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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가 말하는 악의 평범성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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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리맘1 2023. 6. 27.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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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관점에서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들의 안녕과 지위만을 생각하는 자.

 

그가 바로 아이히만이었으며,

아렌트가 경계한 수많은 인간의 모습이었다.

 

아렌트는 자신이 겪은 시대적 경험들을 바탕으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전체주의의 기원> <인간의 조건> 등을 썼다.

 

아렌트는 평생을 바쳐 전체주의를 이해하고자 했다.

 

하지만 수많은 유대인을 참혹히 학살한 전체주의는

증오의 대상이지 결코 이해의 대상이 아니었다.

 

많은 유대인들이 아렌트를 향해 비난을 퍼부었다.

 

하지만 아렌트는 전체주의를 제대로 이해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똑같은 일이 반복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는 전체주의의 본질을 이해하고

그것에 저항하려고 애썼다.

 

다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의 이야기로 돌아와보자.

 

아이히만은 유대인을 선별하여

집단 수용소로 실어 나르는 수송 부서의 책임자였다.

 

대량학살의 총지휘자는 히틀러였지만

학살을 직접 수행하였던 것이 아이히만이었다.

 

법정에서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다.

 

아이히만은 아주 사악한 악마의 모습이 아니었다.

 

수많은 학살을 자행한 사람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는 옆집 아저씨처럼 평범한 사람에 가까웠다.

 

실제로 아이히만은 친절하고 선량한 사람이었다고 전해지며

정신분석 결과도 정상으로 나왔을 정도로 정신이상자도 아니었다.

 

더 충격적인 건 법정에 선 아이히만은

일말의 죄책감 없이 너무나 당당했다.

 

그는 자신은 국가의 명령을 따랐으며 그저 수송 부서 책임자라는

주어진 자리에 최선을 다했을 뿐이라고 항변했다.

 

오히려 칸트의 말을 인용하며 자신은 '의무'를 다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면

양심의 가책을 느꼈을 것이라 말했다.

 

"그는 자기가 하는 일이 어떤 일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아무 생각이 없음은 결코 어리석음과 같지 않다.

이것이 그가 시대의 가장 악랄한 범죄자 중 한 사람이 된 이유였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범죄 행위가 자신의 행위에 대한 판단과

사유 능력이 없는데서 비롯된다고 본 것이다.

 

아이히만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거나

사유할 능력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당시의 나치의 언어들은 스스로를 속이고

현실을 제대로 볼 수 없게 했다.

 

예를 들어 학살은 '최종 해결책'

유대인 이송 작업은 '재정착'이라 불렀다.

 

이처럼 아렌트는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는 것만으로도

악은 누구에게서나 행해질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일이라고 보았다.

 

아렌트가 '악의 평범성'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자신의 일에 대해 책임을 다하고 있다고 믿고 있는 사람에게서

언제든지 악이 나타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생각한다는 것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것이 아니다.

 

그리고 악은 나와 관계없는 이야기가 아니다.

 

악은 평범하다.

 

우리는 과연 아이히만과 얼마나 다르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나의 행위가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은 있을까?

 

무엇이 옳고 그른지 생각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누구나 아이히만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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