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광찬은 상제를 모시고 김 성화가 있는 고을 임피 군둔리(臨陂軍屯里)에 이르러 며칠 동안 머물렀도다. 상제께서 죽게 된 성화의 이웃 사람을 제생하셨느니라. 상제께서 환자를 만나 그 병은 그대로 치료하기 어려우니 함열(咸悅) 숭림사(崇林寺) 노승을 조문하고 돌아오게 하셨도다…(하략) (제생 15절)
상제의 부친께서 이해 七월 초에 동곡에 가서 상제를 찾으니라. 부친은 형렬의 안내로 임피 군둔리(臨陂軍屯里) 김 성화(金性化)의 집에 인도되었으나 며칠 전에 군항(群港)으로 떠나 상제께서 계시지 않았으므로 다시 뒤를 쫓아 군항에서 상제를 뵈옵게 되었도다…(하략) (행록 3장 32절)
상제께서 몇 달 동안 경석을 대동하시고 공사를 보셨도다. 이때 상제께서 임피(臨陂) 최 군숙(崔君淑)의 집에 머물고 계셨는데 어느 날 이곳을 떠나 동곡에 들르지 아니하고 바로 태인으로 가셨느니라…(하략) (교법 3장 13절)
◎ 지명 유래와 변천사: 본래 백제 시산군(屎山郡)이었는데 피산(陂山), 흔문(忻文), 소도(所島), 실조출(失鳥出) 등으로 불렸다. 757년(통일신라 경덕왕 16)에 임피군으로 고치고, 1018년(고려 현종 9)에는 현으로 강등하였다. 조선시대에도 계속 현으로 있다가 1895년(고종 32) 지방 관제 개정에 의하여 다시 군(전주부 임피군)이 되어 군내(郡內)·동일(東一)·동이(東二)·남일(南一) 등 13개 면을 관할하였다. 그리고 1896년 전라북도 임피군이 되었고 1914년 4월 1일 군면 폐합에 따라 옥구군에 편입되어 임피(臨陂), 서수(瑞穗), 대야(大野), 개정(開井), 성산(聖山), 나포(羅浦) 6개 면의 지역으로 되었으며, 1995년 군산시에 통합되어 현재 전북 군산시 임피면이 되었다.
※ 1896년에 전북 임피군이 되었다가 1914년에 전북 옥구군 임피면으로 되었기 때문에 1907(丁未)년 음력 6월 상제님께서 김성화와 최군숙의 집에 오셨을 때는 전북 임피군이었음을 알 수 있다.
8. 군둔리(軍屯里)
◎ 해당 『전경』 구절
김 광찬은 상제를 모시고 김 성화가 있는 고을 임피 군둔리(臨陂軍屯里)에 이르러 며칠 동안 머물렀도다…(하략)(제생 15절)
상제의 부친께서 이해 七월 초에 동곡에 가서 상제를 찾으니라. 부친은 형렬의 안내로 임피 군둔리(臨陂軍屯里) 김 성화(金性化)의 집에 인도되었으나…(하략)
(행록 3장 32절)
◎ 지명 유래와 변천사: 군둔마을이 있는 장상리(將相里)는 임피군(臨陂郡) 북삼면(北三面)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서지리(書智里), 와촌리(瓦村里), 군둔리(軍屯里), 세류리(細柳里), 장동리(將桐里), 용산리(龍山里)와 나기리(羅旗里), 신곡리(新谷里) 일부를 병합하여 장상리라 해서 옥구군 나포면에 편입되었다.
군둔리는 예전에 군사(軍事)가 주둔했었다고 하며, 마을 주변의 지형이 임금이 군사를 지휘하는 형국을 하고 있다고 전한다.
◎ 『전경』과 관련된 곳: 군둔리에는 김성화 종도가 살았으며 상제님께서 이웃집의 병자를 치료해주신 일이 있었다. 현재 폐가인 김성화 종도의 집은 망해산(望海山)을 오르는 등산길 입구 쪽에 무성한 대나무로 덮여 있다. 김성화 종도의 집 주소는 전북 군산시 나포면 장상리 785-1번지이다. 현 도로명주소로는 전북 군산시 나포면 군둔길로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