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프로그램인 ‘K팝 스타 4’에서 ‘이진아’는 눈이 펑펑 내리는 차가운 버스정류장 길 위에 힘없이 엎드려 죽은 주인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강아지를 보면서 영감을 얻어 ‘마음대로’라는 곡을 완성했다. 그 가사 내용은 기다림의 주체는 자기 자신이므로 남이 뭐라 해도 변함없이 기다릴 것이며, 내 자신이 원하는 것이니까 그 시간을 주인 생각만하고 기다리는 것이 행복하다는 이야기다. 기약 없는 기다림을 아름답게 미화(美化)시켰지만, 이 기다림은 왠지 외롭고 슬프며 마음이 아려온다. 하지만 우리 도에는 이와 같은 한 개인의 ‘기약 없는 날의 기다림’이 아닌 모두가 바라고 고대하는 아주 경건하고 아름다운 ‘기약 있는 날의 기다림’이 있다. 그것이 바로 ‘대기(待期)’하는 신앙의 모습이다.
대기(待期)는 사전적으로 ‘약속한 시기를 기다림’을 뜻한다. 여기서 ‘기(期)’는 ‘달이 차고 일그러지듯이 규칙적으로 일정 기간이 정해진 시간’이다. 대순진리회에서 대기의 의미는 약속한 정해진 시간을 위해 심신을 정갈히 하고 신앙의 대상이신 상제님께 심고(心告) 드리는 경건하고 성스러운 의식이다. 그 대기 의식에는 기도 모시기 전 기도대기와 치성의례 시의 치성대기, 그리고 시학공부 시의 공부대기 등이 있다. 이 모든 시간은 상제님의 도[神道]를 닦고 있는 우리가 구천상제님·옥황상제님·도전님 그리고 천지신명과의 소통을 위한 아주 경건하고 아름다운 순간이다.
기도대기(祈禱待期)는 기도 모시기 전에 시립자세로 기다리는 것이다. 이것은 꼭 그래야 한다는 당위적 원칙은 아니지만 수도인이 지켜야 할 기본적인 정성이며 약속과도 같다. 또한 상제님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경천(敬天)의 자세이다. 그래서 우리는 10분 전 대기라는 말을 사용한다. 시간이 되었으니까 습관적으로 막연하게 모시는 것이 아니라 몸과 옷매무시를 단정히 하고 신앙의 대상이신 상제님 전(殿)에 적어도 10분 전에 시립(侍立)하는 행위이다. 그리고 우리는 시립하면서 과거의 자기반성과 현재 자기 마음의 의지와 결심, 그리고 바라는 바를 심고(心告) 드린다. 그런 심고를 통해 상제님의 덕화(德化)로 삶를 새롭고 활기차게 시작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신의 심신을 정돈하지 않은 채, 시간에 쫓겨 급하게 심고도 없이 기도를 모신다면 상제님에 대한 경천의 자세라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참다운 정성이라 할 수도 없을 것이다. 따라서 도통군자를 소망하는 우리는 기도대기 시간을 지키는 것을 소홀히 할 수 없다.
치성대기(致誠待期)는 치성의례 절차를 행하기 전의 시립자세이다. 치성의례(致誠儀禮)는 현재 대순진리회에서 정기적으로 거행하는 종교행사이며 주요 의식의 하나이다. 이는 집단적인 차원에서 정해진 장소와 시간에 거행된다. 치성의 장소는 ‘영대(靈臺)’로 상제님과 천지신명을 모셔놓은 가장 신성한 장소이다. 치성의례는 의식절차에서 제공되는 치성물 외에 그에 상응하는 의례행위를 포함하고 있다. 이것은 치성물을 드리는 동작을 표현하거나 특별한 외경심을 나타내는 행위를 말한다. 치성절차에서 준비한 술과 음식은 마치 살아 있는 사람에게 권하듯이, 술잔을 들어 올리고 매번 수저를 옮겨가며 놓는 행위는 치성자와 치성대상이 상호 교제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치성의례 전 한 시간 동안 시립하며 대기하는 시간이다. 먼저 시립 대기시간 전 참석자는 각자 목욕재계하고 복장은 전통한복을 착용하는 것이 원칙이다. 절기치성 외 대부분의 치성이 축시(丑時) 즉 새벽 1시에 거행되기 때문에 진설요원들이 15 신위 전에 치성물을 진설(陳設)하는 12시부터 실질적인 치성대기 시간이다. 하지만 수반들은 치성대기 시간인 12시를 맞추기 위해 11시부터 신축회관 앞마당에서 줄을 서서 기다린다. 늦은 시간의 치성대기는 도인에게 많은 인내심과 정성을 요구한다. 도인들은 전국 각지에서 생업과 도 사업에 종사하다가 치성에 참석하기 위해 고단한 몸을 이끌고 도장에 온다. 이러한 상황은 부동의 시립대기 시간에 졸음을 유발하고 겁액을 경험하게 한다. 이러한 고통은 참기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한바 치성의례가 대순진리회에서 굉장히 중요한 만큼 대기시간 또한 그러하다. 그러므로 대기시간에 임하는 도인은 상제님의 덕화와 천지공사에 참여하고 계신 15신위에 대한 감사 그리고 신명들의 기운으로 상생의 도를 펴겠다는 마음가짐을 몸으로 실천하는 가장 기본적인 정성이며 예인 것이다. 이러한 마음가짐의 표현으로 이루어진 시립 대기시간은 자신의 수도생활을 점검하고 계획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다음은 시학(侍學)에서의 공부대기(工夫待期)이다. 시학공부에서 ‘대기(待期)’는 “언제나 출동(出動) 준비(準備)를 끝내고 명령(命令)이 내리기를 기다리는” ‘대기(待機)’의 뜻이 강하지만 이 또한 자기 공부시간을 기다리는 의미도 있다. 도전님께서는 항상 시학·시법공부가 우리의 생명보다 중요함을 강조하셨다. 현재 여주본부도장에서 실행되고 있는 시학·시법공부는 수도법방 중에서도 도통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으므로 매우 중요하다. 이 시학·시법공부가 도주님의 50년 공부종필의 결정체이며 삼계광구의 유일한 진법이다.01 도전님께서는 평소에 우리가 운수를 받는 것이나 후천선경 오만 년이 시학·시법공부에 달렸다 하시며, 이 공부의 영향이 군생만물에 미치니 도인의 생명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하셨다.
시학공부 때의 대기는 공부자가 자기 시간에 맞추어 주문을 봉송할 때, 밖에서 한 시간 동안 대기하면서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마음속으로 공부자의 주문을 봉송하며 돕는 행위이다. 이 대기공부는 남을 잘 되게 하는 해원상생의 의미를 실천하는 것이기도 하다. 만일 대기자가 자기 공부가 걱정되어 대기시간에 자기 주문을 연습하면서 공부자를 위한 대기공부를 소홀히 한다면 공부 사고가 날 수 있고, 또한 자기 공부를 잘 마치기도 어렵다. 여기에는 참으로 남을 잘 되게 하려는 대기자의 상생의 정신과 의지가 중요하다. 그런 정신과 마음이 없으면 그 한 시간 대기가 힘겹고 지루하며 고통스러운 시간이 될 것이다. 따라서 한 반의 공부가 사고 없이 무사히 마칠 수 있으려면 공부 대기자가 얼마나 정성스럽게 공부자를 위해 대기공부를 잘하느냐가 중요하다. 그리고 공부 대기는 치성대기와 마찬가지로 현재의 자신의 수도 상태를 점검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다.
이상에서처럼 대기의 행위는 우리 수도생활에서 몹시 중요하고 정성스러운 마음이 요구된다. 우리 도가 목적도 중요하지만,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일상생활 속에서 얼마나 자기반성과 정성을 다했느냐에 따라 결과가 주어지기 때문에 그 준비과정인 대기시간은 더욱 중요하다 할 것이다. 인간의 현실적 삶은 더욱 각박해져만 가고 인간과 인간, 인간과 신명 간에도 재겁(災劫)과 비겁(否劫)으로 인해 서로 불신하며 소통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인간과 신명이 교감하는 경건한 모습은 대순진리회만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라 할 수 있다. 『대순진리회요람』에 “…정성이란 늘 끊임없이 조밀하고 틈과 쉼이 없이 부족함을 두려워하는 마음이다.”라고 한 것처럼 우리 수도인 모두가 바라는 도통을 향해 가는 길, 곧 수도의 과정이 대기(待期)이고 정성스러운 시간이라 할 수 있다. 그 대기시간을 자신이 주체가 되어 지루하고 막연한 시간이 아닌 설렘과 행복의 시간으로 마음먹고 행한다면, 우리의 겁액은 극복되고 상제님의 덕화로 우리가 원하는 바의 목적은 자연히 다가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