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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하지만 아름답게 살아가는 태도에 대하여 3

좋은 글

by 벼리맘1 2023. 2. 12.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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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미개하고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발전하고 진화한다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는 아직 철기도 쓰지 않았던 신대륙 원주민들의 사회가

기록 문자와 복잡한 지배 체제를 가지고 물질적 생산과 기술을

발전시키고 있는 유럽의 발전단계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원시상태나 다름없다 믿었던 원주민들 중에는

전쟁을 일삼는 호전적인 부족도 있었고 상호부조를 하며

평화롭게 살아가는 부족도 있었으니 성선설과 성악설이 나온 것이다.

 

유럽인들은 물질적 부의 축적과 기술의 발전 이외에

다른 기준을 상상할 수 없었다.

 

원주민들을 농업 혁명을 이루지 못하고

복잡한 통치 구조를 구축하지 못한 원시인이라고 생각한 것은 전적으로

유럽인들의 상상력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모든 부족들이 비슷한 사회와 삶의 형태를 가진 것도 아니고

하나의 부족도 역사적으로 일관된 시스템을 채택한 것도 아니었다.

 

확실한 건 수많은 부족들이 자신들 삶의 방식을 꾸준히 바꾸어왔다는 것이다.

 

시간, 환경, 계절 등 많은 요소에 따라 이들은 다른 시스템으로 살아갔다.

 

농업을 시작하는가 하면 다시 채집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강력한 리더를 따를 때도 있었지만

대체로 모두가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는 시기도 있었다.

 

소수의 부족으로 살아가는가 하면

대집단을 형성해 한곳에서 살아가기도 했다.

 

그들은 농업이나 정치 제도를 몰랐던 것이 아니다.

 

단지 주변 환경에 맞추어 다양한 삶의 방식을 실험을 했던 것이다.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를 지닌 건 자유였고,

그 자유에 더 가까운 삶을 선택했다.

 

바로 이 부분이 유럽인들이나 지금의 우리가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지점이다.

 

그렇다면 자유를 선택한 그들은 굶어 죽었을까?

 

'자유냐? 빵이냐?' 그런 질문이야말로 물질과 기술만을

절대적 기준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질문이다.

 

원주민 지배층은 축적된 부를 덜 가진 사람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데 쓰지 않고 그들이 굶지 않도록 하는 데 썼다.

 

이들은 특별한 도덕성을 가진 사람들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단지 한 사람 한 사람의 자유가 가장 중요한 가치였고

그것을 지키는 것이 집단의 존재 이유였기 때문이다.

 

여전히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언뜻 실패한 공산주의 실험이 떠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의 생각은 공산주의와 출발부터 다르다.

 

이들은 공산주의처럼 물질적인 평등을 추구한 것이 아니다.

 

평등은 애당초 이들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어떤 원주민 사회에서는 지배계층의 남자가 다수의 아내를 거느릴 수 있었다.

 

양성차별과 억압적 사회체제의 전형이라고 느껴진다.

 

 

▶다음 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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