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은 도를 닦는 근본이며 재물은 말단이라 하는데, 근본의 덕을 외면하고 말단의 재물에 마음을 쏟으면 시비와 쟁탈만이 조장될 뿐이다. -『대순지침』, 76쪽 -
가치관이란 사람이 자신을 포함한 세계나 어떤 대상에 대하여 가지는 평가의 근본적인 태도나 견해를 말한다. 이것은 일상생활에서 결정과 선택의 중요한 기준이나 근거가 된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개인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순자(荀子)의 말처럼 이러한 가치관으로서 개인의 이익은 고대로부터 인류의 삶의 중요한 동력이기도 했다. 이윤의 획득에 가장 큰 가치를 두고 있는 자본주의는 서구의 산업혁명 이후로 급속도로 발전하여 이제 극도의 정점에 이르렀다. 자본주의 경제체제 아래에서 재리(財利: 재물과 이익)는 사회적 가치관으로서 중대한 요소가 되었다.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 도인이 지키고 간직해야 할 가치관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해답이 ‘덕은 도를 닦는 근본이며 재물은 말단’이라는 위의 말씀일 것이다. 덕이란 인간의 심성에 속한 내재적 가치이기 때문에 추상적인 개념이다. 그 어원은 갑골문에서 비롯하는데, 국가적으로 중요한 통치자의 정치·군사·경제적 행위 전반을 지칭했다. 이 의미는 좀 더 추상화되어 ‘마땅히 따라야 할 행위의 원칙’이라는 개념으로 발전하였다. 그리고 어떻게 이러한 행위가 지속해서 가능한지에 대한 관심에서 그 행위의 근원으로 들어감으로써 점차 ‘바람직한 성향(심리상태), 자질, 능력’이란 의미로 확장되었다.01 곧 덕은 올바르고 선하게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일을 지키는 것이며, 인(仁)·의(義)·예(禮)·지(智)·온공(溫恭)·겸손(謙遜) 등등의 도덕적 성품(의무)을 뜻하는 의미로 일반화되었다. 재물은 사람이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는 물건을 뜻하며 주로 인간이 의식주를 비롯한 삶을 영위해나가기 위한 효용을 그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인간의 욕망이 다양하게 표출되면서 희귀성 등에 의해 그 가치가 평가되어 재물로 쓰이기도 한다. 이러한 물건의 가치척도는 암묵적인 사회적 약속으로 이루어지는데, 황금이나 다이아몬드와 같은 것이 그것이다. 이들은 하나의 광물에 불과하지만 값비싼 보석으로 대접받고 있다. 오늘날은 화폐를 재화의 교환 및 유통의 수단으로 하기 때문에, 비록 종이나 쇠붙이에 불과하지만, 돈이 모든 재물의 대명사가 되었다. 인간의 삶에 필수적인 이 두 가치에 대해 『대학』에서는 깊이 있는 논의로 우리의 지혜를 밝혀준다. 덕이 있으면 사람이 있게 되고 사람이 있으면 토지가 있게 되고 토지가 있으면 재물이 있게 되며 재물이 있으면 쓰임이 있게 되니 군자는 덕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이렇듯 덕은 근본이요 재물은 말단이니, 근본의 덕을 가벼이 하고 말단의 재물을 중요시하면 백성을 다투게 하여 겁탈(劫奪: 위협하여 빼앗음)하는 가르침을 베푸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군자가 재물을 독점하면 백성이 흩어지고 재물이 고루 분배되면 백성이 모이게 된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근본이 어지러우면서 말단이 잘 다스려지는 경우는 없다고 한다.02 곧 내면의 덕이 갖춰지지 않고 재물을 잘 운용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원래 본말(本末)은 모두 나무[木]에서 파생된 말인데, 木 자에 一 자를 아래쪽이나 위쪽에 더함으로써 本과 末이 된다. 즉 나무의 뿌리와 줄기를 뜻하는 것이 본이고 가지와 잎을 뜻하는 것이 말이다. 이것에 좀 더 학문적 의미가 첨가되어 근본(根本), 본질(本質) 그리고 말단(末端), 말절(末節) 등의 학술적 용어로 발전하였다. 또한, 이 낱말들에 가치 개념이 더해져서 일반적으로 근본은 긍정적인, 말단은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말단을 소홀히 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뿌리·줄기가 없으면 가지·잎도 생존할 수 없고, 가지·잎이 없으면 뿌리·줄기도 홀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곧 본과 말은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라는 인식하에 본이 말의 주체가 된다는 의미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대학』에서 군자는 군주나 위정자를 뜻하는데, 지도자로서 그들이 가져야 할 정치적 가치관을 말하고 있다. 지도자는 반드시 근본의 덕을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내면의 덕성을 주체로 삼아 재물을 운용해야 한다는 의미다. 만약 말단의 재물에 마음을 쏟아 재물을 모으는데 가치를 두게 되면 백성은 더욱더 재물에 탐닉하여 겁탈이 횡행되고 그 사회는 혼란에 빠져 결국은 망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사례를 우리는 역사 속에서 흔히 보아 오지 않았던가. 그리고 오늘날도 물질 위주의 가치관에 치우쳐서 인륜 도덕이 땅에 떨어지고 상도(常道)가 어겨진 금수와 같은 생활상을 자주 보고 있지 않은가. 이제 물질에 치우친 가치관을 반성하고 돌이켜 진정한 삶의 가치관을 정립해야 할 때다. 인간의 삶에 있어 덕과 재물은 내재적 가치와 외재적 가치로서 음양의 관계에 놓여 있다. 음양은 서로의 존재가 없이는 자신의 존재도 성립할 수 없는 대대적 관계이다. 내면의 덕이 없이는 재물을 모아도 일시적이며 설령 모은다 하더라도 올바르게 쓰이지 못할 것이며 결국에는 자신까지 망치는 화를 초래하기도 한다. 또한 재물이 없이는 삶을 영위해 나가기 어려울 것이니 덕을 닦아나가는 것도 이상에 불과하게 된다. 그러므로 덕과 재물은 음양의 관계로서 서로가 조화를 잘 이루어야 하며, 이것을 통해 사람은 삶을 더욱 풍요롭게 발전해 갈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덕과 재물의 합덕이며 일반적인 삶의 가치관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도를 닦아 미래의 도통군자가 되기를 서원(誓願)하는 존재다. 도통군자가 최상의 가치인 셈이다. 상제님의 천명으로 도문소자가 되어 도를 닦는 사람이 대순진리를 바르게 닦아 근본의 덕을 쌓아가지 않고, 말단의 재물에 마음을 쏟으면 결국 시비와 쟁탈만을 조장하여 운수를 망치게 될 것이다. “돈이란 순환지리로 생겨 쓰는 물건이니라. 억지로 구하여 쓸 것은 못되나니 백년 탐물(百年貪物)이 일조진(一朝塵)이라.”(교법 1장64절)는 상제님의 말씀이 있지 않은가. 따라서 덕과 재물의 합덕을 견지하면서도 위의 도전님 말씀처럼 재물보다는 내면의 덕을 더 소중히 여겨 근본으로 삼는 가치관을 정립해야 할 것이다.
01 김형중, 「포괄적 ‘덕’ 개념의 형성 과정: 공ㆍ맹ㆍ순을 중심으로」, 『범한철학』제61집, 2011(여름), p.21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