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제께서는 어려서부터 성품이 원만하시고 관후하시며 남달리 총명하셔서 뭇 사람들로부터 경대를 받으셨도다. 어리실 때부터 나무심기를 즐기고 초목 하나 꺾지 아니하시고 지극히 작은 곤충도 해치지 않으실 만큼 호생의 덕이 두터우셨도다. (행록 1장 11절)
위의 구절은 우주의 주인이신 상제님께서 광구천하(匡救天下)하시고자 천하를 대순(大巡)하시다가 인간 세상에 강세하신 후의 유년 시절을 담고 있다. 여기서 인간의 몸으로 오신 상제님의 성품이 처음 드러나는 부분이 ‘호생의 덕’이다. 이 세상에서 자식을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분은 바로 부모님이듯, 이치로써 만물을 낳게 하신 상제님께서 만물을 대하는 첫 번째 마음 또한 생명을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호생의 덕이다. 또 상제님께서는 종도들에게 백성을 살리고 병든 세상을 고치는 것[제생 의세(濟生醫世)]은 성인의 도이니 이러한 대인의 공부를 하는 자는 마땅히 호생의 덕을 갖추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01 세상 사람들을 살리고자 하는 덕성을 쌓는 것은 도통군자를 지향하는 대순진리회 수도인들이 갖추어야 할 일이다. 원래 호생지덕(好生之德)이란 말은 ‘살아 있는 것을 사랑하는 덕’이라는 말로, 생명을 아끼고 사랑하는 덕성을 의미한다. 이 말은 『서경』의 「대우모(大禹謨)」에서 신하인 고요가 순임금에게 올린 다음의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제왕의 덕에 허물이 없으시고 아래에 임하여 간소하게 하시고 사람들을 관대하게 대하십니다. 벌을 주되 그 자손에게까지 미치지 않게 하시지만, 상을 주는 일에는 그 후손에게까지 미치게 하십니다. 실수로 저지른 죄는 잘못을 크게 묻지 않지만, 일부러 저지른 죄는 작은 일도 처벌하십니다. 죄가 의심스러우면 가볍게 처벌하시지만, 공은 두텁게 상을 내리십니다. 무고한 사람을 죽이기보다는 차라리 법을 지키는 자세를 굽히는 길을 택하시니, 제왕의 호생지덕이 백성들의 마음에 스며들어 관리들을 거스르지 않아도 되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유래한 호생지덕은 인애롭고 자비로워서 차마 생명을 죽이지 못하는 미덕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된다. 특히 사형에 처할 죄인을 특사하여 살려 주는 제왕의 덕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생명이 있는 것을 아끼고 사랑하는 데서부터 훌륭한 정치가 시작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호생의 덕’이라는 말은 타고난 인간의 양심 속에 내재된 근본적인 마음의 덕으로서, 모든 생명을 편벽됨이 없이 두루 사랑하여 아끼고 보살피며 살려 나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마음은 우리 민족이 간직해온 사상적 특징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시원에 대한 기록인 단군의 신화에서는 신이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고자 하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정신이 잘 나타나 있다. 사실 신화란 허무맹랑한 허구적 이야기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 내용을 잘 살펴보면 그 민족이 꿈꾸는 이상적인 세계가 그려져 있고 그들이 중시하는 고유한 사상이 나타나 있다. 따라서 단군신화를 통해 우리 민족이 생명과 인간을 소중히 여기고 다툼 없이 인류 모두를 잘 되게 하려는 의식을 엿볼 수 있다. 여기서 모든 사람 나아가 모든 생명을 소중히 하는 마음이 바탕이 된다고 볼 때, 우리 민족의 호생의 덕에 대한 강한 의식은 그 역사적 뿌리가 깊다고 볼 수 있다. 모든 사람이 타고난 양심 속에 내재한 호생의 덕을 자각하고 아울러 민족 고유의 정체성으로 인식해 왔다는 자긍심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맹자는 인간의 성품이 선(善)하게 타고났다고 말하면서 선한 성품을 인의예지 4덕으로 제시하였다. 공자도 『논어』에서 인(仁)을 애인(愛人)이라 하여 사람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라고 하였다. 이때 인은 측은지심(惻隱之心)을 통해 알 수 있는데 어린아이가 우물가로 기어가는 것을 보고 측은한 마음이 들어 아이를 구하러 달려가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의 마음을 곧 호생의 덕이라 볼 수 있다. 인성의 본질은 바로 양심이고 이 양심에는 어질 인(仁)의 품성이 있다. 사람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인 인은 나아가 모든 생명을 사랑하고 살리고자 하는 호생의 덕으로 확대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호생의 덕은 현시대의 황금만능주의에 의한 개인적 인간 소외감과 생명경시, 사회적 병폐들을 해소하는 데 필연적으로 요청되는 덕목이라 하겠다. 상제님께서는 비겁에 쌓인 신명과 재겁에 빠진 세계창생을 널리 건지시려고 순회주유하시며 대공사를 행하셨다. 그리고 “이제 온 누리가 멸망하게 되었는데 모두 구출하기 어려우니 어찌 원통하지 않으리오.”02 하시고 크게 슬퍼하셨다. 이것이 상제님께서 광구천하 하여 구제창생하시고자 하는 호생지덕의 마음인 것이다. 도전님께서는 “포덕은 『전경』을 바탕으로 하여 상제님의 대순하신 광구천하의 진리로 구제창생키 위한 대인접촉이다”03라고 말씀하셨다. 위의 말씀들은 구제창생이 곧 상제님의 큰 뜻이며, 대순진리회 도인들은 포덕천하로써 호생의 덕을 이루어 나간다는 의미로 보인다. 그러면 호생의 덕이 대순진리회 수도에서 갖는 의미를 살펴보아야겠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타고난 양심에 어진 성품이 근본이 되어 있고 이것이 호생의 덕과 상통한다고 보면 호생의 덕을 회복하는 것은 곧 우리의 양심회복을 의미하게 된다. 대순진리회는 안심(安心)·안신(安身) 이율령으로 수행의 훈전을 삼고 무자기(無自欺)를 근본으로 수도한다. 이는 모두 『대순진리회요람』에서 밝힌 대로 양심의 회복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다. 특히 훈회의 “마음을 속이지 말라”, “남을 잘 되게 하라”는 말씀과 수칙의 “무자기는 도인의 옥조니, 양심을 속임과 혹세무민하는 언행과 비리괴려를 엄금함.” 등도 결국 양심의 회복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따라서 호생의 덕에 대한 자각은 대순진리회 수도에서 기본 바탕이 되는 중요한 덕목으로서 안심·안신과 무자기, 훈회와 수칙을 지켜나가는 데 큰 힘이 되는 것이다. 대순진리회 수도에서 진정한 호생의 덕의 실천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니라 각자가 양심 속에서 이 덕을 잘 키워 사람과 생명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을 토대로 신조와 훈회, 수칙을 실천해 나가는 것이다. 나아가 상제님의 그 크신 호생의 덕을 본받아 모든 사람과 세상을 살릴 수 있는 상제님의 진리를 세상에 펴나가는 포덕천하일 것이다. 또한 포덕하는 과정에서 나의 덕은 상대를 통해 다시 드러나기 때문에 상대의 반응과 목소리에 차분히 귀 기울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자신의 마음과 행동의 과부족을 살펴 고쳐 나갈 수 있게 되어, 진정으로 상대를 살려나가는 포덕이 될 것이다. 이처럼 양심 속에서 호생의 덕을 충분히 발휘하여 상제님의 광구천하의 뜻을 받들어 나갈 때 현대의 병폐들을 궁극적으로 해소할 수 있고 사람과 세상을 살릴 수 있는 도통군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소중한 이에게 가장 소중한 물건을 선물하듯이 소중한 사람들, 나아가 세계인류에게 상제님의 진리를 선물해야겠다. 모두가 일심지성(一心至誠)으로 포덕해 나가길 염원해 본다.
01 제생 의세(濟生醫世)는 성인의 도요 재민 혁세(災民革世)는 웅패의 술이라. 벌써 천하가 웅패가 끼친 괴로움을 받은 지 오래되었도다. 그러므로 이제 내가 상생(相生)의 도로써 화민 정세하리라. 너는 이제부터 마음을 바로 잡으라. 대인을 공부하는 자는 항상 호생의 덕을 쌓아야 하느니라. 어찌 억조 창생을 죽이고 살기를 바라는 것이 합당하리오.(교운 1장 16절) 02 행록 5장 24절. 03 대순진리회요람』, p.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