 볼 요량이다. 우선 두루마기를 입은 그가 자신보다 한참 어려 보인다는 느낌은 까닭 모를 난감함으로 다가와 그녀의 심기를 건드렸다. 듬직하게 느껴지지 않는 체구도 내심 탐탁지 않았고, 예민하고 고집스러워 보이는 것도 마음에 걸렸지만, 그나마 골격이 옹골차고, 다부져 보이는 인상에 무엇보다 또렷한 눈매와 안광이 남다른 총기를 발산하고 있었다. “왜 이렇게 어린 거야? 날더러 대체 …. 어느 세월에 키우라고 ….” 푸념 섞인 혼잣말을 끝으로 그녀는 이제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어떤 의사 표시도 없이 그저 소 등에 올라 앉아 먼 산만 바라보는 과묵한 그와 그런 그를 등에 태우고도 전혀 미동조차 않는 백우(白牛)의 주위를 그녀가 천천히 한 바퀴 돌아보고는 이윽고 결심한 듯 제자리에 섰다. 마땅치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 흰 소가 그녀 자신의 소라는 전제 하에 이유야 어떻든 그가 먼저 백우를 타고 버티는 이상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이미 그는 이 길의 동행자로 정해진 채 그녀 앞에 나타났으니 말이다. 그녀가 단숨에 소등에 훌쩍 올라탔다. 어린 그의 뒤에 앉아서 그녀는 양팔을 앞으로 쭉 뻗어 소의 두 뿔을 잡았다. 그 순간 백우가 별안간 쏜살같이 달리기 시작했다. 숨쉬기조차 곤란할 만큼 그녀는 무서운 체감 속도에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바람을 맞으며 눈을 감은 채로 잠시 동안이었지만 그녀는 의심이 들었다. ‘그와 그녀가 타고 있는 이것이 말(馬)이었던가’ 라고. 하지만 그건 아마도 ‘본래 소라는 동물이 이렇듯 빠를 수 있는가?’ 라는 의구심과 더불어, 앞서 등장했던 백마에 대한 연상 작용 때문이었을 게다. 얼마 안 가 의심은 자동적으로 풀릴 수밖에 없었는데, 그녀가 중심을 잡기 위해 양 손에 쥔 두 뿔의 단단하고 묵직한 촉각이 생생하게 유지되고 있었기에 그들이 소를 탔다는 심증의 근거로 더 이상 부족함이 없었다. 그제서야 그녀는 안심했고 백우(白牛)의 양 뿔과 하얀 두루마기를 휘날리는 그의 등에 의지한 채 비로소 믿고 자신의 운명을 맡길 수 있었다. 어느덧 백우는 두 사람을 등에 태운 채 나지막한 산등성이를 달려 오르고 있었다. ‘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그녀의 생각도 잠시, 마침내 달리던 백우의 발이 멈췄다. 그녀가 눈을 떴을 때, 그들은 황토 빛으로 둥글게 펼쳐진 너른 학교 운동장의 한가운데 서 있었다.
#2. 겨울_회상 하나
혹한의 겨울은 가고 있었다. 1973년 2월. 아직은 냉혹한 정월의 칼바람에 살갗이 아리다. 살얼음 낀 언 땅 위를 뽀도독 뽀도독 밟아 부지런히 종종걸음 쳐가는 스물일곱의 그녀. 털실로 짠 두툼한 목도리로 머리와 귀를 둘둘 말아 감싸고 두꺼운 스웨터에 긴 밤색 외투를 단단히 껴입고도 스멀스멀 파고드는 한기에 몸서리가 쳐진다. 잔뜩 움츠러든 목을 한 바퀴 둘러 귀와 머리까지 꼼꼼하게 감싼 회색빛 털목도리 사이로 바듯이 내놓은 그녀의 얼굴이 벽돌 빛으로 붉게 그늘진다. 무심하고도 공허한 갈색 눈동자에 앙다문 입술만큼이나 푸석하게 말라있는 그녀의 표정은 건조하고도 단단하게 굳어 있다. 어릴 때부터 작은 마실이라 불려온 친정 동네에서 도보로 약 20분가량 떨어진 큰 마실을 향해 그녀는 그저 바지런히 걷고 있다. 신작로 길가 앙상하게 마른 포플러 나무들이 잿빛 행렬로 볼품없이 즐비하고 곧 대형 빵 공장이 들어선다는 철길 옆 너른 공터는 흙먼지로 황량하기만 하다. 그녀의 갈색 홍채에 맺힌 무채색 겨울 세상은 온통 낡고 우울한 흑백 사진 속 피사체 같다. 설을 쇤지 얼마 지나지 않은 정초부터 그녀가 굳이 큰 마실을 찾는 연고는 상섭이 엄마를 만나기 위함이다. 큰 마실에는 상섭이네 엄마가 살고 있었다. 상섭이라는 아들을 둔 그 아낙은 인근에서 제법 유명한 무당이었다. 꽤 오래전부터 이 마을에 터를 잡고 점을 쳐주는 일뿐만 아니라, 이 동네 저 동네 우환 깃든 집안의 크고 작은 푸닥거리를 도맡아 해온 그녀의 존재를 모르는 마을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런 상섭이네 집을 그녀가 연초부터 찾아가는 이유를 짐작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아마 올해의 신수가 어떤가에서부터 밖으로만 나도는 지금의 남편과 계속 살 수 있겠는가라든지 그녀의 팔자에는 정녕 자식이 없겠는가 등등의 답답함을 물으러 가는 것일 게다. 사실 그랬다. 설령 그 시대 대다수의 여인네들이 미신이라는 핀잔과 폄하 속에서도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그 구닥다리 샤머니즘에 현혹될 지라도 그녀는 살기 위해서 그곳을 찾아가야만 했다. 서글펐다. 하늘 아래 막막한 자신의 처지를 털어 놓고 방책을 구할 만한 곳이 무당집뿐인 현실이 … 친정 엄마의 오랜 신병으로 어릴 때부터 굿이라면 신물이 나도록 보아온 그녀였다. 모친의 고질병에 귀신 푸닥거리가 영험했다면 일 년에도 몇 번씩 굿을 해야 할 리도 없었겠지만, 무엇보다 그녀는 그 요란하기 그지없는 종교의식이 남사스러웠다. 징소리 북소리에 온 동네가 떠들썩한 가운데 성(性) 정체성이 돌변하는 무녀의 쉰듯하면서도 걸쭉한 목소리가 … 말하듯 노래하듯 울다 웃다, 별안간 숨이 끊어질 듯 통곡하다가도 돌연 노기 띤 부리부리한 눈빛으로 번쩍이는 칼을 휘두르며 좌중을 위압하기도 하는 그 변화무쌍한 표정과 알 수 없는 퍼포먼스들. 귀가 터질 듯 울려대는 단순 장단에 신기(神氣)가 오를 대로 오른 무아지경에 빠진 무녀가 도래질을 하며 춤을 추고 맨발로 뛰고 굴리는 역동적인 굿판이 절정에 다다르면, 구경 나온 동네 사람들은 신기한 듯 혹은 안쓰러운 듯 눈을 떼지 못하고, 무당이 신나게 읊어내는 한 맺힌 그 집안의 내력들을 수근대며 들여다본다. 집안이 발가 벗겨진 듯한 그 공개적인 원시 종교의례에 대한 염증과 더불어, 그녀의 그런 거부감은 어쩌면 그들을 저급하고도 천한 무속인으로 치부하면서도 연초면 의례히 무당을 찾는 모순에 대해 스스로 떳떳하지 못했던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그녀는 지금 남의 이목이나 본질적 모순에 대해 고민할 겨를이 없는 그저 자신의 처지가 세상에서 가장 절실하고 절실한 가련한 여인에 불과했다.
어릴 때부터 동네에서 제법 미인이라는 소리를 들어왔던 그녀는 까무잡잡하고도 탄력 있는 피부에 다부진 인상만큼 매사 활달하고 자신만만했다. 그런 그녀가 갓 스물에 연애로 만난 남편과 결혼 한 지 6년이 지났지만 어찌된 일인지 자식이 생기지 않았다. 아이가 없는 것이 자신만의 탓인 양 그녀는 죄인 아닌 죄인으로 살아야 했다. 그런 그녀의 고통은 뒤로하고 남편은 딴 데서 자식을 볼 작심인지 오래전부터 바람을 피워대기 일쑤였고 생산을 못하는 며느리로서 그녀는 시집의 명절, 제사 때마다 늘 바늘방석에 앉은 듯 눈치를 봐야 했다. 그러던 중 지난해부터 그녀의 심적 부담과 불안이 더욱 가중되는 일이 생겨버렸는데, 손 위 큰 동서가 작년 이맘때 첫 딸에 연이어 둘째 아이를 출산했던 것이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보란 듯이 아들까지 낳아버린 작금의 현실 앞에 수년간 힘겹게 버텨왔던 그녀는 무너지기 시작했고 극심한 불면과 우울증으로 자신의 박복함을 비관했다. 사실 남편이 바람을 피우기 시작할 때부터 그녀는 자살을 준비해왔다. 치사율이 높은 맹독 중에서도 말린 복어 내장과 청산가리를 구해서 항상 안주머니에 품고 다녔던 그녀는 언제라도 결심이 서면 죽음을 선택하리라는 독기로 위험천만한 지난 한 해를 용케 버텨왔던 것이다. 그러던 중 바로 며칠 전 금지옥엽 집안의 장손의 돌잔치가 치러졌고 잔치 음식 준비와 손님 시중에 설거지까지 도맡아 하면서 그녀는 미어지는 설움에 쏟아지는 눈물을 남몰래 수습해야만 했다. 집안의 경사에 함께 진심으로 기뻐할 수 없는 용렬하고 비루한 자신이 한탄스러웠다. 하염없는 눈물로 얼룩졌던 이 날은 지금까지의 그녀 인생 중에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기도 했겠지만, 어쩌면 새로운 전환점이 되는 굴곡진 하루였을지도 모르겠다.
영영 남들 같은 가정을 이룰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절망감이 그녀를 점점 궁지로 내몰아 갔다. 자식을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설령 남편과 이혼을 한다 한들 그녀는 갈 곳이 없었다. 나라 법에 이혼이라는 제도가 있었지만, 이혼은 이 시대의 평범한 여자로서는 감히 생각조차 어려운 주홍글씨였다. 이혼을 통해 그녀가 보장받을 수 있는 삶이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버림받고 굴레를 쓰고 쫓겨나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이렇다 할 경제력도, 자립할 기술조차도 없는 무능한 그녀는 혼자서 이 세상을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그녀는 극단적인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는 자신의 현실이 너무나 두려웠다. 삶의 끈을 놓아 버릴 용기가 조금이라도 있었더라면, 벌써 단장(斷腸)을 끊는 핏빛 구토로 오열하며 한 많은 이 세상을 떠나가 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천만 다행스럽게도 그녀는 아직 죽는 것이 더 두려웠다.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운 그녀는 새벽 여명이 밝아 오자, 이대로 인생의 패배자로 남을 수 없다는 오기로 홀연히 일어섰고 마침내 어떻게든 살아야겠다는 희망에 문을 두드렸다. 인력으로 안 된다면 귀신에게 빌어서라도 자식을 얻어야겠다는 굳은 결심으로 그녀는 서둘러 외출을 준비했다. 물론 그때의 그녀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녀가 오늘 만나게 될 인연에 대해 …. 그리고 다가올 운명에 대해서 ….
#3. 봄_이별 그리고 만남
그래서 봄이던가. 캄캄한 겨우내 묻어둔 씨앗의 눈이 대지를 뚫고 나와 세상 빛을 처음 본다 하여 봄이던가. 회색빛 감춰둔 만상만물(萬象萬物)이 자연으로 드러내는 그 빛색을 초면(初面)하여 봄이던가.
처음 마주 보는 만남이요, 희망의 빛이다. 이별은 곧 푸르디푸른 관광(觀光)을 떠난다. 재회를 약속하는 손 흔드는 뒷모습 … 낯선 그 얼굴 잊지 않으려 그리고 그리다 그리움으로 남을 … 그래 봄이던가.
그해 봄은 그렇게 빛으로 다가왔다. 앞마당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낮은 돌담을 따라 소박하게 가꿔진 화단에는 영산홍이 듬성듬성 터질듯 만개하여 봄빛은 진분홍 채색으로 절정을 이루었다. 5월 초순의 햇빛 좋은 오후. 귓전으로 불어넣는 포근한 봄바람의 숨결도, 향기 담뿍 머금고 꽃잎으로 흩어지는 봄밤의 정취도, 매년 보는 봄은 다르지 않건만, 그해만큼은 감흥을 선사해주지 못했다. 그녀는 이 봄을 잊은 듯했다. 며칠 전부터 기다림과 설렘으로 온종일 조바심치던 그녀는 주인집 전화벨 소리에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통신이 보편화하지 않은 그 시절, 인편이 아니면 그나마 전화가 있는 주인집을 통해서야 겨우 소식이란 것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소식이 전해진 것은 다름 아닌 어린이날 아침이었다. 바로 어제, 늦은 새벽녘에 여아를 순산했다는 내용과 이틀 후에 일러준 병원으로 오라는 전갈이었다. 전화를 끊고 그녀는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 심장 박동을 가라앉히려 냉수를 한잔 마시고는 길게 심호흡을 했다. 그녀는 이미 모든 것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마친 상태였고 이제 이틀만 기다리면 된다며 마음을 다잡고 위로했다. 몇 달 전 그녀가 남편에게 양자를 들이겠다는 말을 꺼냈을 때 그의 반응은 의외로 담담했다. 자식을 보지 못하는 아쉬움에 밖으로 돌기는 했지만, 그도 내심 이혼을 원한 것은 아니었다. 양자를 들여서라도 마음을 다잡고 안정된 가정을 꾸려보고 싶었던 마음은 그녀와 같은 것이었다. 선뜻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완강히 거부하지 않는 남편의 태도에 용기를 낸 그녀가 이 사실을 시댁과 친정에 알렸고 다행히 이들 부부의 헤어짐을 원하지 않는 가족들의 무언의 동의 속에 드디어 그녀의 바람대로 자식이라는 것을 얻게 된 것이다. 비록 자신의 속으로 낳은 아이는 아니지만, 난생 처음 그녀도 엄마가 된다는 사실에 기뻤고 감사했다. 이 아이로 인해 부부가 가정을 지킬 수 있게 되었고 이 아이로 인해 그녀는 더 이상 죽음을 생각하지 않아도 되었기에 … 그녀는 생각할수록 그 아이가 고맙고 애틋했다. 아이의 출생일을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며 신생아를 키울 갖가지 물건들을 마련하느라 이리저리 발품을 팔며 들뜬 나날을 보내온 그녀였다. 곧 그녀의 딸이 될 그 아이를 맞이할 준비로 가슴 설레고도 분주한 이틀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녀가 아침 일찍 친정 엄마를 대동하고 전화로 알려준 산부인과를 찾았다. 산모 회복실의 문이 열리자 긴 머리를 곱게 틀어 올린 산모가 아이를 등지고 돌아누워 있었다. 세상에 나온 지 3일밖에 되지 않은 갓난 여아는 들릴 듯 말듯 작고 가는 호흡을 고르며 세상 모른 채 잠들어 있었고 인기척에 반듯이 일어나 앉은 산모가 면식이 있는 두 모녀를 보고 깍듯이 인사를 했다. 그녀와 산모의 세 번째 만남이었다. 첫 번째 만남은 큰 마실 상섭이네 집 마루에서였고 두 번째 만남은 복중의 아이를 양자로 들이겠다고 합의했던 날이었다. 아마 태어난 아이를 사이에 둔 오늘의 이 만남이 세 번째이자 또한 기구한 두 사람 인연의 마지막 날이 될 것이다. 수명이 다 된 배터리처럼 인연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은 산모와 신생아도 마찬가지였다. 모녀라고 하기에는 참으로 짧았던 10개월 하고도 3일간의 처연했던 연(緣)이 잠시 후면 끊어질 테니까, 아이에게 마지막 젖을 물리며 산모는 그저 잘 키워 달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모질게 참아왔건만 고개를 숙인 산모의 어깨가 심하게 들썩인다. 아이의 존재가 확인되고부터, 그리고 그녀의 자식으로서 키울 수 없음을 인식하게 된 순간부터. 아이와 뱃속의 열 달을 함께하며 이미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울고 또 울었겠지만, 그녀의 눈물은 아마도 평생을 마르지 않으리라. 산모의 마지막 수유가 끝나자마자 곧이어 그녀가 집에서 준비해간 새 포대기에 아이를 싸서 조심스레 안았다. 새털처럼 가벼운 갓난 딸아이가 처음 그녀의 품으로 안겨 들어왔다. 첫 대면의 감격과 기쁨으로 여인은 목이 메었다. 그리고 누군가는 역류하는 슬픔에 목이 메어 왔다. 희비가 교차하는 순간, 그들의 운명도 그렇게 엇갈렸다. 모태로 키운 열 달. 어미의 몸에서 이제 겨우 사흘 된 벌건 핏덩이가 떨어져 나가고 있었다. 모정을 쏟아 부을 자식을 선사받은 한 여인에게는 감동과 희망의 시작으로, 같은 순간이 또 다른 여인에게는 영원히 비통한 시간으로 멈춘 채 … 끝없이 반복되는 회한의 기억 속에 갇혀버린 형벌과도 같았다. 쇠말뚝이 박힌 가슴에서 벌건 선혈이 철철 흐르고, 살덩어리가 찢겨져 나가는 듯한 고통 속에서도 여인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공허와 상실로 굳어버린 듯 멍하니 … 그녀는 남의 품에 안겨 잠든 자신의 분신을 바라보며 그저 소리 없이 절규했다. 이제 품에서, 눈에서 떠나보내야만 하는 이 딸아이. 운명에 쫓기다시피 내몰린 막다른 길에서 맥없이 놓아버린 그녀의 피맺힌 자식이었다. 작별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벌겋게 부어오른 두 눈 사이로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훔치다가 급기야 터지는 울음을 수건으로 틀어막는 가련한 여인의 통곡을 애써 뒤로 하고 모녀는 서둘러 병원을 빠져나왔다. 아이를 안고 얼떨떨한 그녀도, 그녀의 모친도 얼굴은 온통 눈물로 뒤범벅이 된 채 흐린 시야로 간신히 택시를 잡아 세웠다. 찢어지는 생이별과 이 새로운 만남을 아는지 모르는지. ‘분리되는 두려움’이란 무의식만을 간직한 채 아이는 그저 깊은 단잠에 빠져 좀처럼 눈을 뜨지 않았다. 기적과 같이 그녀에게로 와준 이 갓난쟁이의 존재가 그저 신기하기만 한 두 모녀는 집으로 향하는 내내 잠든 딸아이의 얼굴만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달리는 차창 너머 5월의 부드러운 햇살이 창가로 스미어 들어와 애틋한 세 모녀를 따뜻하게 비추고 있었다.
#4. 여름_회상 둘
깊고도 짙푸른 동해바다 심연(深淵)에는 진실로 검푸른 용(龍)이 굽이치며 살고 있을까? 달려가는 버스 차창 밖으로 태종 무열왕의 해저능이라는 대왕암을 지나치며 그녀는 생각했다. 죽어서도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대왕의 꿈’이 깃든 그곳은 물론이거니와, 신화나 야사(野史) 속 기이한 서사의 중심에는 어김없이 용이라는 신물(神物)이 등장했고, 그 배경의 대부분은 동해 바다였다. 여하튼 너무나 깊어서 아무도 그 속을 가늠할 수 없기에 과연 바다 속에 용이 살고 있는가에 대한 진실은 알 수 없지만, 동해는 그렇게 비밀의 시간들이 녹아든 푸른 신비를 간직한 채 … ‘대왕의 다짐’처럼 묵묵히 반도의 등줄기를 품어 나라를 지키고 있었다. 어느 틈에 푸른 동해 바다에 용해된 그녀. 용궁을 자유롭게 유영하며 바다 속 거대한 용의 등에 올라타기도 했다가 때로는 천년 묵은 늙은 거북의 등짝으로 갈아타기도 하며 아득한 시간을 달려가고 있었다. 아쉽지만, 어느덧 그 흥미진진한 해저 용궁 탐험도 상상의 나래를 접어야 했다. 그녀가 탄 직행 버스가 목적지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버스로 대 여섯 시간을 달려 도착한 그곳은 동해 안의 작은 어촌 마을이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짭조름하고도 비릿한 바다향이 코끝을 스쳤다. 7월 한낮의 여름 뙤약볕에 그녀의 머리는 뜨끈했고, 부신 눈을 찡그려야 했지만, 해안가에 가까워질수록 소금기 머금은 시원한 해풍이 마중 나와 주어 그녀의 후덥지근한 체열을 식혀주었다. 작은 선착장 너머 아담한 포구 끝에 하얀 등대가 촛대처럼 우뚝 솟아 있다. 쉼 없이 오가는 파도 소리 위로 저공비행으로 끼룩대는 괭이갈매기, 수십 개의 전등을 매단 오징어잡이 어선들의 제각기 통통거리는 엔진 소리만으로도 그녀는 짙은 항구의 정취를 충분히 만끽할 수 있었다. 선주들과 상인들 간의 시끌벅적한 흥정이 이루어지는 어물 직판장을 지나자 그녀의 걸음이 조금씩 빨라지기 시작했다. 아담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조용한 촌락의 입구 저만치 누군가 그녀를 향해 환하게 손짓하고 있었다. 그녀의 곱던 엄마, 그새 많이도 늙어버린 엄마가, 그녀를 마중 나와 있었다. 모녀가 손을 잡고 나란히 걷고 있는 조용한 골목 낮은 담장 너머로 동해 어촌만의 진풍경이 엿보인다. 너른 마당 가운데 대꼬챙이에 끼워 말린 꾸덕꾸덕한 오징어를 늘여 펴는 작업으로 마을 아낙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물기 마른 그녀의 엄마도 저들처럼, 짠바람 쐰 반 건조 오징어를 한 축 두 축 갈무리하듯, 그렇게 이곳에서 십여 년 세월들을 엮어왔을까? 거친 손끝으로 전해지는 굴곡진 엄마의 삶이 그녀의 목구멍을 타고 뜨끈하게 밀려 올라왔다. 이럴 때 눈언저리가 덥혀지고 습해지는 걸 방치하면 코끝까지 찡해져서 곧 눈물샘에 모여 맺히고 급기야 방울져 흐르기 마련이다. 그녀의 많은 경험으로 미루어 보건데, 그럼 수습하기엔 이미 늦다. 눈물이 맺히는 걸 들켜버리면 엄마도 금새 그녀와 같은 안구 증세를 나타낼 테니까. 눈물은 전염이 빠르다. 그녀는 오늘 각별히 조심해야 했다. 더 이상 엄마를 울려서는 안 된다고 그녀는 다짐했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녀가 수도를 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엄마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대학을 졸업하고 안정된 직장에 다니며 좋은 사람 만나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여느 부모들처럼 그녀에 대한 엄마로서의 바람과 기대는 소박했다. 어릴 때부터 다방면에 재주가 많았던 큰 딸에게 내심 기대가 컸고 특히나 마음으로 믿고 의지하던 자식이었다. 그렇게 믿었던 딸이 어느 날부터 종교에 심취해서 부모를 속이고 수도생활을 해왔다는 데 대한 배신감과 원망으로 그녀는 치를 떨었다. 엄마의 악에 받힌 고함 소리가 온 동네를 떠나가도록 쩌렁쩌렁 울리던 날, 딸은 허공으로 퍼져나가는 엄마의 핏빛 절규가 소름끼치도록 무서웠다. 극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뜻을 꺾지 않는 딸자식을 보면서 그녀는 더 이상 가정을 지켜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젊은 시절부터 남편으로부터 받은 마음의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았고 오히려 세월이 흐를수록 그녀는 남편을 용서하지 못했다. 딸자식들 때문에 참고 살아온 지난 세월이 억울했지만, 그나마 자식들이 결혼을 할 때까지만 가정을 지키겠노라고 마음으로 다짐하고 있던 그녀에게 딸의 수도는 한순간에 이혼을 결심하게 되는 계기로 작용했다. 그녀는 곧 집을 떠나버렸고 얼마 후 법적인 이혼 절차까지 마치고는 30년 가까이 지켜오던 가정을 해체시켰다. 그 후로 몇 년의 시간이 흘러 다시 만난 딸과 극적으로 화해가 이루어졌고 비로소 그녀는 심신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듯이 그녀도 딸의 신념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돌이켜 보면 딸의 종교문제가 그녀로 하여금 가정을 포기하게 만든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을 누구보다 그녀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었다. 여전히 딸의 수도생활이 마땅찮았지만 그녀는 이미 딸의 삶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으로 마음을 정리한지 오래였다. 세월은 흘러서 그녀도 늙어가고 그녀의 딸도 나이를 먹어가는 현실. 그리고 때가 되면 알게 되는 진실들. 세상에 영원한 비밀이란 없었다. 이미 무언가를 알고 있는 듯한 딸이 오늘 먼 곳까지 자신을 찾아 온 이유를 그녀는 짐작하고 있었다. 딸이 자신의 출생에 대해 물어 오리라는 그녀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오리라고 생각했지만, 딸아이가 받을 충격이나 고달프기만 했던 자신의 삶을 반추해야 하는 고통이 두려워 쉽게 말문이 열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딸도 진실을 알 나이가 되었다는 생각에 그녀는 천천히 지난 기억을 더듬어 과거를 회상하기 시작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무당집을 찾아갔던 그날. 그녀는 이제 막 점사를 마치고 어두운 표정으로 방을 나오는 한 중년의 부인과 마주쳤다. 곱게 차려입은 한복치마 위로 드러나는 불룩한 실루엣과 그녀의 무거운 걸음 뒤태가 언뜻 보기에도 임산부임을 눈치 챌 수 있었다. 그 짧은 첫 만남은 묘한 여운으로 남았고 그녀는 상섭 엄마의 입을 통해 비로소 그 여인에 대한 딱한 사정을 들을 수 있었다. 그 여인이 지금 잉태한 태아의 아버지는 그녀가 다니던 어느 병원의 의사였는데 불행하게도 가정이 있는 남자였다는 것에서부터 이미 순탄치 않은 아이의 운명은 예고되고 있었다. 게다가 청상에 혼자가 된 여인은 슬하에 아들과 딸을 두고 있는 처지였기에 그녀는 철든 자식들에게도 떳떳하지 못했다. 낙태가 흔하지 않았던 그 당시로서는 아이를 낳는 것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기도 했지만, 그녀는 사방이 꽉꽉 막혀버린 듯한 자신과 아이의 기구한 운명을 풀어나갈 방법을 찾기 위해 물어물어 그날 상섭이네 점집을 찾은 것이었다. 무당은 아들이라면 어떻게든 아버지 그늘에서 자랄 수 있지만, 딸이라면 아이의 아버지가 받아들이지 않으리라는 점괘를 내놓았는데 안타깝게도 태아는 딸일 것이라는 예언을 덧붙였다. 무당은 모녀지간의 인연이 없음을 단언하며 남의 집에 입양 보내는 방책을 제시하기도 했지만, 여인은 쉽게 내키지 않았다. 그녀는 천만 다행으로 무당의 예언이 빗나가서 부디 태아가 아들로 태어나주어 그나마 피붙이의 손에 키워지길 진심으로 바랐다. 여인은 믿고 싶지 않은 예언보다 불확실한 미래에 그래도 일말의 희망을 걸고 집으로 돌아갔다. 여인의 사연을 들은 그녀는 그때 어떤 운명적인 힘에 강하게 끌리고 있음을 느꼈다. 자식이 없는 그녀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무당은 문득 신기가 올랐는지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갑자기 점을 치기 시작했다. 무녀는 확신에 찬 어투로 태아는 딸아이가 틀림없을 것이며 그녀의 시댁, 친정 집안과도 인연이 깊어서 그 여아를 데려다 잘 키우면 반드시 집안에 복을 가져다주리라는 뜻밖의 점괘를 내놓았다. 조심스레 마음이 동한 그녀는 그 여인과의 만남을 주선해주도록 부탁했고, 그렇게 두 여인들은 다시 운명적인 만남을 가졌다. 자식이 없는 그녀의 사정을 들은 여인은 태어난 아이가 정말 딸이라면 그녀의 집에 양녀로 보내기로 했고 다시는 그 아이를 찾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다. 마침내 예언대로 딸아이가 태어났고 그 집안과 연이 맺어졌다. 부부는 노심초사 예민한 갓난아이 키우기에 공을 들였고 양녀가 된 지 백일이 되는 날 그들의 호적에 정식으로 이름을 올렸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나 봄이 되고 아이의 첫돌이 될 무렵 부부로서는 생각지도 못했던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뜻밖에도 그녀에게 태기가 있었고 7년간 그렇게도 생기지 않았던 자식이 그해 갑자기 생겨버린 것이었다.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대반전이었다. 기쁨에 들뜬 집안의 어른들은 삼신이 샘을 내서 급히 자식을 점지하였다는 등 갖가지 추측을 내놓았지만, 그녀는 위태롭던 자신을 구해준 이 딸아이야말로 부부의 오랜 소망을 이루게 해준 진정한 복덩어리라 굳게 믿었다. 그렇게 해가 바뀌어 부부의 한 점 혈육으로서의 딸자식이 태어났고 … 그렇게 귀하디귀한 둘째 딸과 더불어 그녀는 슬하에 두 자매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사랑으로 키워 나갔다. 열심히 두 딸을 키우며 힘든 순간도 많았지만, 그녀는 딸들로 인해 행복했던 기억들을 떠올리며 미소 지었다.
엄마의 회상이 여기서 멈추었다. 엄마는 그녀에게 단호히 말했다. 비록 자신의 속으로 낳지 않았지만, 한 번도 그녀를 남의 자식이라 생각한 적이 없었다고. 그리고 언제나 자랑스러움과 감동을 주는 자식이었기에 믿음직스러웠고 그것이 고마웠다고 그녀에게 고백했다. 엄마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그녀는 그저 감사함으로 목이 메어왔다. 맺혔던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두 모녀가 부둥켜안고 흐느껴 울었다. 비록 그녀를 낳아주고 길러 준 부모가 각각 달랐지만, 모두 그녀를 위해 희생하고 아낌없이 베풀어준 고마운 분들이었다. 오직 그녀의 성공을 위해 보이지 않는 많은 공력들이 동원되고 있었음에 감사하고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녀는 분명 축복받은 인생임에 틀림없었다. 양가 집안의 모든 조상들이 그녀를 돕고 있을 터이니 말이다. 그녀는 이 모든 이들에게 보은해야 함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반드시 성공하여 이 은혜를 갚으리라 마음 속 깊이 다짐하고 다짐했다. 모녀가 두 손을 꼭 잡고 함께 누워 잠든 깊은 밤. 바다 멀리 등대의 불빛이 검푸른 바다를 비추었고 동해의 여름밤이 기울어 가고 있었다.
#5. 가을_재회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母國語)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 김현승 詩_<가을의 기도> 中에서
가을이 깊어만 가는 10월 어느 날 새벽녘에 그가 낯선 그녀에게 물었다. 진실로 전생이 있는 거냐고? 만약 있다면, 자신은 어떤 죄를 지었길래 아무도 자신의 옆에 남아있지 않고 모두 떠나버린 거냐고? 그의 질문에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봇물 터지듯 쏟아내는 그의 가족사와 그가 겪은 고통의 시간들에 대해 그녀는 그저 진심을 다해 들어줄 뿐이었다. 그에게는 지금 아프고 아파서 터질 것 같은 가슴 속의 이야기를 들어줄 그저 누군가가 절실히 필요했으니까. 그가 세상에 나온 순간부터 그의 ‘엄마’는 이 세상에 없었다. 그가 이 세상에 태어나 경험한 모정(母情)의 순간은 싸늘하게 식은 채 흩어졌고, 이미 말라버린 젖샘 앞에서 채워질 수 없는 갈증을 모질게 참아내는 것으로부터 그의 외롭고 고단한 인생은 시작되었다. 그에게 있어 ‘엄마’라는 말은 이 생(生)에서는 모체(母體)에 닿지 않을 소리요, 그의 목구멍에서 뜨끈하게 막혀버린 진공 상태로 제 아무리 불러도 대답으로 돌아오지 않을 울림이었다. 이별로 시작하여 또다시 그의 이별은 계속되었다. 풋풋한 젊은 날에 처음 만났던 사랑하는 여자를 하루아침에 속절없이 잃어버리면서 그의 인생이 거센 파랑에 요동치며 흔들리기 시작했다. 모든 삶의 행로가 꼬여버릴 만큼 이 세상을 다 잃은 듯한 슬픔의 나락으로 떨어져 긴 방황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무렵, 그를 끔찍하게 아끼던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고, 손자로서 임종을 지키지 못한 불효에 대한 죄책감으로 그의 가슴에 또다시 피멍이 들었다. 이어서 30년 지기 죽마고우들이 차례로 돌연사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심지어 그는 그것 또한 자신의 비운(悲運)으로 인해 퍼져가는 불행이라는 강박증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불안감에 설상가상으로, 간암 말기 판정을 받고 손써볼 틈도 없이 부자 간의 이별을 쓸쓸히 준비하는 홀아버지의 뒷모습에 그는 또다시 망연자실했다. 아버지에 대한 그의 원망도 애증도 … 하나밖에 없는 아들 걱정에 죽음 앞에서조차 노심초사하던 애달픈 부정(父情) 앞에 무릎을 꿇었고 두 부자는 그렇게 화해했다. 얼마 후 그의 아버지는 마치 깊은 잠에 든 것처럼 평온한 모습으로 밤사이 그렇게 그의 곁을 떠났다. 또다시 그는 사랑하는 이들을 속수무책 떠나 보내야 하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안고 홀로 웅크린 채 빛을 등지고 돌아앉았다. 그의 불행이 아직 끝나지 않았던 것일까? 아버지의 상을 치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에게 남은 마지막 울타리마저 덧없이 무너졌다. 핏덩이 때부터 그를 키워주신 할머니마저 암으로 세상을 떠난 것이었다. 죽는 순간까지 할머니의 마음에 걸리는 것은 오직 남은 손자가 받을 엄청난 고통의 무게였기에 눈을 감는 순간까지 투병을 숨겨왔다는 것이 그의 마음을 더욱 발기발기 찢어지게 했다. 그렇게 할머니는 회한을 남기고 그를 홀로 남겨둔 채 세상을 떠났다. 그의 곁에는 이제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사랑하는 친구와 가족을 모두 잃고 지독한 외로움과 엄습해오는 두려움에 황급히 도망쳐온 그가 조금 면식이 있을 뿐인 그녀에게 다시 물었다. “… 나는 앞으로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가야 되지요? ….” 그녀는 말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 오고 저 세상으로 가고 있지요. 태어난 사람들은, 그리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 여기서 해야 할 일이 있기에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겠지요. 크고 작은 사명을 맡아 각자가 제 역할을 하며 살고 있는 것이 또한 삶이겠지요.” 그의 침울했던 표정이 어느새 반듯해졌다. 질문이 오가고 그녀와의 대화가 깊어질수록 그는 말할 수 없는 편안함과 안도감을 느꼈고 어두웠던 안색에는 차츰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장시간의 이야기 끝을 마무리하며 그녀가 그에게 말했다. “우선 본의 아니게 당신의 속 깊은 이야기를 듣게 된 이 인연에 감사합니다. 만나서 반가워요! 그리고 기운 내세요!! 제가 항상 응원할께요!!!” 그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고 그런 그의 얼굴을 보는 그녀의 마음도 밝아졌다. 후일의 만남을 기약하고 돌아서는 그의 뒷모습 …. 그녀는 상하의 흰 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그의 뒷모습이 왠지 낯이 익었다. 그때 문득 그녀의 입가에 알 수 없는 웃음이 번져나갔다.
가을의 끝자락에서 그들은, 먼 시간으로부터의 여행에서 깨어나 다시 만났다. 서로가 서로를 잊지 않으려 그리고 그립던 그 얼굴을 그들은 푸릇한 어둠을 사이에 두고도 알아보리라.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영겁의 시간을 흘려보내며 또다시 초면(初面)하는 봄을 맞으면 … 언제나 그들은 이 가을의 재회를 기약했었다. 약속은 단단한 믿음으로 마침내 지켜졌고, 비옥한 시간 동안 가꾸어 온 지극한 성심(誠心)으로 … 이제 가장 아름다운 열매로서 천지(天地)에 보답하리라.
바람이 선선한 어느 가을 저녁, 하얀 두루마기를 입은 그와 빛 고운 한복으로 갈아입은 그녀가 주과포(酒果脯)를 정성스럽게 차려 올린 치성 상 앞에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서 있다. 향불이 피워지고 납폐지가 소상되고 집례자의 구령소리에 맞추어 그와 그녀가 가을 세상 절 법에 맞추어 상악천권 하습지기의 배례를 올린다. 엄숙히 바닥에 엎드린 그의 앞에서 법좌(法座)한 그녀의 낭랑한 주문 소리가 방안에 고요히 울려 퍼지고, 양위 상제님과 천지신명께 올리는 그와 그녀의 간절한 심고(心告)는 그들의 심령(心靈)을 통해 마치 구천(九天)에 닿은 듯 … 양 촛대 위 하얀 촛불은 은은한 오색 후광으로 둥그러니 빛을 발하고, 방안은 온통 맑은 향내로 가득했다. 그와 그녀의 이마에 구슬 땀방울이 흘러내리고, 그들의 얼굴에는 편안하고도 잔잔한 미소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6. 기도(祈禱)
대월(對越) 상제(上帝)의 시간 앞에 서서 오늘도 내 마음의 상자 열어 닦는다. 곧은 심지(心志) 밝혀 초 하나 켜고 향불이 흰 연기 품어 천상에 오르면 좌상(座上)에서 합장하고 허리 숙여 절을 하니 십오진주 여합부절(如合符節) 안심안신(安心安身) 절로 된다. 아홉 장 납폐지를 촛불 붙여 소상하며 소정(所定)의 주문을 지성으로 봉축한다.
오늘도 상제님 가까이 모시는 정신을 단전에 연마하여 정기신(精氣神) 합일되는 심령(心靈)의 통일 위해 부족한 이 정성과 공경 다해 일념을 이루면 어느새 곧추 세운 등줄기로 땀방울이 흐르고 보은하는 마음 먼저 상제님께 감사하면 도문소자 소원성취 또 한 걸음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