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어느 나라의 왕이 나라를 잘 다스리기 위해 세 가지 질문을 만들고 그 답을 찾기 위해 방을 붙였다.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 정확한 때와 가장 중요한 일을 가려내는 방법 그리고 왕이 곁에 두어야 할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가려내는 방법을 알려주는 이에게는 큰 상을 내리겠노라.” 온 나라의 수많은 학자와 장군 등 유능한 인재들이 왕을 찾아왔지만, 그들의 답은 각기 달랐고 왕은 그중 어느 하나도 동의할 수 없어서 아무도 상을 받지 못했다. 여전히 해답을 알고 싶었던 왕은 고심 끝에 나라에서 가장 지혜롭고 덕망이 높기로 소문난 은자(隱者)를 찾아가기로 했다. 은자는 지위가 높은 사람보다는 어려움을 겪는 백성만 만난다고 하기에 왕은 허름한 복장을 하고 호위병을 남겨둔 채 말에서 내려 은자를 만나러 갔다. 변장한 왕은 은자에게 세 가지 질문을 했는데 은자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깡마른 체구의 은자가 땅을 파는 것을 본 왕은 은자를 쉬게 하고 자신이 땅을 파기 시작하였다. 어느새 밭을 두 고랑이나 판 왕은 이마에 땀을 뻘뻘 흘리며 세 가지 질문을 다시 하였다. 그러나 은자는 답은 주지 않고 이제 자신이 땅을 팔 테니 가래를 달라고 하였다. 왕은 가래를 주지 않고 계속 땅을 팠다. 어느덧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였다. 조금씩 화가 나기 시작한 왕은 가래를 내려놓고 돌아간다고 하였다. 이때 은자는 무심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누군가 여기로 오고 있군요.” 왕이 뒤를 돌아보니 얼굴을 잔뜩 찡그린 남자가 피를 뚝뚝 흘리며 달려오고 있었다. 남자는 왕 앞에서 기절하듯 쓰러지고 말았다. 왕은 다친 그를 외면할 수 없어 그 사람의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 다음 날 아침 그 남자는 처음 본 왕(王)에게 용서를 구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당신에게 복수하기 위해 왔습니다. 당신은 내 형을 사형에 처하고 내 재산을 몰수했습니다. 저는 당신이 홀로 은자를 만나러 간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돌아오는 길에 죽일 작정으로 매복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하루가 지나도록 오지 않더군요. 결국, 나는 당신을 찾으러 이곳으로 오다가, 당신의 호위대를 만나 그만 상처를 입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간신히 도망치다 그만 당신 앞에 쓰러지고 만 것입니다.” 남자는 계속 말했다. “그런데 당신은 나를 구해 주었습니다. 당신이 아니었다면 나는 너무 많은 피를 흘려 그만 죽고 말았을 겁니다. 나는 당신을 죽이려 했는데, 당신은 나를 살려 주었습니다. 몸이 회복된다면 나는 당신의 충직한 신하가 되어 살고 싶습니다. 그러니 제발 용서해 주십시오.” 왕은 남자를 용서하고, 그가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게 조처를 해주며, 몰수한 재산도 돌려주겠노라고 약속했다. 그런 후에 밖으로 나오니 은자는 전날 파 놓은 고랑에 씨를 뿌리고 있었다. 왕은 이 지혜로운 은자에게 마지막으로 세 가지 질문을 해보기로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은자는 왕(王)이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이미 얻었다고 말하는 게 아닌가! “답을 이미 얻었다니,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왕이 물었다. “아직 모르겠소? 당신이 어제 나를 걱정하여 나 대신 고랑을 파지 않고 그냥 돌아갔다면 그 남자는 당신을 해쳤을 것이오. 당신은 죽어가면서 나와 함께 있지 않았던 것을 후회했겠지. 그러니 당신이 행한 가장 중요한 때는 바로 나 대신 고랑을 파기 시작한 그 순간이고,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나를 도와준 것이요. 나 덕분에 목숨을 구했으니 그때 가장 중요한 이는 바로 나였지.” 은자는 따뜻한 눈길로 왕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 이후도 생각해 봅시다. 남자가 우리에게 달려왔을 때, 가장 중요한 순간은 바로 당신이 그를 돌보아 주었던 바로 그때요. 당신이 그의 상처를 돌봐 주지 않았다면 그는 당신과 화해하지 못한 채 결국 죽었겠지. 그러니 당신이 그를 치료해 준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고, 그때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바로 그 남자였소.” 은자는 말을 이었다. “그러니 기억하시오. 어떤 일을 행하기 위한 정확한 때, 가장 중요한 시간은 바로 지금이오.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소유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기 때문이오. 가장 중요한 사람은 당신과 함께 있는 사람입니다. 지금 당신과 함께 있는 사람 외에, 다른 사람과는 그 어떤 일도 도모하지 못하기 때문이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당신과 함께 있는 사람에게 선행을 베푸는 일입니다.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난 유일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오.”
톨스토이는 그의 나이 70을 훨씬 넘은 1903년에 단편소설 『세 가지 질문』을 썼습니다. 이 작품에는 톨스토이 문학 인생의 전 과정을 조망해 볼 수 있는 인간의 삶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 원숙미가 느껴집니다. 그래서 『화』란 책으로 국내에 잘 알려진 베트남 스님 틱낫한은 이 작품에 대하여 “이건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경전”이라고 격찬하였습니다. 이 우화가 주는 교훈은 인간의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이 없이는 얻기 어렵습니다. 인간 개개인에게 ‘자기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때는 언제인가?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사람은 누구인가?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하는 세 가지 질문은 가장 궁금하면서도 중요한 질문입니다. 실제로 이와 같은 질문을 사람들에게 한다면 저마다 천차만별의 대답을 할 것이고 은자와 같은 대답을 할 사람은 아마 많지 않을 것입니다.
현대인은 너무나 많은 사람이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걱정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과거는 이미 지난 시간이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이며 우리가 소유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은 지금 이 순간입니다. 이렇게 너무도 간단한 진리 앞에 사람들은 과거와 미래를 시계추처럼 왔다갔다하느라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지 못합니다. 시간은 달리 실체가 있는 개념이 아닙니다. 웹스터 사전에 의하면 ‘시간은 과거로부터 현재를 거쳐 미래로 가는 크고 작은 사건들의 연속’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시간은 사건들의 연속체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 순간의 시간을 살아간다는 것은 과거와 미래를 의식하기보다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이 맞이하고 있는 사건, 즉 사람과 관계, 일로 어우러진 특정한 상황을 강하게 의식하고 그 속에서 성(誠)·경(敬)·신(信)을 다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지난 과거로 가서 성·경·신 할 수 없고 오지 않은 미래로 가서 성·경·신 할 수 없습니다. 오직 지금 이 순간에만 성·경·신을 다 할 수 있습니다. 도전님께서는 “성현으로 추존받은 옛사람은 성(誠)을 일생동안 값진 보배로 삼아 지성으로 진리를 수행한 분들이다.”라고 훈시하셨습니다. 성은 정기신(精氣神) 합일(合一)의 진성(眞誠)이요, 마음을 쉼과 틈이 없이 오직 부족함을 두려워하는 지극히 성실한 마음의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므로 매 순간, 매사를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임한다면 결국 전 생애가 성현과 같은 삶을 본받는 것으로 됩니다. 나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시간은 ‘지금 이 순간’입니다. 나에게 가장 필요한 사람은 지금 나와 함께 이 순간을 공유하고 있는 ‘바로 이 사람’입니다. 내게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여기서 나와 함께 있는 이 사람에게 ‘선을 베푸는 일’입니다. 지금 여기서 잠시라도 어떤 형태로든 나와 인연을 맺은 ‘남을 잘 되게 하는 것’이 매 순간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무자기를 통한 자기수행으로 언덕을 잘 가지고 척을 짓지 말며, 은혜를 저버리지 않고 남을 잘 되게 하여 세상에 상서가 무르녹는 지상천국을 건설하는 것이 우리 도인들이 지금 이 지구 상에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참고문헌 ·L. N. 톨스토이 저/ 장한 역, 『세 가지 질문』, 도서출판 비움, 2002. ·L. N. 톨스토이 저/ 글공작소 엮음, 『공부가 되는 톨스토이 단편선』, 아름다운사람들,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