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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와 좌절을 대하는 삶의 자세에 대하여

좋은 글

by 벼리맘1 2023. 3. 22.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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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납치하다 중에서>

 

'귀하의 감동적인 시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당신의 옥고는 우리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지면에는 약간 어울리지 않음을 무척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편집부에서 오는 이런 거절 편지가 거의 매일 날아온다.

 

문학잡지마다 등을 돌린다.

 

가을 내음이 풍겨 오지만

이 보잘것없는 아들은 어디에도 고향이 없음을 분명히 안다.

 

그래서 목적 없이 혼자만을 위한 시를 써서

머리말 탁자에 놓인 램프에게 읽어 준다.

 

아마 램프도 내 시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말없이 빛을 보내 준다.

 

그것만으로 족하다.

 

헤르만 헤세 / 편집부에서 온 편지

 

 

인간의 창조 행위는 자연발생적인 영감에서 출발하지만

타인의 인정을 받을 때 기쁨은 배가 된다.

 

그렇더라도 근원적인 기쁨은 어디까지나 자기만족을 위한 것이다.

 

신춘문예 시즌이 다가오면 혹은 그 시기가 아니더라도 독자들로부터

자신이 쓴 시를 평가해 달라거나 시적 재능이 있는지 묻는 편지를 자주 받는다.

 

헤세의 시는 읽는 순간 수채화 같은 순수가 마음에 스민다.

 

10대에 이미 '시인이 아니면 아무것도 되지 않겠다'고 선언한 그가 출판사나

잡지사로부터 수없이 이런 거절 편지를 받았을 때의 기분이 어떠했을까?

 

돌아갈 고향이 없는 사람처럼 고독했을 것이다.

 

더구나 이 시를 쓸 당시 헤세는 50세였다.

 

그러나 왠지 그 고독감이 밝다.

 

인류 문학 최고의 반열에 오른 헤세에세도

그런 시기가 있었다는 것이 우리에게 위안을 준다.

 

헤르만 헤세(1877~1962)는 전쟁 반대론자였기 때문에 독일의 군국주의

아래서 배신자, 매국노라는 지탄을 받고 모든 저서가 출판금지되었다.

 

극심한 심적 고통으로

칼 융의 제자에게 정신분석 치료를 받기도 했다.

 

22살에 시집 『낭만적인 노래들』과

산문집 『자정 이후의 한 시간』으로 문단에 입문했으나

 

히틀러 사망 후인 69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인정을 받고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그 암울한 세월 동안 수많은 '거절 편지'를 받으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타인의 찬사를 들으려는 목적 없이 계속해서 글을 썼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사실 우리가 읽는 거의 모든 문학작품,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예술작품 대부분이 그런 '거절 편지'들 속에서 탄생한 것이다.

 

어디 예술작품뿐이겠는가.

 

세상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고통은 크다.

 

그러나 내면의 포기가 주는 고통은 더 크다.

 

대시인의 시가 감동을 줄지라도 자신이 쓴 시만큼

자기 삶의 중요한 부분을 건드리는 시는 없다.

 

시를 써서 바람에 읽어 주면

바람이 머릿결을 쓰다듬어 줄 것이다.

 

겨울강에게 읽어 주면

강물이 얼음장 밑에서 확담할 것이다.

 

그러면 자신을 둘러싼 세상과 가까워지는 것을 느낀다.

 

우리는 타인에게 보여 주거나 인정받기 위해 살지 않는다.

 

타인의 인정에 의존하는 기쁨은 오래가지 않는다.

 

마지막 행의 오묘한 독백

 

'시를 써서 혼자 소리내어 읽는 그것만으로 충분하다'는

그런 마음만으로도 부족할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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